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달과 5펜스가 사랑하는 박연준 시인과 함께 하는 낭독회
* 제5회 반달과 5펜스가 사랑한 박연준 시인과 함께 하는 낭독회 : 2022년 10월 22일 (토요일)
“반달과 5펜스가 사랑한 시인들”과 함께 하는 “반달과 5펜스 시낭독회” 5회 차 방문 시인은 박연준 시인. 박연준 시인의 시집 4권에서 발췌한 총 20편 시를 필사하며 무엇이든 시가 될 수 있고, 무슨 말이건 시어가 될 수 있음을 느꼈다. 감히 대상에 올릴 수 없는 것도 차마 쓸 수 없는 것도 없는, 온갖 금기로부터 자유로운 시세계. 자기 검열 시스템 작동으로 일상생활에서는 입 밖에 낼 수 없었던 말들이 박연준 시인의 여러 시에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금기의 언어가 녹아 있는 시를 읽으니 단단하게 경직된 사고의 틀도 녹아 말랑말랑 부드러워지는 느낌이었다. 시 쓰는 기분이 들도록 만들었던 박연준 시인의 에세이 『쓰는 기분』을 읽고 난 후 참석하는 터라, 시낭독회를 마치면 어떤 기분이 들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박연준 시인은 두 편의 시 「베누스 푸디카 3」과 「뱀이 된 아버지」 현수막 아래 단아한 모습으로 앉은 후, 4권의 시집 이야기로 시낭독회 문을 열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박연준 시인의 여러 책 가운데 시집 한 권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리고 다른 손으로 가리키는 그 손짓이 몹시도 우아하였다. 뿐만 아니라 앉은 자세나 몸짓에서도 우아함이 퐁퐁 발산되었는데, 알고 보니 이런 기품에는 박연준 시인의 오랜 취미인 발레에서 유래했다는...... 2023년 5월 ‘시는 발레를 닮아서’라는 제목으로 잡지에 기재된 박연준 시인의 글도 참 좋았는데,
‘시는 언어로 하는 발레’, ‘발레는 몸으로 쓰는 시’
라며 시와 발레를 상호연관된 장르로 인지한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다. 이런 인식 하에 즐기고 배우는 발레에 얼마나 진심이었을까? 계속 글을 읽어보니 올해로 취미 발레 9년 차가 되는 듯하다. 쉼 없이 지속한 것은 5년이라 하고 비록 글을 쓴 당시 발태기 (발레 권태기) 중이라 하나 발레를 한 시간이 적지 않은데, 시간을 들인 노력은 어떻게든 태가 나는 법.
문득 전공과 전혀 무관하게 학부 시절 꾸준히 발레를 했던 과동기가 떠올랐다. 시험기간에도 꾸준히 발레 연습을 했던 친구, 전공을 할 것도 아니고 단순한 취미라면서도 참으로 열심이었다. 졸업할 즈음에는 발레 발표회를 한다며 친구들을 초대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시간은 흘러 몇 년 전 대학 졸업 후 근 25년 만의 동기 모임에서 발레를 했던 그 친구를 만났다. 요즘에도 발레를 계속했는지 물었던 나의 질문에 그 친구가 했던 답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줄곧 그 친구의 균형 잡힌 몸과 바른 자세 그리고 여전한 밝은 태도에 감탄했던 기억은 또렷하게 남았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생각해서 운동을 하긴 해야겠다는 생각에 매일 아침 요가하는 것을 습관으로 삼고 나름대로 꾸준히 하는 중인데, 종종 하기 싫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박연준 시인과 그 친구를 떠올리고, 시간을 인내함으로써 얻을 미래의 결실을 그려보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발레하는 박연준 시인은 시와 함께 에세이를 쓰는 작가이기도 한데, 에세이에 자신감을 내비치는 당당한 모습이 자못 귀여웠다. 하지만 그런 시인의 자신만만 태도에 모두들 고개 끄덕끄덕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모과 한 알 건네는 마음으로 썼다고 밝힌 에세이 『모월모일』은,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산뜻한 에세이였고, 또 앞서 언급한 『쓰는 기분』은 에세이면서도 독자가 시를 쓸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주는 ‘우아한 실용서’로서의 묘한 매력을 지닌 에세이였다. 이런 독특한 에세이를 쓸 수 있는 작가라면 자신감을 가질 자격이 충분하다.
