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일요일의 기록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해 있었다. 일요일이라 주방에서 해방된 나는 늦은 아침 식사를 위해 집을 나섰다. 밖은 가늘게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얼핏 보면 비처럼 보였지만 눈인가 싶기도 했다. 15층에 올라가 우산을 챙기고 다시 집을 나섰다. 우산을 펴자 톡톡, 싸라기눈이 우산 위로 떨어졌다. 길은 눈 녹은 물이 섞여 발을 디딜 때마다 질퍽거렸다.
길 상태만 괜찮았다면 자동차를 타고 갔을 거리를 우리는 걸어가고 있었다. 흙탕길을 지나고, 눈 쌓인 길을 걸을 때는 운동화가 푹푹 빠질 정도였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며, 마치 땅이 우리를 잡아당기는 듯했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며칠 전 같은 길을 나 혼자 걸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마음이 무겁고, 길도 멀게만 느껴졌는데 오늘은 눈을 밟을 때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뽀드득 소리가 듣기에 좋았다. 가족이 함께 걷는 길이라 그랬을까?
한강 작가는 작품에서 ‘눈’을 트라우마의 소재로 사용했다. 눈은 상처를 가리는 동시에 드러내며 공유와 감각의 매개체가 된다. 또한 순환과 변화의 상징이 되었다가 살아내기의 치유로 작용한다. 지극한 사랑을 전하기 위해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필했다는 작가의 말이 잊히지 않아 눈길을 걸으며 나에게 눈은 어떤 대상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했다.
언젠가 어린 시절 고향의 풍경을 글로 쓴 적이 있다. 눈 내린 날이면 비료 포대를 안고 언덕에 올라 미끄럼을 탔었는데 그때도 지금처럼 설레고 행복했었다. 내겐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인 동시에 순수한 마음을 느끼게 하는 눈이 누군가에겐 차가움과 죽음,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낯설게 다가왔다.
최근 일어난 비극적인 사고는 많은 이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이태원 사고나 세월호 사건이 그랬듯이. 같은 대상을 보고도 다르게 받아들이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나에게 눈이 그저 눈이듯, 누군가에게는 비행기나 배, 거리가 그저 그것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각자가 겪은 상처와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나는 여전히 눈을 깨끗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눈을 밟으며 느끼는 뽀드득 소리는 더 이상 내게 단순히 즐거움의 상징만은 아니다. 그 소리 속에 묻어 있는, 각자가 살아내야 했던 아픔과 상처를 떠올리게 된다. 나만의 기억 속 눈이 아닌, 모두의 상처와 치유가 얽힌 그 눈을 이제 나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