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 수업:반장선거 연설문 쓰기

일상기록

by 별총총하늘


예정대로라면 이번 주 월요일이 종강이었지만, 설 명절 대체 휴일로 인해 방과 후 수업이 한 주가 미뤄졌다. 1-2학년 학생들은 ‘다음 주에도 수업이 있어요’라는 공지에 ‘알고 있어요’라고 담담히 반응했다. 고학년들은 ‘아~ 왜요!’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정해진 수업이니 해야지.




수업은 떡국을 먹은 이야기와 세뱃돈을 받은 이야기로 시작했다. 특히 세뱃돈을 엄마가 모두 가져갔다며 억울해하는 하소연이 줄을 이었다. “어머니가 잘 모아뒀다가 나중에 줄 거야.”라고 말해도 아이들의 표정에는 여전히 답답함이 묻어났다. 귀여운 불만들을 듣다 보니 절로 웃음이 났다.




오늘은 반장 선거 연설문을 작성하는 날이었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시간상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해야 했다. 신학기가 되면 반장 선거를 하게 될 텐데, 이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학교에서는 1학년에게는 반장이 없고, 2학년부터 반장을 뽑는다고 했다. 2학년들은 이미 투표 경험이 있어 공약과 반장의 역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먼저 아이들에게 ‘내가 되고 싶은 임원’과 ‘임원이 된 나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게 했다. 반장 선거에 나가겠다고 의지를 다지는 아이도 있었고, 절대 나가지 않겠다며 고개를 세차게 흔드는 아이도 있었다. “안 나갈 거니까 상상도 안 돼요.”라며 펜을 내려놓은 학생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당선된 모습을 그렸다. 남자아이들 중에는 ‘부반장이 되어 눈물을 흘리는 그림’을 그린 경우도 있었다. 이유를 묻자 “반장 선거에서 떨어지고 부반장이 되어서 속상하다.”고 했다. 부반장이라고 적어놓고도 사실은 반장이 되고 싶었던 아이도 있었다.




그림을 확인한 뒤 개요를 짜고 연설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연설문은 첫 부분에서 유행어나 광고 문구, 속담, 명언 등을 활용해 흥미롭게 시작하고, 본문에서는 공약을 첫째, 둘째, 셋째로 나누어 정리하도록 했다. 마지막에는 반드시 뽑아달라는 의사를 밝히고 실천과 약속을 강조하라고 설명했다. 어렵다는 반응이 많아 예시 글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기다리면 아이들은 어느새 “짜잔!” 하고 글을 써 온다. 꼭 출마하겠다는 두 명은 내용도 탄탄하고 글씨도 깔끔해, 지금 당장 선거에 나가도 될 정도였다. 한 학생은 연설문 대신 반장에게 바라는 점을 써 왔다. “나는 절대 반장 선거에 나가지 않을 거니까 연설문을 쓸 수 없다.”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부끄러움이 많은 한 학생은 몰래 연설문을 쓰더니 “절대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오케이! 공개하고 싶지 않다면 그것도 인정한다.




평소 남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학생은 연설문도 유쾌하게 작성했다. 자신을 “촐싹거리는 ○○이”라고 표현했는데, “촐싹거리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으니 고쳐보자고 했다. 아이는 고민 끝에 “일반인”이라는 수식어로 대체했다. 장난도 많고 엉뚱한 말을 자주 하지만, 나는 이 아이가 무척 귀엽다고 느낀다. 그래서 과격하거나 공격적인 표현을 쓸 때 혼을 내기보다는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 보도록 유도하곤 한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같아서 잘 이끌어 주면 상상력 가득한 글을 쓸 것 같다.




반장에게 바라는 점을 발표할 때는 학년별로 비슷한 의견이 나왔다. “복도에서 뛰거나 장난치는 행동을 못 하게 해 달라.”, “수업 시간에 떠드는 학생에게 주의를 줬으면 좋겠다.”, “공약이 좋았으면 좋겠다.” 다만, 저학년은 “떠드는 친구를 혼내줬으면 좋겠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고학년은 “그러면 반장으로 안 뽑아줄걸요?”라며 정반대 반응을 보였다. 반장의 역할을 기대하면서도 너무 엄격한 반장은 원하지 않는 모습이 모순적이라 “너무 모순 아니니?” 하고 물었더니 아이들도 웃었다. 또한, 고학년은 “햄버거를 모두 돌렸으면 좋겠다.”, “게임기를 사줬으면 좋겠다.” 같은 현실적인(?) 공약을 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선거법 위반이라고 알려주자 실망하는 눈치였다.




이번에 전교 회장에 당선된 학생이 있었는데, 역시 경험자라 연설문을 매우 훌륭하게 작성했다. 고학년 반에서는 대부분이 회장 선거에 나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회장 경험이 있는 학생은 “한 번쯤 해볼 만하다.”며 출마를 권했다.




모든 학생이 연설문을 작성했지만, 실제로 이를 사용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학급 임원에 대한 아이들의 솔직한 생각을 들을 수 있어서 무척 흥미로웠다. 아이들은 이 활동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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