이제 첫장편 소설 『여름과 루비』를 씀으로써 소설가 타이틀까지 획득하여 시/산문/소설 세 장르를 두루 아우루는 작가로 등극한 박연준 시인의 확장성은 어디까지일까? 혹은 어느 지점에서 확장을 멈추고 범위 내 다양성과 깊이를 어떤 방식으로 추구할까? 박연준 시인의 행보와 함께 할 또 하나의 즐거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박연준 시인이 4권 시집을 각각 소개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2007년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은 전력질주 하며 쓴 시집, 2012년의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는 전력질주 후 빙글빙글 돌아가는 하늘을 보며 하늘이 돌기를 멈추는 것을 기다리던 시기, 여러 모로 어려운 시기에 쓴 시집, 2017년의 『베누스 푸디카』는 걸으면서 쓴 시집, 그리고 2019년 『밤×비×뱀』은 멈추어서 쓴 시집이라는 말이었다. 저마다 다르지만 모두 다 사랑스러운 자식인양 소개하는 모습이었다. 시인과 시적 자아의 거리를 어느 정도로 두느냐는 시인들마다 다르겠지만, 어쩐지 박연준 시인의 시는 시인과 시적 자아의 거리가 멀지 않아서, 시인의 삶 마디마디의 경험들이 녹아져 있고 감정과 생각이 반영된 시라는 느낌이 컸다.
첫 낭독시는 「음악에 부침」. 시를 ‘소리가 되어지고 싶은 장르’로 소개하는 박연준 시인이 낭독하는 「음악에 부침」의 소리는 정말 음악처럼 들렸다. 쇠락해 가는 낙원악기상가와 유령과 같은 존재의 연주자를 생각하면서 쓴 시이며, 싱어송라이터이자 작가 그리고 독립책방을 운영하는 책방지기이기도 한 요조의 친구시라 해서 친근감이 더했다. 낙원악기상가를 떠도는 시인, 루시에게 쓰는 편지 같은 시를 읊조리는 요조 작가. 요조 작가가 루시에게 쓰는 편지에 글을 덧붙인다면? 혹은 요조 작가가 직접 루시의 입장에서 글을 쓴다면? 요조 작가의 에세이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이 된다 말할 수 있을까? 이 책 제목도 「음악에 부침」의 한 문구 ‘패배를 사랑하는 건 우리의 직업병’에서 인용되어서 인지, 박연준 시인의 시와 요조작가의 에세이는 영혼의 주파수가 닿아있는 자매처럼 느껴졌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낭독시는 「꽃띠 아버지」와 「뱀이 된 아버지」.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뱀이 된 아버지」가 특별하게 다가왔다. 임종을 맞이하는 중인 아버지를 뱀이 된 아버지라 표현한 것이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말한 뱀의 의미로 읽혔기 때문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며, 자신의 몸 대부분을 땅에 접촉하기에 땅의 비밀을 아는 존재라서 아프리카인들은 뱀을 섬긴다고 했던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아, 당시 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추가했다. 그래서 박연준 시인의 시 속의 아버지는 다시 뱀이 되어 대지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우리나라 전통적 사고를 접목시켜 「뱀이 된 아버지」를 받아들였다.
만약, 에덴동산에서 이브가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한 사악한 존재로 그려진 기독교에서의 뱀이라 생각하면 전혀 다른 해석을 했겠지…… 시 해석에는 정답이나 따로 있지 않아서, 이런 해석 저런 해석해보는 재미와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다양한 독서 경험으로 해석이 폭을 넓혀 앞서 말한 재미와 의미를 좀 더 즐길 수 있으니 책을 많이 또 깊게 읽는 습관을 강화해야겠다는 다짐을 한 번 더 해 본다.
네 번째 낭독시 「눈을 감고, 기억을 흔들면」은 케이크 속에 미로와 같은 길을 내면서 걷는 어린 여자아이 같은 기분이었다고 박연준 시인은 말해주었다. 하지만 시를 읽으면서 그려지는 그림은, 어둠 속에서 그리움과 불안함이 교차된 감정을 안은 채 무언가를 찾고 있는 성인 여성의 모습. ‘당신 입술을 손가락으로 걷던 날’을 추억하는 어린 여자아이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다섯 번째 낭독시는 또다시 아버지가 등장하는 「환절기」. 이미 시간을 다 써버려서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생각에 쓴 시로, 고령사회가 된 지금 특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이다. 누구나 90세까지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살다가 사나흘 가볍게 앓고 세상을 떠나는 인생을 꿈꾸는데, 현실은 중년 즈음 이런저런 병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해 온갖 약에 의존하며 여생을 보내는 상황이다.
