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창작회의 시낭독회
* 2025년 12월 20일 (토)
이 날은 반달서림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시창작회 ‘시인은 못 돼도’의 2025년 시낭독회 날. 회원들만 참석하는 시낭독회에 서점 스텝으로 참여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어 아침부터 설렜다. 하루 전인 금요일에는 아들이 ‘벚꽃전차‘라는 이름의 책장 책 사이를 장식하는 오브제를 만들어 선물로 주었는데, 너무 예뻐 반달서림에 두고 함께 있고 싶어서 귀찮음을 무릅쓰고 가져왔다. 반달서림 이곳저곳에 오브제를 두고 사진을 찍으니, 잘 어울리는 커플을 보는 듯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 밖에 또 이 날 서점원으로서 뿌듯했던 것은, 실물 카드가 아닌 멀티패드로 결재하는 방법을 완전히 습득한 것. 실물카드가 아닌 NFC (Near Field Communication, 근거리 무선 통신) 기반 모바일 결재를 위해 핸드폰을 건네받을 때마다 살짝 긴장하고는 어찌어찌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 격으로 결재를 하거나, 버벅대는 서점원을 안쓰러워 한 손님이 결재를 해 주었는데, 이제 그 사용법을 알았으니 두려움은 안녕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뿌듯함은 2025년 지역화폐의 마지막을 책 구입으로 소진한 손님을 만난 것. 오전에 지역화폐 사용 가능여부를 전화로 문의하신 손님이 오후에 오셔서 책을 구매하셨다. 손님은 지역화폐로 전환된 '천권으로 독서포인트'를 사용하기 위해 우리 서점까지 오셔서 책을 구매하신 그 고운 마음이 고마웠다. 생각난 김에 경기도서관에서 진행하는 2026년의 “천권으로 독서포인트” 활동을 찾아보니, 3월 17일부터 시작한다는 소식이다. 작년에는 이런 활동이 있는지 몰라 놓쳤지만, 올해는 꼭 참여하여 쌓은 독서포인트가 전환된 지역화폐를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다져본다.
도서관에서 빌린 윤가은 감독의 에세이 『호호호』를 하하하 웃으며 읽다가, 오후에 있을 시낭독회의 시들이 실린 문집 『시인은 못 돼도 2025』를 예습했다. 『시인은 못 돼도 2025』는 목요일 시창작회 운영자이자 시에 진심인 김승일 시인의 여는 글로 시작하여, 8명의 시우 (시벗이라고도 하며 함께 시를 배우고 쓰는 회원들을 말함)가 저마다 지은 5편의 시와 시작노트가 이어지고, 반달서림 유민정 대표의 닫는 글로 마무리된 문집이었다.
문집을 읽고 난 느낌은, '‘시인은 못 돼도’ 시우분들은 내게는 이미 시인이다!'라는 생각. 다들 어쩜 이렇게 맛깔나게 찡한 시를 쓰시는지……. 2024년 2월과 3월에 반달서림 시필사 모임 ‘반달과5펜스’에서 『시인은 못 돼도 2023』의 시를 필사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시를 필사하면서 다양한 시의 형태와 감성에 감탄했는데, 그때 필사했던 시를 지은 시우들의 시들이 이번 문집에도 실린 것을 보고 해를 몇 번이나 바꿔가며 시창작 활동에 참여하는 꾸준하고도 진실한 시심이 전해져 시낭독회가 더욱 기대되었다.
