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선택할 작은 불씨가 되어 줄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소년이 온다」를 쓴 작가 한강의 어떤 글 때문이었다. 작가는 열두 살 때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읽으며 '어떻게 그들은 그토록 사랑스러운가? 그들을 둘러싼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폭력적인가?' 하는 의문을 품었다. 이후 1980년 5월 계엄군에 맞서다 숨진 중학생 소년 동호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5.18의 진실을 드러내는 소설을 발표했다.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책이 자신이 집필한 책과 닿아 있다는 작가의 고백이 내게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러나 도서관 서가에 꽂힌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봤을 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알록달록한 다른 어린이책들과 달리 진지해 보이는 살구색의 표지가 낯설었고 제법 두꺼운 책이라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개인적 특성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이 책은 언젠가는 읽어야 할 책으로 미뤄지고 말았다.
몇 년이 지나 이 책을 읽게 되었을 때 나는 예상치 못한 전개에 놀랐다. 분명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라고 했는데 시작부터 주인공이 죽어버린 것이다. 이후의 내용 역시 어린이 책에서 볼 수 없었던 세계관을 보여주며 주인공의 모험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악을 물리치는 선의 구조를 따르고 있지만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런 기본적인 틀마저도 깨트리며 내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살았던 1900년대는 어린이를 약한 존재로 생각했다. 그러나 작가는 어린이는 용기를 지니고 있으며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성장의 대상으로 보았다. 이러한 인식은 비겁하고 나약했던 칼이 어엿한 사자왕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통해 잘 드러난다.
칼은 선천적으로 몸과 마음이 약한 아이였다. 형 요나탄이 칼을 살리기 위해 죽은 후 칼은 낭기열라에 있는 요나탄을 만나기 위해 세상을 떠난다. 낭기열라는 우주 어딘가에 있는 머나먼 별나라로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멋진 곳이라고 했지만 아름다운 낭기열라에도 고통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설의 용 카틀라를 지배하는 텡일은 막강한 힘으로 낭기열라의 주민들을 괴롭힌다. 자유를 잃은 들장미 골짜기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한 요나탄, 그런 요나탄을 지키려는 칼. 두 형제의 아름다운 모습은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나라를 위해 싸웠던 역사 속 인물들을 떠올리게 했다. 텡일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아깝게 목숨을 잃는 사람들은 자유를 얻기 위해 죽기를 겁내지 않았던 이름 없는 시민들 같았다. 그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에게 자유와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는가.
칼이 형과 함께 오르바르를 구하러 가고 카틀라를 묶어 놓기 위해 함께 길을 떠날 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봤다. 요나탄은 타고나기를 용감하고 이타적인 인간이다. 반면 칼은 죽는 것이 두려운 평범한 인간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칼과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목숨이 아까워서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쓰레기일 뿐이다"라는 요나탄의 말은 두려움에 얼어붙은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핀다. 가끔 일제강점기 때 살았다면, 6.25 전쟁을 겪어야 했다면, 5월의 광주 안에 내가 있었다면 생각해 본다. 모든 사람이 목숨을 걸고 싸우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자유마저 억압당한다면 나도 누군가처럼 큰 용기를 냈을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칼이 낭기열라에 갔을 때 마음은 그대로인데 구부러진 다리가 곧게 펴지고 멈추지 않던 기침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하다는 걸 알지만 현대의 관점에서 본다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원할 것 같다. 몸의 건강함보다 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던 작가의 깊은 뜻이라 짐작한다. 그러나 칼이 현실에서 있는 그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내내 걱정과 우려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어렵게 읽어 낸 나와 달리 아이들은 재미있고 술술 잘 넘어가는 책이라고 평을 해주었다. 기존의 어린이 책과 다른 구성이 흥미롭다는 얘기도 있었다. 칼과 요나탄처럼 용감하게 악인과 싸워 이겨보고 싶다는 상상을 나누기도 했다. 쓰레기라는 말이 다소 거칠게 들리지만 그만큼 아이들에겐 강하게 다가온 것 같았다. 이 책이 자유와 명예를 지켜야 할 순간을 맞이했을 때 사자왕과 쓰레기를 떠올리며 용기 있는 선택을 할 작은 불씨가 되어줄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