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를 읽고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허블, 2019
일곱 편의 SF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이 책은 마치 무지개 같습니다. 책 표지의 그림 속 투명한 저 들판에 빛나는 여러 행성을 보며 일곱 빛깔 고운 무지개가 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일곱 개의 단편을 읽으며 각각의 단편이 나타내는 색을 느껴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마음속에 떠오른 색을 대입하여 감상을 표현해 봅니다.
빨간색은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주인공 가윤이 어린 시절부터 재경이모를 영웅으로 삼고 가졌던 우주인이 되고자 하는 열망은 그야말로 열정의 빨강입니다. 재경은 우주터널 너머로 건너가 건너편 우주를 탐사하는 임무 수행을 위해 떠난 우주에서 터널 진입 전 우주캡슐 폭발 사고로 동료 비행사들과 함께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마침내 가윤은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고 우주인이 되어 최초로 우주터널을 건너는 데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영웅인 재경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지요. 아니, 바다에 투신하였다고 하는 재경이 정말 죽었는지도 확신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녀는 사이보그 그라인딩을 통해 제2의 몸을 얻었으니, 깊은 바다라는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영화 《아쿠아맨》에서 니콜키드먼이 연기한 아틀라나처럼 말이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워킹 맘으로서의 재경은 마흔여덟에 우주비행사가 되어 각종 우주미션을 성공하는 쉽지 않은 일을 완수하여 많은 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존경을 받습니다. 충분히 영웅으로 여겨질 만한데, 동시에 사람들의 질투와 증오도 받아 재경이 괴로워했다는 것을 딸 서희에게 하였다는 “나는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는데. 그렇지?”라는 말로 알 수 있습니다. 재경은 대중에 대한 야속함과 자신이 정말 원했단 자유를 우주가 아닌 심해에 풀어놓았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유는 우주에도 심해에도 풀 수 없으니 다른 곳에서 그 대상을 찾고 있는 중일 테죠. 열망을 이룬 가연의 우주터널 통과 임무가 기쁘기도 하면서, 한편 2008년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이었던 그녀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주황색은 「스펙트럼」. 색채학적으로 볼 때, 주황은 경계, 위험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비현실적이면서 자유분방함을 상징하면서 따뜻하고 풍부하며 활기찬 자연적인 느낌을 주며 친근함을 상징하기도 한다고 하네요. 그런 면에서 「스펙트럼」은 주황색과 잘 어울리는 듯합니다. 외계생명체 탐사를 위해, 서른다섯 살 젊은 시절 생물학자로서 우주탐사선에 올랐지만 우주에서 실종되고 그로부터 40년 후 태양계 밖에서 구조된 할머니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비현실적이면서도 친근하다고 해야 할까요? 소설 속에서 등장한 외계생명체에 대한 경계와 위험도 느낄 수 있고 말이죠. 우리는 지구의 존재와 문명을 기록한 골든 레코드를 싣고 외계생명체를 찾아 태양계를 떠나 지금 이 시간에도 우주 항해 중인 보이저 호를 알고 있습니다. 지구라는 행성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광활한 우주 수없이 많은 행성 중 어딘가에 누군가 있다는 것의 반증. 소설에서는 두 종류의 외계인이 언급됩니다. 지구인들의 접촉을 달가워하지 않고 방해하지 말라는 의지를 명확히 표현하며 지구의 탐사선을 소멸시켜 버린 외계인과, 할머니가 40년간 지냈던 행성의 주인인 외계인. 특히 할머니와 함께 살며 그림을 그렸던 ‘루이’들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 친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습니다. 각각의 루이들은 5년 미만의 수명을 가졌지만 다음 세대 ‘루이’로 정신이 연결됨으로써 마치 동일 개체로 인식되는 루이’들은 일종의 기록가였습니다. 생물학자 할머니가 루이들을 관찰하였듯, 루이들도 할머니를 관찰하고 일종의 그림 형태로 기록을 남겼는데, 나중에 그 기록을 해독해 낸 할머니가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라고 쓴 루이의 기록 대목에서 항상 미소를 지었다는 것을 보아 할머니도 루이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꼈던 것이겠죠. 영화《콘택트》에서 조디 포스터가 연기한 천체물리학자 앨리 박사가 1인승 행성 간 워프 시스템에 탑승하여 우주 항해를 하던 중 그녀의 돌아가신 아버지 모습으로 나타나 외계문명에 대해 설명해 주는 외계인이 자연스레 연상됩니다. 앨리 박사가 외계인을 만나러 갈 때 이용한 1인승 행성 간 워프 시스템은 외계문명에서 알려준 대로 제조한 것으로, 앞으로 언젠가 외계의 존재를 만난다면 이렇게 친절하고 따스한 외계인이면 좋겠습니다.