시우들이 가져갈 꾸러미를 포장하고 이것저것 준비하니 어느새 시낭독회 시간이 가까워졌다. 가장 멀리 전주에서 오신 시우가 가장 먼저 도착하고, 이윽고 다른 시우들과 김승일 시인까지 모두 모였다. 자리 세팅을 다시 하느라 4시를 10분 넘겨 시작한 시낭독회는 열정적 진행으로 7시를 조금 앞두고 끝났다. 김승일 시인님 사회로 6명의 시우님들 모두 자신의 시 세 편을 낭독하고 시에 담긴 이야기를 나누었고, 과연 기대만큼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시창작회는 목요일 저녁반과 화요일 오전반으로 운영되어 있었는데, 목요일 저녁반 운영자는 김승일 시인, 화요일 오전반 운영자는 한연희 시인으로 (2025년 한연희 시인이 도서관 사서가 되면서 현재 화요일 오전반 운영자는 박한 시인으로 변경되었다.) 아쉽게 한연희 시인은 참석하지 못하였지만, 몇몇 화요일 시창작회 시우들은 참석하여 시낭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함께 나눈 이야기 (물론 나는 서점 스텝으로서 뒤쪽 카운터에서 관찰자 입장에서 본 것이지만)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을 기록하면, 먼저 첫 번째 발표자인 스물두 살의 시우가 말하는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물성은 ‘종이’라는 말이었다. 분리수거를 좋아하며 특히 종이분리수거장에서 종종 시간을 보낸다는 시우는 정말 종이와 종이 위에 기록된 흔적을 사랑하는 듯 보였다. 그러니 「압도적 한면」이라는 시로 자신을 표현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시를 읽고 낭독을 들으며 종이를 버릴 때는 파쇄해서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려 할 때, 오히려 가끔 발견될 흔적을 남긴다는 시우. 귀가 얇은 나는 "그래, 뭐 대단한 기밀문서도 아닌데 굳이 파쇄 해서 버릴 필요는 없겠지....."라며 넘어간다.
압도적 한면
가끔 누군가의 흔적 찾기
시간은 새벽 한 시로 하자
찢어진 복권
채점하다만 공시 기술
버려진 편지 조각들
들춰보면 피식 웃기지 않니
사람들은 온갖 깨질 것들을 먹고 살아
종이 한 장의 섬유결 위에서
또 한 번 허울뿐인 이상이 비틀거린다
분리수거장 가장 깊은 곳
바래진 일기장이 마지막 체온을 품고 구겨져 있다
몰래 가져가 읽고 도로 가져다 두기
바람도 없는 새벽 두 시,
가로등이 깜빡이며 증언한다
이곳은 실패한 약속들의 집하시설
구겨진 다짐과 미지근한 후회가
채 식지도 못한 채 눌러 붙는다
종이는 언제나 쉽게 무너지는 쪽을 선택하고
이어지는 새벽, 이 연약한 결에 매달려 금방이라도 찢겨
나갈 허술한 하루를 적는다
새벽 두시
종종거리며 구겨진 종이 버리기
그렇게 나도 가끔 발견될 흔적 남기기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잘 치지는 못하고, 글 쓰면서 음악 하는 사람이라는 말로 자신을 소개하신 시우는,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두 개의 건반」이라는 시로 담아냈다. 나로서는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과 시를 지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것 차제가 부럽기만 했지만, 능력과 역량을 가졌다는 것과는 별개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조합하여 진로를 개척해야 할지 진지한 고민이 느껴지는 시였다.
두 개의 건반
음악과 시
모두 움켜쥔 채
숨결로 연주한다
번개 속에서 사는 건
이런 먹먹한 기분을 뜻하는 걸까
과일처럼 단 내 나는 향긋한 사람들
절대 마음을 포개주지 않았다
건반을 노래하면
어둠이 능청스럽게도 싱싱하게 밀려왔다
시를 음표화하면
영역 밖이라며 수필을 깨우치게 했다
스스로를 달래려 시간을 낭비했다
병에 관한 학문을 익히기 시작했다
이상심리학, 인지행동치료, 음악치료학
건반은 하나였어야 했다고
입을 모아 외치고
피아노 뚜껑 닫은 채
끅끅대는 양손에는
두 개의 건반이 있었다.
남편, 딸과 함께 참석한 시우도 인상적이었다. 꿈에 등장한 돌고래와 나눈 이야기를 시로 쓴 「그날 밤 만난 겁니다」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영상 한 편을 보는 듯했다. 그런데 그 꿈이 아이의 태몽이었고, 그 태몽의 주인공인 딸이 함께 참석해서 엄마가 낭독해 주는 태몽시를 들은 것이다. 엄마의 낭독으로 자신의 태몽시를 듣는 아이의 감정은 어땠을까? 옆에서 듣기에도 낭독하는 목소리와 운율에 사랑이 가득 담겨있음이 느껴졌는데, 당사자인 아이는 아마 사랑의 영양분을 듬뿍 받은 순간으로 새겨지지 않을까 싶다.
