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 끝에는 반드시 행복이 오고야 만다.
아이의 수능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100일 전부터 기도를 하러 절에 다녔다. 공부를 대신해 줄 수는 없으니 뭐라도 해야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나는 정성이라도 들이자 싶어 절을 찾아다녔다. 절을 찾아다녔다는 말은 절에서 만난 보살님들 중에 자녀를 서울대에 보낸 보살님이 어디 절이 기도발이 잘 받는다고 하면 남편에게 부탁해 그 절을 반드시 가고야 만 것이다. 강화도에 있는 보문사, 전등사, 적석사를 다니며 축원도 하고 기도도 했다. 대구 팔공산 정상에 있는 절이 또 좋다길래 대구까지 두 번을 갔었다.
100일 동안 새벽에도 108배를 하고 일주일에 서너 번은 절에 가서 기도를 올렸다. 경전을 왜 읽는지도 모르겠고 뜻도 모르겠는데도 아이의 수능을 위해서 보살님들을 따라서 무작정 읽고 절을 하곤 했었다. 사경이 좋다길래 며칠에 걸쳐서 펜붓을 구입해 금강경 경전으로 사경을 하고 지장경도 하면 좋다길래 지장경도 사경을 했었다. 생각해보면 기도가 아니라 오롯이 한 생각의 사로잡힘에 머물렀을 뿐이다. 절을 하면서도 절을 하는 게 아니었고, 경전을 읽으면서도 경전을 읽는 게 아니었고, 불전함에 보시를 하면서도 보시를 하는 게 아니었고, 사경을 하면서도 사경을 하는 게 아니었다. 오로지 생각은 수능 만점이었다. 매월 초하룻날은 기도가 끝나면 부처님 전에 올린 공양 밥을 내려서 공양간으로 가져가는데 공양밥을 들고 가는 보살님 뒤를 나를 포함해 몇몇 보살님들이 뒤질세라 졸졸 따라 나간다. 부처님 전에 올린 공양밥을 자식에게 먹여야 좋다는 말에 어떻게든 몇 숟갈 얻어서 가려는 것이다. 그 밥을 얻으려는 보살들이 꽤 되다 보니 그것도 재빠르게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염불엔 관심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한 말이지 싶다. 집에 와서도 경전을 읽고 절을 하는 것은 물론이었다. 내가 지성으로 열심히 해야지만이 우리 아이가 잘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었다. 마음속에 정해 진 시간에 어김없이 하다 보면 무슨 의식을 행하는 행사처럼 이걸 안 하면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굴었다. 그 시간을 남편이 조금이라도 방해 된다 싶으면 큰 소동을 만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 눈에는 화(火)가 담겨 있고 다정한 눈빛과 말투는 내 마음 어디에 감춰 두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기도를 하면서도 잘 보고야 말거라는 강한
믿음과 합격을 바라는 나의 간절한 마음이 오히려 나를 두려움에 떨게했다. 그리고 언제 고야 터질 듯한 그 불안함이 건드려질 때는 남편의 방해를 빌미로 불똥이 엉뚱하게 남편에게 튀고야 마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고3엄마의 스트레스가 충분히 이해 되었던건지 그런 걸로는 나에게 화 한번 내지 않았다. 다만, 원론적인 얘기로 나를 기운 빠지게 하곤 했다. 백팔배 한다고 모두 다 서울대 가면 누구나 다 가지 않겠느냐. 굳이 무릎도 안 좋은 사람이 이렇게 몸 망가져가며 하는 건 미련한 짓이라고 찬찬히 일러 주었다. 당시에 무리한 탓인지 계단 오르는 것도 버거워하긴 했었다. 나는 남편의 그 말이 더 서운해서 이렇게 정성을 올리는데 함께 힘을 합해도 모자랄 판에 어떻게 그렇게 남 얘기 하듯 할 수 있느냐며 더 성을 내곤 했었다. 이런 내 모습은 아귀지옥이 따로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기도를 한 게 아니었다. 고상하게 기도를 한답시고 아주 있는 힘껏 끝없는 욕심을 보여줬던 모습이었다. 수능 당일 날도 시험 치러 들어간 교문 옆 승용차 안에서 염주를 손에 들고 경전을 소리 내어 읽었다. 시험 시간에 맞춰. 쉬는 시간엔 나도 멈추며.