노란색은 제일 귀엽게 읽은 소설인 「공생 가설」. ‘뇌의 해석 연구소’ 소속 연구원인 수빈과 한나가 말하기 전 단계의 옹알이하는 아기들의 뇌 활성 패턴을 연구하면서 세운 가설은, “아기들의 뇌 속에는 공생하는 여러 존재들이 있고 아기가 7살의 아이가 되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아기들 뇌 속에 존재하는 여러 인격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아기들은 감정과 마음, 이타심이나 윤리 등을 배우며 독립된 인격체로 자란다는 참신한 가설. 영화 《인사이드아웃》이 생각납니다. 물론 이 영화는 감정을 담당하는 존재들이 자신들이 맡은 각자의 감정역할에 충실할 뿐 주인공에게 어떤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요. 이 땅에서의 전생 기억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 이야기처럼 다소 익숙한 설정의 이야기들을 접하다가, 새로 태어난 아이들의 머릿속 우주적 존재의 공생이라는 스케일이 남다른 설정의 이야기를 접하니 마치 좁은 곳에 있다가 광활한 곳으로 나왔을 때의 느낌처럼 잠시 머릿속이 핑그르르 돕니다. 거기에 미토콘드리아가 세포 안으로 들어와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관으로 기능하며 세포와 공생하는 과학적 사실을 변형하여 소설의 소재로 사용한 작가의 기지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네요. 또한 우리 모두 아주 어린 시절을 명확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에 착안하여, 아이의 뇌에 공생하는 존재들이 아이가 7살이 되어 떠날 때 아이의 기억들도 함께 가져간다는 것도 ‘공생’이라는 개념에 충실한 설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완전히 의지하는 ‘기생’이 아닌 ‘공생’이라니 참 바람직한 모습이네요. 아이들 뇌 속에 7살 때까지 아이들의 인격 교육을 담당하는 보육자가 있다는 상상. 든든한 유치원 선생님들과 항상 함께 하는 아이들이라는 의미에서 이 「공생가설」의 색깔은 귀여운 병아리, 봄날과 같은 노란색이 당연합니다.
초록색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에서 제2의 삶을 살고 싶어 했던 안나의 남편과 아들은 슬렌포니아로 향하는 우주선에 먼저 오르고, 안나는 우주여행에 활용할 수 있는 ‘안티프리저’ 개발을 마무리한 후 슬린포니아로 뒤따라 떠나기로 합니다. 이 가족이 제2의 삶을 살기 위해 향하는 살기 좋고 자원이 풍부하다는 저 슬렌포니아 행성은 아마도 초록색 식물도 많이 있는 그린 행성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요? 안나가 개발하는 ‘안티프리저’는 애초에 우주개척시대의 장시간 우주항해가 가능케 하는 딥프리징 기술에 활용되는 물질이었습니다. 하지만 우주 공간에서 웜홀이 발견되고, 이 웜홀을 이용하여 공간을 수축함으로써 짧은 시간의 우주항해가 가능해짐에 따라 딥프리징 기술의 적용 분야가 축소가 되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해당 연구를 지속하고 마침내 컨퍼런스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로 합니다. 컨퍼런스를 마치면 곧바로 가족이 있는 슬렌포니아 행 우주선에 몸을 싣기로 계획하였는데, 하필이면 컨퍼런스가 있는 날이 슬렌포니아로 떠나는 우주선의 마지막 운행일이라니요……. 웜홀로 우주여행이 자유로워졌지만, 슬렌포니아 주변엔 웜홀이 없었고, 따라서 오랜 기간이 걸리는 슬렌포니아로 가려는 사람이 줄다 보니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노선을 폐쇄한다는 당국의 결정이 참 아이러니 합니다. 영화 《카》에서 고속도로가 생기고 쇠락의 길을 걷는 국도변의 마을과도 같은 운명이라고나 할까요…….