약에 의존하되 행동에 제약 없이 제 몸 하나 건사하는데 무리가 없으면 다행이지만, 누군가의 보살핌을 365일 24시간 필요로 하는 상태가 된다면…… 그건 이미 나의 살아있는 시간을 다 써버렸다는 뜻이 아닐까? 그렇다 하더라도 보살펴 주는 상대가 기꺼이 감내한다면 나의 살아있는 시간은 아직 유효한 것일까? ‘머리칼의 질량으로 아픔을 견디어보세요 / 당신은 이미 시간을 다 썼는걸요.’ 가뜩이나 적은 숱이 그나마도 점점 줄어들고 가늘어지고 있는 머리칼의 질량으로 견딜 수 있는 아픔은 어느 정도일까? ‘가끔 절망한 내 모습을 보고 싶어 / 혼자 사진을 찍었다’ 남아 있는 날 중에 오늘이 가장 젊은 날, 그럼에도 바로 찍은 사진에는 내가 보는 가장 나이 든 내가 있어, 절망까지는 아니더라도 착잡한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상태를 억지로 수년을 이어가는 것이 과연 이치에 맞는 것일까? 어려운 물음이 많아진다.
마지막 낭독시는 「뒤집어진 게가 있는 정물」이었는데, 이 시의 ‘일흔두 개의 동그라미 속에 숨어 있는 한 개의 하트’과 관련된 박연준 시인의 직관력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어느 노트표지에 그려져 있는 동그라미들을 보고 무심코 그 개수를 직관적으로 적어 넣었는데, 실제로 세어보니 정확히 동그라미 개수가 일치했다는 이야기. 아마도 그 수가 일흔 두 개였나 보다. 열 개 이하의 수였다면 대.단.한. 직관력이라고까지 말하지는 않았겠지…….
직관력과 함께 떠오르는 용어는 사후 확신 편향. 노트의 동그라미 수 일흔두 개를 먼저 세고 난 후, ‘어쩐지 동그라미가 일흔두 개일 거 같더라.’라고 말하는 나 같은 사람은 시를 쓰기 어렵겠다며 뜨끔했다. 직관력이 없어 시 쓰기가 어렵다면, 다르게 혹은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라는 박연준 시인의 말, 세상에서 새로운 것을 발명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는 있다는 시인의 격려에 힘입어 부지런히 눈썰미를 키워봐야겠다. 세심하게 살피고 떠오르는 생각의 실마리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 보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어느덧 시낭독회는 끝이 나고 시는 소리가 되고 싶어 하는 장르이자, 시인은 배우라는 박연준 시인의 명언, 그리고 발레를 하는 시인의 모습이 남았다. 시낭독회를 마친 기분을 표현하자면, 새 학기 서먹했던 친구에 대해 하나하나 알게 되며 조금씩 가까워지듯이, 시와 조금 좀 더 친해진 것 같은 기분이다. 시와 발레의 공통점인, 중심을 유지하는 강한 힘을 기르기 위해 꾸준히 훈련하며 느끼는 박연준 시인의 기분은 ‘사랑하는 기분, 성스러운 영역에 속한 기분’이라고 한다. 어느덧 시인 등단 20주년이 되는 박연준 시인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며, 언젠가 시와 발레를 접목한 작품이 박연준의 이름으로 탄생하기를 바라본다.
*참고 자료
1. 『쓰는 기분』 박연준, 현암사, 2021
2. 『모월모일』 박연준, 문학동네, 2020
3. 톱클래스, [박연준의 응시] 시는 발레를 닮아서, 2023년 5월 호. (http://topclass.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31692)
4.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박연준, 문학동네, 2012
5.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요조, 마음산책, 2021
6.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자키스/유재원, 문학과지성사, 2018
7. 반달서림의 박연준 시인 시낭독회 안내문 (https://blog.naver.com/bandalseorim/2228978837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