그날 밤 만난 겁니다
맞아요 그래요
나는 있었는데요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에
퍼렇고 보라색인 바다에
물속에 차분히 숨긴 꼬리를
유선형의 기다란 몸을
세로로 곧게 세운
나는 있었는데요
둥글하고 기다란 입에서 흘러나온
음악인지
문자인지
기억인지
그래서 나는 웃었는데요
나를 보는 반질반질한 이마에
소 눈동자같이 동그라니 맑아서
미소 지으며 계속 봤는데요
까만 밤 같았어요
물속에 잠겨 나누는 시간은
무한히 맑았던 그때
하늘의 별과 우리의 둘 사이
빛나는 기억과 깊은 눈빛
안정이는 물소리
잊혀지지 않아요
영원히 놓고 싶지 않은 날이
나는 있었는데요
바다에 떠오른 물방울이
온 세상에 채워지고
무지갯빛 바닷속에서
반짝이던 너를 만난 그날
그날 밤을 아로새겨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기억을 합니다
맞아요 그래요
우리는 그날 밤, 만난 겁니다
벌써 몇 년째 꾸준히 시창작회 활동을 하신 시우는 「수박」이라는 시와 「송진」, 「제가 오늘 늦어진 것은」 시를 나누어 주었다. 오랜 시창작의 시간이 시에 그대로 녹아 있어 낭독하기 좋았다. 특히 초등학생 아들의 시각으로 지각의 사유를 적은 「제가 오늘 늦어진 것은」은 듣는 입장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는 묘한 느낌의 시였다. 옆집 엄마로서 들을 때는 입가의 미소를 띠며 ‘그 집 아들 내미 참 귀엽네’라고 긍정의 마음을 갖게 되는 동시에, 이 말을 하고 있는 시점의 아들의 엄마로서 들을 때는 결국 지각을 하고야 말 생각 없는 생각에 속 터짐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음식을 소재로 시를 쓸 수도 있는 만큼, 한의사인 직업을 살려 약초나 한약을 소재로 시를 쓰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김승일 시인의 제언이 있어서, 언젠가 『시인은 못 돼도』 문집에 시우님의 약초시 혹은 한약시가 실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제가 오늘 늦어진 것은
늦잠을 잤기 때문이 아닙니다. 눈을 뜨고도 이불을 머리
에 뒤집어쓰고 누워있다던가 하는 게으름을 피운 것도
아닙니다. 저는 오늘 눈을 뜨자마자 곧장 세수를 하고 옷
을 갈아입었습니다. 어머니가 차려 주신 밥상 앞에 앉기
전에, 다만 창 밖 숲의 푸르름을 멀찍이 바라보았을 뿐입
니다. 그것은 그냥 멋을 부린다던가, 한가하게 시간을 보
내는 일이 아닙니다. 눈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하지요.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저희 어머니가 저에게 직접
이야기해주신 것이니까요.
사마귀를 잡아 본 적이 있으신가요. 녀석은 사람이 가까
이 다가가도, 그다지 허둥대지 않습니다. 도망가지도 않
습니다. 다만 자기가 바라보던 곳을 그대로 계속 바라볼
뿐입니다. 파충류보다 더 파충류 같은 눈알을 뾰족하게
뜨고서, 살모사 같은 역세모꼴 머리를 갸우뚱거립니다.
저는 조심스레 손을 뻗습니다. 제 심장이 사마귀의 그것
보다 더 빠르게 뛰고 있는 듯합니다. 집게손으로 슬쩍 허
리춤을 잡자마자, 톱니가 달린 낫과 같은 앞다리를 휘두
르며 저의 손가락을 따갑게 찔러댑니다. 고개를 계속 까
딱이며 턱을 오물거립니다. 저를 물어버리겠다는 위협이
지요. 실수로라도 한번 물리게 되면 제법 아프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제 심장은 꽤나 쿵쾅거립니다. 사
마귀에게 사로잡혀 버렸던 그때처럼요.