안나는 컨퍼런스 발표 시간도 앞당기고 진행도 서둘렀지만 결국 마지막 우주선은 놓쳐 버립니다. 그리고는 100년 전에 폐쇄된 우주 정거장에 머물며 자신이 개발한 안티프리저를 활용한 냉동 수면 기계를 이용해서 생명을 연장하면서, 오지 않을 우주선을 기다리다 마침내는 그 우주 정거장을 폐기하기 위해 온 직원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냉동하고 해동하여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고 있지만 냉해동을 할 때마다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뇌세포의 느낌. 그리하여 자신이 동결 중인지 깨어있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 다는 말을 하는 안나는 어떤 감정이었을까요?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기억마저 언젠가는 떨어져 나갈 테고, 그 때가 되면 정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거라는 두려움을 갖지 않았을까요? 안나는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선택을 합니다. 그녀를 위해 누구도 마련해 주지 않는 슬렌포니아행 우주선 대신 자신의 낡은 우주선을 타고 지구와 반대 방향, 아마도 슬렌포니아 행성을 목적지로 정하고 항해를 시작하는 선택을요. 슬렌포니아까지 다다를 수 없는 상태의 우주선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 선택을 포함하여 그녀가 살아오면서 중요한 순간순간 스스로 내렸던 그 결정들은 초록불 그린라이트였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선택, 이해하며 존중합니다.
파란색은 「감성의 물성」. 이 책의 단편소설 중 유일하게 남자가 주인공입니다.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형태의 감성 물품이라……. 문득 잠자는 고양이나 강아지 인형이 떠오릅니다. 보드라운 털을 손끝으로 만지며 쓰다듬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들죠. 실제 고양이나 강아지의 눈을 보며 쓰다듬는 것만 못하지만요. 이 소설의 주인공은 긍정적인 감정의 물체가 상품으로 제조/판매되는 것은 이해하지만 ‘증오체’나 ‘우울체’, ‘분노체’와 같이 부정적인 감정의 물체를 판매하고 구매하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즐거움이나 쾌락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지만, 슬퍼하기 위해서 또는 분노하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니까요. 그런 것들은 사는 동안 많이 겪고 싶지 않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감정들이지요. 하지만 이 소설에서 말하는 감정의 물체는 그 감정 자체를 사고파는 것이라기보다는, 내 감정을 그 물체에 투영함으로써 객관화할 수 있는 물체인 것으로 보입니다. 때때로 주체할 수 없이 치밀어 오르는 화는 ‘분노체’를 사용함으로써, 끝도 없이 가라앉는 우울은 ‘우울체’를 사용함으로써 객관화하여 내 안의 화와 우울을 직시하고 보살필 수 있을 것이기에 주인공의 여자 친구를 포함한 적지 않은 이들이 찾는 것이 아닐까……. 이불 킥하며 후회하는 것 대신 ‘후회체’의 물건을 사서 그 물건을 사용하며 후회의 감정을 객관화하여 다스리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으니, ‘후회체’의 물성은 어떤 것이 좋을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이들 감성체를 개발한 회사인 이모셔널 솔리드사의 대표가 감성체에 대해 설명할 때 입었던 옷 색깔인 남색, 그렇다면 이 소설이 남색에 적합할까 생각도 해보았으나, 주인공의 여자 친구가 집착했던 ‘우울체’에 대해 주인공이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부분이 더 중요하기에 ‘우울’의 색깔인 파랑, 역시 이 소설은 파란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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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색은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인디고라고도 불리는 남색은 깊은 지식과 지혜의 색으로 예지, 영감, 초능력, 종교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색이기도 하고, 무한대의 창조력과 영감력, 잠자고 있는 잠재의식, 무의식세계, 신비의 세계, 영적인 세계를 상징하는 색이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인이 되기 위해 시초지로 순례 여행을 떠나는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의 색깔은 남색에 어울릴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되는 통과 의례로서 떠나는 순례에서 사람들은 앞으로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자기만의 무언가를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에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아직 순례 여행을 떠나지 않은 데이지는 모든 순례자들이 ‘마을’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 이유를 궁금하게 여깁니다. 호기심이 데이지를 금서 구역으로 이끌고, 그곳 서가에서 데이지는 마을을 세운 릴리와 올리브의 실체를 마주하며 그 진실을 알게 되지요. 맞춤형 인간 설계가 가능해진 시대, 바이오해커로서 그 최첨단 기술의 선봉에 있던 릴리였지만 얼굴에 흉터가 남는 자신의 유전병을 그대로 딸 올리브가 물려받습니다. 이에 릴리는 지구를 떠나고 어느 행성에 외모 등으로 인한 차별이 없는 이상적인 사회 ‘마을’을 만듭니다. 자신의 사랑하는 딸 ‘올리브’가 차별받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든 도시 ‘마을’.
