해외 생활은 그리 힘든 일이 없었다.
한인 교회 목사님께서 소개해 준 메이드가 있어 집안일이나 아이 돌봄이 한결 수월했다.
그러다 보니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시간도 많아졌고,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가정적인 남편은 주말이면 함께 교회에 갔다가 단지 안에 있는 수영장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고,
늘 저녁이면 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했다.
내 마음 한편에는 불안함이 있었지만, 한국보다 느리게 흐르는 듯한 그곳에서 나는 조금씩 적응해
가고 있었다.
그렇게 1년쯤 지났을까. 교회 반주를 하는 집사님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커피 마실래요?”
“네.”
“한국에서 꽃집을 했었지요?”
“네.”
“우리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쉬고 있는 거 알죠?”
“네.”
“직장을 구하는 것도 좋지만, 나는 사업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요.”
“네.”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꽃 구독 서비스를 생각하고 있어요.”
“네.”
“나는 꽃꽂이 사범 자격증은 있는데 꽃 포장을 못해요. 혹시 자매가 포장하는
것만 알려줄 수 있을까요?”
“네, 알려드릴 수 있어요.”
내가 하는 사업은 아니었지만, 무언가 일을 한다는 것과 꽃을 만진다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까. 다시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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