작곡도 하시며 좋은 가사를 쓰고 싶어서 시공부를 하는 사람으로 소개하신 시우의 시 「브런치와 오선지」엔 오선지를 채우는 어려움을 브런치 밀푀유에 비유한 표현이 신선하게 들렸고,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사랑 해」는 또래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깊은 동감을 하며 들었다. 힘든 시기를 겪는 자녀를 지켜보며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레 소통하려 애쓰는 엄마로서의 내 모습이 겹쳐 보여 응원의 눈빛을 건넸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사랑해
연락이 없는 아이에게 전화를 건다
지금 어디에 있니?
스카에요
전화는 연결되었지만
불통이다
잘 갔다 왔어?
네
아이는 자기 방에 있지만
부재하다
아담아 지금 어디에 있느냐?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내 아이도 숨었다
아이야
지금 어디에 있니?
마음을 자기 마음에 쏟아붓고
발이 무거워진 아이야
엄마는 완벽한
답을 줄 수가 없구나
어제만큼 가까워지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할까
오래전에 내가 내다 버렸던 옷을 입고
아이가 서있다
우리가 서있다
마지막 순서로 시낭독을 한 시우는 신기하게 앞 순서의 시우와 유사하게 가사도 쓰고 시도 쓰는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독서실의 추억을 담은 「폭설」「백야 아래 장마」, 그리고「집에도 이름이 있다」를 낭독했다 .「백야 아래 장마」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지구과학적 혹은 이상기후적 시인 듯 싶었으나, 백야 아래 가구를 만들며 하루를 버티는 북유럽 사람들에 빗대어, 비 내리는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좋은 시를 쓰고자 하는 고뇌를 유쾌하게 시로 표현한 것이었다.
백야 아래 장마
고작 시 한 줄을 썼을 뿐인데
동이 트고 있습니다
여름은 글을 쓰기에 좋지 않습니다
창밖은 너무 밝고
햇살은 "자, 이제 곧 잘 시간이다!" 하고
나를 글방에서 내쫓습니다
나는 축축한 이불을 뒤집어쓰고
시큼한 수건 냄새를 맡으며
혼자 중얼거리죠
아무도 모르게
방 안의 온도는 조금씩 올라갑니다
백야를 견디던 북유럽 사람들은
가구를 만들며 하루를 버텼다는데
나도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있는데
이케아 가구까진 만들진 못해도
뭔가 그럴싸한 것을 써야 합니다
계절에 관한 시는
많이 안 쓰는 게 좋지 않아요?
한 철만 장사할 것도 아니고
나는 그런가 싶다가도
시청 근처에 여름 콩국수만
전문으로 파는 집을 떠올리면서
입맛을 다셔 봅니다
"그럼 뭐 어때 맛만 있으면 되지"
내일은 비가 온다는데
다행입니다
이렇듯 시의 바다에서 저마다의 영법으로 자유롭게 시와 노니는 시우분들. 그 바다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시의 해변을 거닐며 발목을 찰싹찰싹 간질이는 시와 친숙해지고 있는 나로서는 부러운 시간이기도 했다. 일단 시를 짓기에 앞서 이미 나와 있는 좋은 시를 많이 감상하는데 신경을 쓰자고 마음을 다스리며, 스텝으로써 행사 중간중간 그리고 마지막 단체 사진을 찍는데 충실하려 노력하였다. 함께 하고 싶었을 반달서림 대표님이 이 자리에 없는 것이 아쉬웠다.
5년 차가 되는 시창작회의 시낭독회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반달서림의 으뜸상징 시창작회와 시낭독회가 되면 좋겠다. 그래서 2021년 처음 발간한 『시인은 못 돼도 2XXX』 문집도 지속되고 발전하길 바란다.
* 참고자료
1. 경기도서관 천권으로 독서포인트 (https://www.library.kr/bookpoint/main/homemain)
2. 『호호호』 윤가은, 마음산책, 2022
3. 반달서림의 <<시인은 못 돼도 2025>> 문집 제작 & 시 낭독회 안내문 (https://blog.naver.com/bandalseorim/224060996321)
4. 반달서림의 [12/20 토 4시] 시인은 못 돼도 2025 시 낭독회 안내문 (https://blog.naver.com/bandalseorim/224106534577)
5. 반달서림의 <<시인은 못 돼도 2025>> 시 낭독회를 마치고 (https://blog.naver.com/bandalseorim/224117884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