올리브는 ‘마을’에서 시초지로 향한 최초 순례자였을 것입니다. 순례자로서 방문한 지구, 그곳에서 ‘마을’에서 자라는 동안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자신의 결함을 알게 됩니다. 모두 기계 자궁에서 태어나며, 장애가 어떠한 방해도 되지 않고, 갈등이나 고통, 불행은 상상의 개념으로서만 존재하는 ‘마을’이 얼마나 행복한 곳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리브는 자신의 역할을 다한 후 행복한 ‘마을’을 떠나 다시 지구로 돌아가 남은 생을 보내지요. 지구에서 자신이 받을 불평등과 차별을 감수하고 그러한 결정을 내린 이유는, 그녀가 사랑하는 이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상의 유토피아라 할지라도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이가 없는 곳이라면 그곳은 더 이상 유토피아가 아닐 것입니다. 올리브는 어려움을 헤쳐 나갈 힘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향해 떠난 것입니다. 그러니 올리브 이후에도 지구를 선택하는 ‘마을’ 순례자들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 우리의 주인공 데이지도 그중 한 명이 되어 자신의 결정에 따른 설명을 소피에게 편지 형식으로 남기며 이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며 3대 디스토피아 소설 중 하나라고 하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떠올렸습니다. 1931년에 쓰인 소설이지만 90년이 지난 지금 쓰인 소설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소설 말입니다. 소설 집필 당시 신기술이었거나 현실화되지 못했던 소설 속 과학기술들은 현재 많은 부분 실용화되고 있으니, 『밤이 선생이다』에서 황현산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문학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네요. 사람들을 함께 꿈꾸게 만들고 함께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문학,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상상하는 과학기술도 문학에서 먼저 적용되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취지의 글로 이해하며 책을 읽는 당시에도 가슴에 남았는데,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읽으면서도 자꾸 그 내용이 떠오릅니다. 여성이 몸으로부터가 아닌 컨베이어벨트 위의 병 속에서 배양되어 태어나는 인간, 인간에게 등급을 부여하고는 등급에 맞게 각자의 역할을 하는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라 여기며 그에 맞추어 인간을 양육하는 『멋진 신세계』와, 기계 자궁에서 태어나는 인간들로 이루어진 고통과 불행이 없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차별하지 않는 유토피아‘마을’ 배경의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여러 모로 닮았습니다. ‘이상적인 사회란 과연 어떤 사회를 의미하는가?’와 같은 주제를 포함해서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도 비슷하네요. 아마도 이 두 소설을 천천히 비교하며 읽고 좀 더 생각을 깊게 해 볼 것 같습니다.
보라색은 「관내분실」. 가시광선 내 가장 높은 에너지를 갖는 신비한 색 보라색은 영적인 색이라고도 할 수 있어, 이 세상을 떠난 이들의 마인드를 저장해 놓는 도서관을 배경으로 하는 「관내분실」은 보라색이 잘 어울립니다. 아프리카에는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속담이 있다고 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마인드를 도서관에 보존을 하니 더 이상 불타는 도서관은 없는 시대이겠네요. 대신 보존된 마인드 한 개가 도서관 내에서 사라지는 일이 주인공 지민에게 일어나죠. 도서관 안에 있기는 있되 어디에 있는지 몰라 열람(?)할 수 없는 마인드는 지민의 어머니 마인드입니다. 현실 도서관에서도 도서검색으로 도서 위치를 확인한 후 해당 위치에 가면 책이 없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은 대출되었던 책이 반납되어 사서가 제자리에 정리하기 전인 책들이지만, 가끔 엉뚱한 자리에 가서 꽂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가 관내에서 분실된 책들이라서 그런 책들은 살포시 꺼내어 정리를 위한 북카트에 올려두곤 하는데, 도대체 어머니의 마인드는 지정된 장소를 벗어나 도서관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 것일까요? 정서적으로 그다지 친밀하지 않은 지민과 어머니였기에,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도 어머니의 마인드를 열람할 생각이 없었던 지민은 본인이 아기를 임신하고서 문득 어머니를 떠올렸고 아무런 목적이나 기대 없이 어머니의 마인드를 만나고자 방문했던 것뿐인데, 관내분실이라니……. 지민이 당혹스러울 만합니다. 몰랐다면 모른 채로 그냥 지낼 수 있겠지만, 아무리 살갑지 않은 딸이라 할지라도 어머니 마인드가 관내분실 되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대로 있을 수는 없는 일, 어머니의 마인드를 찾기 위해 지민은 일련의 행동을 하게 되고 그 행동을 따라가는 독자는 지민의 마음이 어머니와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지민이 어머니 마인드 찾은 후 어머니를 대하며 건네는 “엄마를 이해해요.”라는 말과 그 말에 반응하여 지민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가에 고인 눈물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게 되죠.
