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6월 14일 (토요일) 장소: 묵리459
* 2025년 6월 14일 (토요일), 장소: 묵리459
묵리459는 카페로서의 그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호기심으로 어느 주말에 남편과 한 번 들러 보기도 했었다. 두 동의 건물로 구성된 카페 입구에 조성된 예쁜 정원에는, 나무 한 그루를 중심으로 둥글게 벤치가 위치하였는데, 마침 날이 좋아 벤치에서 야외 풍경을 보며 음료와 간단한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카페에 들어가는 입구, 현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선의 농담이 느껴지는 수묵화를 반전시킨 듯한 검은 바탕에 여러 개 하얀 선의 호는 누가 봐도 별의 일주운동을 그린 것이 틀림없었고, 흰색 선을 겹겹이 그어 표시한 두 개의 사각형의 형태는 바로 묵리459 카페 두 동의 건물을 의미한 듯했다. 현판에 쓰인 글귀는 다음과 같아 카페의 정체성을 한 번 생각하게 했다.
“갓 맑은 산수를 품은 묵리에서 세상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는 우주를 떠 올립니다. 무한의 우주에 남겨진 별의 흔적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묵리 459의 정원을 펼쳤습니다.
별의 궤적을 따라 차단된 시선을 걸어오며 지난 일에 머무르지 않는 법을 배웁니다.
또 묵리459 웹페이지에서 본, 묵리가 예부터 먹을 만들던 마을이며, 먹의 농담을 닮은 곳에서 그늘의 정신을 묵리459에 담는다는 설명도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두 동의 카페 중 입구의 오른쪽은 여느 카페와 마찬가지로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실 수 있는 목적에 충실한 공간이었고, 입구의 왼쪽은 그 목적 외 다른 용도로도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공간이었다. 뒤쪽에 큰 유리창은 전체적으로 삼각의 형태를 띠어 산을 형상화하며 유리창 뒤로 보이는 숲의 사계절을 마주하게 하고, 천장에서 내려와 가로로 길게 위치한 검은 간접 조명은 산 허리에 걸친 구름을 보는 듯 해, 공간 그 자체로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했다. 유리창 뒤 숲의 푸르름이 강렬하여 산수화는 흑백 산수화가 아닌 진채 산수화로 분류할 수 있을 듯하다.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그 왼쪽 공간에서 아르케컬처의 무지카클래시카 <오르페우스와 별들> 음악회가 열린다는 것이다. 저녁 7시 30분부터 시작하는 음악회라 유리창 뒤로 보이는 숲의 빛이 서서히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실제 연주를 감상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오르페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좀 생소했는데, 역시 친절한 아르케컬처 대표님이 음악회 안내글에 그 배경을 소개해 주셨다.
“‘오르페우스 Orpheus’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가, 시인, 예언자 중 한 사람으로 음악의 신화적 기원과도 같은 인물이에요. 예술과 사랑, 죽음과 재상, 언어와 침목에 이르는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지요.
…
오르페우스의 리라는 음악과 우주의 조화를 상징하는 신성한 악기였습니다. 그리고 오르페우스가 죽은 뒤, 그의 리라는 제우스에 의해 하늘로 올라가 ‘리라 자리’가 됩니다.”
위와 같은 사전 지식을 가지고 음악회에 참여했다. 이번에는 남편 그리고 큰 아이까지 세 명이 참석해, 혼자 참석을 시작한 음악회가 회를 거듭할 때마다 참여하는 가족이 늘어나는 셈이 되었다. 가족이 함께 하는 기억이 쌓일수록, 훗날 회상하며 미소 지을 수 있는 추억도 늘어날 테니 그런 의미에서도 아르케컬처의 무지카클래시카는 우리 가족에게 소중한 음악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전 음악회에 참여하셨던 이젠 낯이 익은 고정 관객들과 짧게 인사하고, 청록의 한연희 시인을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한 후 1열을 부담스러워하는 남편과 아들을 배려하여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윽고 음악회는 시작되었는데, 카페의 영업시간은 8시 30분이라 약 1시간 공연시간이 겹쳤다.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인지하는 순간이 있다. 이 때도 그랬는데, 묵리459의 두 건물동은 중간의 짧은 복도로 연결되어 있고 두 공간을 분리하는 벽이나 문은 없었다. 연주 시작 전 고요의 순간, 오른쪽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소리들, 이를 테면 식기가 포크와 나이프에 닿는 소리나 주방에서 음료와 음식 준비하는 소리들이 공기를 통해 전해져 왔다. 이동식 파티션이라도 설치가 되었었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찌 되었건 잡음 같은 소리는 들려와 맨 뒷좌석에 있던 나는 그 소리를 극복하고, 연주회에 좀 더 집중하고자 노력했다. 음악회의 분위기가 좋았고 또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그 상황에 금세 익숙해지긴 했으나, 처음 그 뜻밖의 소리를 인지했던 그 순간의 당황함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혹, 묵리459 관계자가 이 글을 보신다면 왼쪽 공간에 문을 설치하는 것을 고려하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는다면 음악회를 할 때는 이동식 파티션, 가능하면 방음기능이 있는 파티션을 배치하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다음은 아르케컬처 대표님의 설명을 곁들이고 버무려 쓴 나의 <오르페우스와 별들> 음악회의 연주곡 감상이다.