수능 시간에 맞춰서 염주를 돌려가며 경전을 읽고. 무슨 주문을 외듯. 이렇게 해야지만 시험을 잘 볼 거라는 나만의 근본 없는 신념을 내 세우며. 그렇게 아침 8시 40분부터 오후 5시 45분까지 시험시간 내내 기도를 올렸다. 아마 시험을 잘 봤으면 나는 이 근본 없는 신념에 빠져서 나 자신을 굴레에 씌워 허상을 쫒으며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종교의 진정한 가르침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한 채 말이다. 아이는 1교시 언어 영역 시험이 시작된다는 종이 울릴 때 평범하지 않은 종소리에 멘탈이 흔들렸고 평점심을 잃었다고 했다.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울려대었단다.
아. 이럴 수가.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사소함이 모든 걸 망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그때 경험 할 수 있었다.
고3 모의고사 때마다 늘 자신 있어하던 언어 영역에서 시간이 부족해서 두 문제는 풀지 못하고 찍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이미 전의(戰意)를 상실한 아이는 2교시 수리영역부터 그다음 모든 게 의미가 없어졌다고 했다. 이미 언어영역에서 몇 문제가 날라 갔다는 생각에 그다음은 잘 보나 마나가 되었던 것이다. 자사고를 다닌 아이에게 수능 보는 날 아침 교장 선생님께서 손을 잡아주시며 너만 믿는다라고 하셨단다. 그런데 수능을 이렇게 봤으니.
집으로 가는 차 안에 적막이 흘렀다. 숨 쉬는 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린 적이 있었던가. 시간이 멈춘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안방에 문을 닫고 침대에 앉자마자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그 간의 정성과 노력들에 대한 댓가가 이거라니.
내 마음도 이런데, 무너졌을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니 어미로서 가슴이 더 미어졌다. 중학교 때는 평일 5일은 도시락 3개를 싸가며 매일 대치동을 다녔었다. 토ㆍ일요일은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수업을 받았다.
아이는 공부하는 시간이 정말 많았다. 집에 돌아오는 승용차안에서 잠을 자고. 늦은 새벽 집에 도착해서는 공부를 하다가 잠에 들었다.
통행료와 기름값이라도 아껴 보려고 자가용으로 아이를 학원에 내려 주고는 집으로 가지 않고 새벽 1시까지 차 안에서 꽁꽁 언몸을 덜덜 떨어가며 아이를 기다렸었다. 그렇게 3년을 했었다. 그리고 자사고에서 하고 싶은걸 뒤로 하고 해야 만 할 것에 집중 했던 치열한 시간들. 그리고 그 아이의 성실함과 노력들이 다 어디 갔단 말인가.
아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어떻게 이런 일이. 이건 말도 안 돼.
누구보다 열심히 했는데.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책상 위에 올려진 아이의 책들. 공부하면서 요약한 과목별 요점 노트는 얼마나 봤는지 닳고 닳았다. 하도 많이 봐서 너덜 너덜한 책들은 꼭 내 마음 같았다. 일일 계획표에 빼곡하게 시간대별로 쪼개서,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공부했던 시간대별 공부량이 표시되어 있었다. 해야 할 공부들을 1년 12달 매월 날짜 별로 빼곡하게 기록한 하루하루 계획표, 그 옆에 한 글자 한 글자 꾹 꾹 눌러쓴 수많은 다짐들. 그래, 이렇게 성실하게 정말 열심히 수능을 준비했는데...
혼자 청소기를 돌리다가 청소기를 바닥에 내려놓고 힘없이 주저앉아 엎드려 목 놓아 소리 내어 울었다.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모든 게 너무나 허망했다. 당연히 수능을 잘 볼 줄 알고 수시도 납치 안 되는 곳으로 6개 지원서 중 2개만 냈었다. 아이는 수시 2곳이 붙었지만 가지 않겠다고 했다. 공부한 게 아까워서라도 재수를 하겠단다. 교내에서 지구과학 1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없어서 지구과학 1을 독학으로 수능 공부를 했을 정도로 혼자서 묵묵히 자기 몫을 해 냈던 아이다.