어머니 마인드가 도서관 내에서 사라지게 된 것은 지민의 아버지가 한 행동이었고 그것은 다름 아닌 어머니 자신의 부탁이었습니다. 애초에 자신의 마인드를 남기는 것 자체를 어머니는 반대했지만 홀로 남겨질 남편으로서 그것만큼은 견디기 어려웠을 터, 아내를 설득해 타협한 것이 관내에서의 실종입니다. 지민이 어머니 마인드를 찾기 위한 실마리를 잡고 퍼즐을 맞추어 가는 동안 퍼즐 위 그림으로 또 한 명의 『82년생 김지영』 이 보이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아니 지민의 어머니뿐 아니라 지민이도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으니 두 명의 김지영이네요. 크고 작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 사람의 여성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동안 겪는 변화는 분명합니다. 특히 출산이나 육아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거나 직종을 변경해야 하는 나름의 희생을 하였는데, 자신이 희생한 정도로 육아나 교육에서 만족할만한 보람을 찾지 못한 지민의 어머니 같은 경우는 허무함과 자괴감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고,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며 자라는 지민과 유민 남매가 어머니에게서 거리감을 느끼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겠죠.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될 준비를 하는 지민도 이제야 당시 어머니의 상황을 이해하며 진정으로 어머니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이러한 이해가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 테지만 아마 그러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사람이 성장 단계에 맞춰 이해의 정도도 달라지기 마련, 따라서 지민이 직접 자신의 아이를 갖기 전에는 진심으로 어머니를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대신 지민이 아이를 출산할 때도 어머니가 생존해 계셨다면 그 경우에는 어머니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소설을 읽으며, 점차 활발해지고 있는 여성의 사회 진출만큼 가정 내에서의 남녀 역할도 조정의 필요성과 이를 위한 가족구성원 간 진솔한 대화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대화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우니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죠.
여하튼 미래에는 죽은 이를 추모하기 위한 장소로 죽은 이의 마인드를 보관하는 이런 도서관이 있어도 좋을 듯합니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간이 너무 길어지거나 영영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하는 염려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나날이 발전하는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 기술 덕분에 오히려 그 공간에 만나는 현실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이상 일곱 편의 소설에 대한 감상을 끝내며 전체적인 마지막 감상을 덧붙일까 합니다. 먼저, 2017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으로 「관내분실」, 가작으로「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동시 수상하였다는 깜짝 놀랄 이력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초엽 작가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이 책에서 「감성의 물성」을 제외한 모든 소설의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 - 사실 「감성의 물성」조차도 주인공은 남성이지만 실제 ‘우울체’를 사용하는 그의 여자 친구가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가 평소 생각했던 주제에 과학지식 기반의 과학적 상상력을 입혀 만든 이야기라는 점에서 소설 속 구석구석 자연스럽게 김초엽 작가를 느끼게 됩니다. 화학을 전공한 과학도로서 석사과정을 마친 작가의 또 다른 이력과 아직 서른 살이 되지 않은 작가의 젊은 나이가 김초엽 작가의 다음 작품들을 기대하게 만드네요. 좋은 작가로 성장하면서, 새롭게 발견되는 다방면의 과학적 지식을 소화하여 철학을 녹이고 다양한 유형의 인물들이 어우러져 등장하는 SF 작품의 다음 발표를 즐겁게 기다리겠습니다.
* 다음 포스팅과 관련이 있어 2021년 용인시 전국 독서감상문 대회 「처인성」에 응모한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