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양식을 채우고
* 2026년 1월 24일 (토)
2026년 새해 들어 첫 월간 서점원 근무일이다. 둘째 주 토요일 자원봉사자 이른바 둘토자봉이지만, 또 다른 월간 서점원과 일정일 맞추어 오늘처럼 종종 넷째 주 토요일 자원봉사자인 네토자봉이 되기도 한다.
지난밤 내린 눈으로 서점 현관 앞 바닥은 막 쪄낸 하얀 백설기가 한 판 넓게 펴져있고, 지난달 눈이 왔을 때와 달리 날이 너무 추웠는지 아쉽게도 백설기 위에 고양이의 귀여운 발자국이 찍혀 있지는 않았다. 또 지난번에는 평일인 금요일 아침이라 계단을 포함하여 통로의 많은 부분을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제설을 해 주었는데, 주말인 이 날은 서점 주변의 눈이 거의 치워져 있지 않아 싸리 빗자루를 들고 눈을 쓰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다행히 무겁게 버티는 젖은 눈이 아니어서 쓸면 쓰는 대로 휙휙 눈가루가 날려 이내 깨끗한 바닥이 드러남에 눈을 쓰는 보람이 쏠쏠했다. 서점 앞 쪽까지만 비질을 할까 하다가, 이른 아침 아이와 함께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간 젊은 부부를 봐 버려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의 눈까지 치우고 나니 추운 겨울 아침이건만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지난번 일회성으로 가져왔던 아들이 만들어 준 “벚꽃전차” 오브제는 아무래도 집에 있는 것보다 서점의 서가에 있는 것이 어울리는 듯하여, 다시 가져와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옆에 두었다. 마침 오브제 안에 고양이와 서점이 있어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서점에 도착한 택배를 확인하니 출판사 ‘남해의봄날’에서 보낸 2026년 연력이 있었다. 2025년 12월 ‘남해의봄날’에서는 화가 이미경 작가님이 쓰신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 『마음을 두고 온 곳, 세계의 구멍가게 이야기』 이른바 <구멍가게 시리즈> 10만 독자 감사 이벤트를 열었다. 구매한 책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후 태그로 인증하는 이벤트였는데, 나 또한 이 책들을 모두 가지고 있었기에 바로 책을 찾아 꺼내 사진을 찍은 다음 이벤트에 참여했었다.
한 달 정도 지난 후 나는 집으로 배송된 이벤트 선물 독자를 위한 2026년 연력을 받았고, 마침 내가 서점원으로 일할 때 ‘남해의봄날’ 이 서점용으로 보낸 연력을 받았으니, 우연이라면 우연일 수 있는 이 소박한 행복에 괜히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구멍가게가 있는 동네를 펜화로 세밀하게 그린 서점용 연력과 독자이벤트용 연력은 종이의 재질과 크기가 약간 차이가 있을 뿐 거의 같았다. 월력의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응답하라 1988》의 분위기가 느껴지면서, 그 시절 그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피어난다.
사실, 2017년 첫 책을 구입했을 때 펜화로 그린 구멍가게들에 너무 정감이 가, 원화를 보고 싶은 마음에 당시 홍대 앞 땡스북스에서 원화 전시와 함께 열렸던 작가님의 북토크에 아들과 함께 참여했었다. 세밀하고 날카로운 색색의 펜 선 하나하나가 모여, 아름답고 따뜻한 면으로 완성된 작품을 원화로 보는 감동은 확실히 책에 인쇄된 작은 삽화로 보는 감동과는 차원이 달랐다. 오랫동안 익숙했지만 이제는 편의점으로 대체되어 점점 사라져 가는 구멍가게, 시골에서는 구판장이라고도 불리고 가게 앞에 평상이 놓여있던 동네 사랑방이, 어쩌면 책과 그림으로 밖에 접할 수 있는 때가 올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면 또 한 시절이 지나가는 듯해 서글퍼진다.
연력은 서점 계산대 옆에 붙이고 인증사진을 반달서림 대표님에게 보내니, <구멍가게 시리즈> 책 구입 고객에게 증정한다는 안내를 반달서림 대표님이 서점 인스타에 올렸다. 사람들이 <구멍가게 시리즈> 책을 들이고 연력을 받아 그림을 가까이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리고 그 시절 구멍가게 드나들 듯 사람들이 서점을 찾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다.
앨범 표지에 이끌려 SaltaCello (살타첼로) 3집 《Salted》로 한참 듣고 있는데 옹혜야? 가 들린다. 이어 강강술래와 강원도 아리랑까지…. 반가운 마음에 앨범 속지를 읽어보았다. 독일 재즈앙상블 그룹 살타첼로가 2000년에 발매한 앨범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음악을 자신들의 음악에 녹여 만드는데 이렇게 멋진 음악을 난 왜 지금 안 걸까? 반달서림 덕분에 또 하나의 음악 그룹과 그들의 음악 세계를 만날 수 있어 기뻤다.
독서 모임에서 읽을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을 읽고 있으려니 오랜만에 과거 목요 서점원이셨던 란님이 남편분과 들르셔서 잠깐 언 몸을 녹이시고 미리 주문하신 책을 가져가셨다. 란님은 지난 서점원 회식 때 처음 만나 인사했는데 올해는 사정이 생겨 그만 두신 상태, 하지만 마음만은 명예 서점원으로서 구입에 필요한 절차를 스스로 쓱쓱 처리하시고, 또 알아서 책 박스를 챙기시고, 란님과 함께 오신 남편분은 책 박스를 익숙하게 번쩍 들고는 부부는 책방을 떠나셨다. 남편분의 저 스위트한 행동은 몸에 자작하니 밴 것이라 할 수 있어 뭇 남편들이 본받아야 할 태도라 생각했다.
눈이 내린 다음 날, 날이 추워 그런가 책방을 찾는 손님은 많지 않고 옆 매장은 아래층으로 이사를 하느라, 또 앞 매장은 2월에 들어올 누룽지 백숙 식당 공사를 하느라 바빴다. 이때 당시만 해도 누룽지 백숙 식당이 오픈하면 거기서 회식을 하자고 반달클래식클럽 회원들과 약속을 해 놔서 오픈날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는데, 2월에 식당은 영업을 개시하였고, 반달클래식클럽의 현재 회원들과 드디어 첫 회식을 가졌다 (현재 회원들 등록 전 반달서림 대표님이 참여했을 때, 한 번의 회식은 있었다). 즐거운 대화를 곁들여 닭백숙과 막국수로 다들 만족한 식사를 하고 바로 옆인 서점으로 살짝 자리를 옮긴 후 『재즈의 도시』로 독서 토론을 하니,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충만해진 저녁이었다.
기왕이면 새로 문을 연 누룽지 백숙 식당에도 손님이 많이 오시고, 닭/오리 백숙으로 몸에 영양소를 보충한 손님들이 옆집 서점에도 오셔서 마음의 양분도 채워 가셨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참고자료
1.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이미경, 남해의봄날, 2017
2.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 이미경, 남해의봄날, 2020
3. 『마음을 두고 온 곳, 세계의 구멍가게 이야기』 이미경, 남해의봄날, 2025
4. 남해의봄날 -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전시회 안내글 (https://blog.naver.com/namhaebomnal/220953896120)
5. 《응답하라 1988》 신원호 연출, 이우정 극본, tvN, 2015
6. 『자기 앞의 생』 로맹가리, 마누엘레 피오르/용경식, 문학동네, 2018
7. SaltaCello (살타첼로) 3집 《Salted》, 2000
8. 『재즈의 도시』 김소리, 파이퍼프레스,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