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위로하는 아들의 크리스마스트리
아이들과 함께 차를 타고 자유로를 달렸다.
남편 명의로 된 차량 마지막 날이다. 차이름은 아이들이 "뚱이"라고 지어 주었다.
" 엄마 이제 우리 뚱이랑 헤어지는 거야...."
"응...."
" 엄마 그럼 마지막 뚱이 타고 드라이브하자....."
"그래....."
아이들과 그렇게 난 자유로를 달렸다. 아들이 크리스마스 캐럴음악을 크게 틀고 딸아이와 함께 부른다.
평화 공원까지 달렸다. 날이 너무 추웠고 사람들은 몇몇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뚱이를 타고 자유로를 달렸다.
아쉬워하는 아이들과 나는 홈플러스 안에 있는 다이소를 갔다.
아이들이 신났다. 뚱이는 뚱이고.... 유일하게 아이들이 용돈으로 사치를 부릴 수 있는 곳이 다이소다.
아들이 며칠 전 아빠 회사분에게 받은 용돈으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겠다고 한다.
외국에 나가면서 처분한 크리스마스트리는 한국에 다시 돌아와 사지 않았다.
허전한 마음에 작은 트리 가랜드 하나 걸어주는 게 전부였는데 아들이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겠다고 하니 속으로 미안했다.
5,000원짜리 트리 두 개를 사고 장식으로 들어갈 볼을 사고 나는 트리 다리를 가릴 바구니 하나를 사주었다.
집에 와서 트리 두 개를 하나로 만들어야 했다. 우선 케이블타이로 트리 두 개를 하나로 묶어 주었다.
가지를 펴니 나무가 풍성해졌다.
그렇게 아들의 크리스마스트리는 완성이 되었다.
저녁 아이들이 잠이 들고 거실을 바라보니 허전했던 마음이 트리에 반짝이는 작은 불빛을 보며 위로가 되는 듯하다.
그동안 우리가 누리던 것들이 하나둘 사라져 간다.
그렇지만 우리 집은 누구 하나 큰소리를 내고 불평을 하는 사람은 없다.
집안에는 여전히 빨간 압류스티거가 붙어있고 간당간당 한 생활비이지만 매일같이 풍족하게 채워주시는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고 그동안 타고 다니지 않았던 세컨드차 잠시 교회 목사님께 빌려드렸는데 다시 나에게로 왔다. 목사님이 타고 다니시며 헌 차가 새 차가 되어있었다. 처음 빌려 드릴 때 오래 타고 다니지 않아 브레이크 시디에 녹이 있어 소리도 나고 짐이 많이 실려 있어 엉망이었는데 목사님이 잘 길들여 놓으시기도 했고 여러 가지 자동차 엔진 오일이나 라이트 등 전반적인 자동차 정비로 새 차가 되어있었다.
저녁에 끓인 보리차 따뜻하게 마시며 트리를 한참을 바라보고 앉아 있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지금 상황에 웃음이 나면 안 되는데... 누군가 나를 봤다면 실성했나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들의 크리스마스트리는 우리 가족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