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책방 '반달서림' 활용기를 시작하며
몇 년 전 작은 서점에 관심이 생겨 컴퓨터로 동네책방을 찾아봤을 때, 신기하게도 그 책방들은 대부분 제주도에 있었다. “제주책방올레지도”까지 있을 정도라니 제주도에는 얼마나 많은 책방이 있는 것일까? 2019년 가을 첫 발행을 한 책방올레지도는 매년 동네책방 상황을 반영하고 디자인의 변화를 주어 개정하는데, 지금까지 네 번째 개정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제주책방올레지도는 사회적 기업 제주착한여행에서 기획, 제작, 무료 배포함). 주로 제주도 해안선을 따라 위치한 69곳의 독립서점. 각자의 개성과 이야기가 궁금했지만, 당장 제주도를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제주도 서점 방문은 뒤로 미루고 다시 찾아보니, 제주도 외 다른 지역에도 특색 있는 동네책방이 적어도 한 두 곳은 있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동네에는 없을까? 특색 있는 책방이?”
집 근처 도서관은 친숙했다. 도서관으로 가는 예쁜 길, 도서관의 책과 분위기, 그리고 각종 도서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하여 동네 도서관에 수시로 발걸음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서관은 여러 사람이 주인인 공공시설이라 그런지 특정인의 애정 어린 손길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특히 도서관 서가에서 꺼낸 책에서 누군가 그어 놓은 밑줄과 낙서, 심지어 오염을 발견했을 때 - 밑줄이나 낙서는 가끔 나의 견해와 비교할 수 있는 자료가 되어 흥미로울 때가 있긴 하지만- 도서관 책에 아쉬움이 들었다. 도서관과는 비견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많은 책을 보유하면서, 책방 주인의 취향이 깊게 배고 사랑이 느껴지는 새 책이 있는 작은 책방을 향한 갈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러던 어느 날, 자주 방문하는 인터넷 동네카페에 “동네 책방”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우리 동네에는 작은 독립서점 없을까요?”라며 올라온 짧은 질문 글이었는데, 그 글에 달린 소박한 댓글에 화들짝 놀랐다. 엎어지면 코 닿을 가까운 곳에 ‘반달서림’이라는 이름의 책방이 있다는 댓글. 믿을 수가 없었다. 책방이 있다고 언급한 곳은 내가 거의 매일 지나는 거리에 위치한 2층짜리 작은 상가. 보지 못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옷을 주워 입고 문을 나선 후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은은한 흰색바탕에 연보라색 테두리, 같은 연보라색으로 오른쪽 하단에 다소곳하게 쓰여 있는 ‘반달서림’ 정사각형 간판을…… 분명 전날까지 보지 못했던 책방, 램프의 요정 지니가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낸 것 같았다. 이렇듯 낮에 나온 반달처럼 다소곳한 책방이라 알아보지 못했나 보다…… 헛헛했지만 반가움과 설레임으로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계단을 올랐다.
맑은 종소리를 울리며 출입문을 열고 들어간 책방 내부, 과거 카페였을 때 만들었던 복층 구조를 살린 아늑한 모습이 펼쳐졌다.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생태와 환경에 관련된 책과 그림책, 소설과 산문, 그리고 유난히 많은 시집이 서가에 가득했다. 또 이층의 작은 공간엔 폭신한 의자가 두 개, 포스터 몇 점, 그리고 편하게 볼 수 있는 책방 주인의 책들이 비치되어 있었고.
책방 분위기에 녹아들어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하던 주인에게 이곳이 도.대.체 언제 생긴 것인지 물었다. 이러한 질문을 이미 몇 번 받은 듯, 나보다 어려 보이는 그녀는 따뜻한 미소를 띠며 높은 톤의 작은 목소리로 “이곳에 문을 연 날은 2020년 5월 18일이에요.”라고 답했다.
참으로 용감한 주인! 그때가 어떤 때였던가? 바야흐로 코로나 시대가 열리고 사회적 거리 두기와 각종 방역활동으로 사람들이 바깥활동을 꺼렸던, 아니할 수 없었던 시기가 바로 2020년 초였다. 그런 2020년 5월에 책방을, 그것도 생태주의를 표방한 독립책방을 열다니…….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지만, 다음 순간 책방 주인이 덧붙인 이야기가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이 책방에서 앞으로 음악회도 열고 북토크도 가지려고 해요.” 코로나로 인해 오랜 기간 영화관도 공연장도 가지 못했기에, 문화와 예술에 점차 목이 마르고 감정과 영혼에 도달할 양분도 고갈되어 가던 나, 이곳은 나를 위한 마음의 오아시스이자 모세혈관이 되어주겠구나…… 예감했다. 메마른 문화활동의 옹달샘이자 손끝 발끝 온몸과 마음 구석구석까지 신선한 예술적 감각을 전달해 줄 곳.
과연! 책방 주인의 말은 점차 현실이 되어갔다. 코로나 시국이라 불린 시기, 그때그때 변경되는 방역수칙을 충실히 지키며 4년이 지난 지금까지, 꾸준히 반달음악회를 음악회를 개최하고, 일주일에 다섯 번 펜을 든다는 뜻을 가진 ‘반달과 5펜스’라는 이름의 온라인 시필사 모임을 운영한다. ‘반달과 5펜스’가 사랑한 시인과 몇몇 저자들을 직접 책방으로 초청하여 시인과의 시낭독회를 열기도 하고 저자와의 북토크도 갖는다.
심지어 1인 연극과 인형극까지 상연하니, 집 가까운 곳에 나를 위한 작은 복합문화센터가 생긴 것과 다름없다. 이렇듯 어느 날 갑자기 내 마음으로 들어온 우리 동네 작은 책방, 4년을 지내며 친구가 된 단골 동네책방 '반달서림'의 추억을 기록하는 동시에, 동네책방을 찾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동네책방 '반달서림' 활용기"를 용기 내어 써 볼까 한다. 동네 책방 '반달서림' 활용기를 시작하며
* 참고자료
1. '반달서림' 블로그 https://blog.naver.com/bandalseorim
2. '제주착한여행' http://www.jejugoodtravel.com/index.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