서울대를 가려면 과탐 중에 1ㆍ2를 선택해야 해서 아들은 지구과학 1ㆍ물리 2를 선택했었다. 고3 내내 얼마나 고생했는지 너무 잘 아는 나로서는 또 한 번 고생해야 할 재수만큼은 정말로 권하고 싶지 않아서 수시 2곳을 권했다.
이곳도 가고 싶어 안달인 아이들도 많다고. 그러나 아이의 뜻은 확고했다. 하지만 난 여전히 수시 2곳을 권할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수능을 보고도 며칠은 등교를 해야 했다. 등교 후 3시간 정도면 다시 집에 가야 하니 교문 앞에서 아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멀기도 했었다. 교문 앞에 정차 후 차 안에서 보니 학생들이 커다란 포대 안에 책을 한가득 안고 나와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제 다 끝났으니 필요 없다는 뜻이다. 그 아이들 무리 곁으로 우리 아이가 보였다. 쏟아낸 책들 사이를 비집고 필요한 쓸만한 책들을 찾아서는 가슴에 안고 학교 건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또 한 번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친구들은 책을 던지는데 누구는 주워가고. 우리 아이의 시간만 멈춘 듯했다. 저 틈에서 문제집을 집어 든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우리 아이의 자존심을 지켜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본인이 저렇게 하겠다는데 아이의 뜻을 존중해 주자. 떠다밀어서 하라고 해도 하기 싫은 게 공부이지 않은가, 더군다나 재수는 1년을 한번 더 고3이 되어야 하는 것인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본인 스스로 하겠다고 하지 않는가.
이즈음 남편이 내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여보 인생 새옹지마야. 뭐가 더 좋은지는 나중에 두고 봐야 해. 난 지금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더 좋은 일이 생기려고 그런 걸지도 몰라.
이유? 어떤 이유? 여보 왜 그렇게 남 얘기하듯 얘기해? 난 너무 힘든데.. 그때는 남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는 재수 학원을 들어갔고 그곳에서 몸도 마음도 성장해 나갔다. 본인의 의지가 워낙 강한 탓에 빌보드 차트에도 이름을 올리며 탄탄히 올라갔다. 아이는 그곳에서 무조건 서울대를 가겠다가 아니라 졸업 후를 내다보기 시작했다. 그곳엔 3수를 비롯해 4 수형들도 있었다. 들은 것이 많아서 여러 가지로 생각을 많이 해 봤던 것 같다. 공대를 생각했었던 아이는 의학계열을 지원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했고 드디어 수능을 봐서 한의대 차석으로 합격을 했다. 지금은 본과 3년이다.
돌아보면 우리에겐 시련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련이 아니었다면 아이는 서울대 공대에 입학했을 테고 지금은 취업준비생이 되어 졸업을 했음에도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남편이 얘기한 새옹지마. 그래. 고등학교때 의학계열을 권해도 전혀 관심 갖지 않던 아이가 목표를 바꾼 걸 보면 수능을 망쳤던 건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려고 그랬나 보다. 이러려고. 이렇게 더 좋은 길을 가게 하려고 재수를 하게 해 준 것이다. 지금은 수능 망쳐 준 게 오히려 감사하다. 그러니 이렇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 중에 헛된 시간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기도해 봐야 소용없네가 아니라 이렇게 잘 되게 하려고 멀리 돌아오게 한 것이다. 그러니 시련 끝에는 반드시 행복이 온다는 것을. 그러나 그 행복도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가 수능 본 지가 오래되었지만 매해 수능날 나는 아이에게 톡을 보낸다.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알기에 수능 준비하느라 재수학원에서 고생했던 아이에 대한 대견함과 고마움이 생각 나서다.
고마워. 수능 보느라 고생했어. 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