연주곡은 대부분 오르페우스와 그의 아내 에우로디케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는데, 첫 번째 연주한 벤야민 고다르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연주곡 No. 1, I. Allegretto>은 두 대의 바이올린과 대화하듯 연주한다는 설명에 적합하게 오르페우스와 에우로디케의 행복했던 한 때를 대화하며 노래하는 것 같았다. 지난번 <Tune & Tea> 음악회에서 대표님이 말하길, 이번 무지카클래시카 시리즈 공연에서 벤야민 고다르의 <6 Duo for Two Violins>를 모두 연주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 이번이 그 두 번째 곡으로 오르페우스와 에우로디케의 이야기에 딱 어울리는 선곡을 한 대표님의 선구안이 놀라웠다.
두 번째 곡은 루이스 봉파의 <카니발의 아침>으로 영화 《흑인 오르페 (Orfeu Negro)》의 OST였다. 《흑인 오르페 (Orfeu Negro)》는 1959년 영화로 프랑스, 브라질, 이탈리아가 합작해 브라질을 배경으로 하였다고 하는데, 제목에서 연상되듯 영화 줄거리는 현생에서 반복되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운명적 사랑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슬픔엔 끝이 없지만, 행복에는 끝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카니발의 아침>의 플루트와 피아노 연주에 구슬픔이 담겨 전해졌다.
세 번째 곡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D Minor, BMW 1043, III. Allegro>에는 초반의 긴박함과 장엄한 결말이 느껴졌다. 아르케컬처 대표님은 이 음악이 목양의 신 ‘판 Pan’이 요정 ‘시링크스 Syrinx’을 추격하는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고 설명했는데, 과연 두 대의 바이올린의 격정적인 연주가 쫓고 쫓기는 상황을 잘 표현하고 하고 있었다. 판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시링크스는 판에게 쫓기다가 강가의 갈대로 변하는데, 판은 그 갈대를 꺾어 ‘팬파이프 Panpipes’를 만들어 불었다는 신화. 이 팬파이프를 불면 목동이 두려움에 떨었다고 해서 공포나 공황을 의미하는 Panic의 어원이 만들어졌다고 한 설명을 보고 다시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D Minor, BMW 1043, III. Allegro>을 들으니 시링크스의 도주가 한층 절박하게 다가온다.
네 번째 곡은 재즈 피아니스트 브래드 멜다우가 2024년 발매한 앨범 《After Faure》의 <Prelud>. 몽환적 분위기의 피아노 연주는 점점 어두워지는 연주 무대 뒤 배경과 어우러져, 낯선 행성 또는 오지에 홀로 남겨진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였다.
다섯 번째 곡 앙리 베르 <녹턴 No. 1, I. Andante>으로 정령들의 한가로운 한때를 지나, 여섯 번째 곡 라벨의 <Tzigane>의 다차원적 음악을 감상하였다. 도입부는 피아졸라가 연주 여행 중 접한 아버지의 별세 소식에 만든 음악 <아디오스 노니노>도 연상되었지만, 음울한 기조가 깔린 묘한 분위기에서 광기로 이어지는 듯하다가 다시 경쾌하고 묘한 분위기로 가는 음악은 가히 다차원적 음악이라 불릴 만하였다.
일곱 번째 곡인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은 두 대의 바이올린과 플루트로 점점 커져가는 슬픔을 표현하며 마침내 에우리디케와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오르페우스를 보여주려 하였다고…… 과거부터 여러 상황에 주제곡으로 애용되는 명곡인 비창에 또 하나의 상황이 더해진 그림이 만들어졌다.
여덟 번째 곡인 마누엘 퐁세의 <작은 별>로 나를 지켜봐 주고 있는 작은 별 하나, 그리고 궤적으로 남은 별들의 길이 마음에 내려앉았고, 마지막 앵콜곡 Coldplay의 <Viva La Vida>를 신나는 바이올린 연주로 들으며 토요일 밤 활기를 찾았다.
모든 공연은 끝나고, 어둠이 내려앉은 묵리459를 나와 집 앞 이자까야에 들러 가족 뒤풀이를 하였다. 기분 좋은 유월 주말 밤이었다.
* 참고자료
1. 아르케컬처의 무지카클래시카 @묵리459 <오르페우스와 별들> 안내글 (https://blog.naver.com/archeculture/223878802021)
2. 묵리459 (https://mukri459.com/aboutus)
3. 묵리459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DK9yvxSJ0if/) (https://www.instagram.com/p/CenC95np4mu/)
4. [출처] 묵리 459 .우주, 별,그리고 나|작성자 크리야 (https://blog.naver.com/kriya67/224069655859)
5. 《흑인 오르페 (Orfeu Negro)》 마르셀 카뮈 감독, 브레노 멜로 주연, 1959
6. 씨네21 《흑인 오르페 (Orfeu Negro)》 https://cine21.com/movie/info/?movie_id=642)
7. 아르케컬처 유튜브 채널 재생 목록 중 「오르페우스와 별들」 음악회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8UUJ1D1syiSFxP3lk_hQYVCtumedchDd&si=_QizsaTzqcYNm7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