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누가 당신을 방해하는가

할아버지~제발요~~

by 촌에서 온 반포댁

아침 6시는 헬스장 문 여는 시간이다. 아파트 헬스장이라 새벽에 가야 그나마 사람이 적었다.

6시에는 고정 이용자가 몇 명있다. 이분들을 제외하고는 어쩌다 들쭉날쭉 이용객이 있을 뿐이다. 8시쯤에는 가래 아저씨가 온다. 내가 붙인 별명이다. 그래서 2시간 소요되는 내 운동은 이 아저씨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6시에 가야 한다. 이 아저씨는 러닝머신 위에서 있는 힘껏 가래를 끌어올린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입을 훔친다. 아 보지 말걸... 괴로웠다. 눈길을 주지 않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그 소리는 1분에 몇 번씩 계속 됐다. 아주 듣기에 고역이었다. 제발 나가서 뱉어 주시면 안 될까요? 머릿속에는 온통 아저씨에게 뭐라고 얘기를 해서 그 행동을 멈추게 할지 그 생각뿐이다.


희한하게 그 아저씨가 오는 날은 헬스장에는 나밖에 없다. 그러니 그 고충은 나밖엔 알 수가 없다.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고 하고 싶지만 그걸 뭐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지. 그리고 계속 마주쳐야 되는데 껄끄럽게 일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를 변화주는 방향으로 바꿨다. 다시 말해 운동시간을 개장시간으로 옮겼다. 이제는 더 이상 가래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 새벽 6시로 옮긴 이후에는 나는 운동에 집중하며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적어도 할아버지의 노랫소리가 시작되기 전까지.


가 6시에 운동을 다니면서 관찰한 바로는 최고 고령자인 80대 할아버지가 계셨지만 그 누구도 할아버지와 인사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 모습이 서글프게도 느껴졌고, 그리고 내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 손아랫사람들이 인사를 해 주면 고마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는 어른 보고 인사하는 것은 참 당연한 일이었는.


80세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거의 조건 반사적으로 머리를 숙여 웃으며 목례를 했다. 그 후 눈이 마주치면 매번 인사를 했고 할아버지도 뜻한 미소로 인사를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할아버지가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하셨다. 매번 인사하실 때마다 치아를 드러내고 웃으며 인사하시던 할아버지는 치아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노래를 부르셨지만 치아 때문인지 가사 전달이 안 되는, 리듬도 처음 들어 보는 곡을 흥얼흥얼 거리셨다. 날이 갈수록 제지하는 사람이 없어서일까 더 맘 놓고 부르기 시작하셨다. 나는 러닝머신 위에 올라가 1시간을 걸을 때는 책을 읽는다. 나에겐 소중한 아침 독서 시간이기도 했다. 러닝 머신 위에서 음악을 들으며 걸을 때는 시간이 더디게 흘렀는데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1시간이 이렇게나 빨리 지나가는지 놀란 것도 여러 번이다.


우리 헬스장은 음악을 어 주지 않는 조용한 헬스장이다. 고요한 새벽, 헬스장에 할아버지의 노랫소리는 책의 흐름을 중간 중간 끊기에 충분했다. 문장이 잘 이해 될 때는 할아버지 노래 소리가 안 들리다가, 이해 하는 데 오래 걸리는 문장을 만날 때에는 할아버지의 노랫소리가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그럼 다시 그 문장을 읽고 또 읽는다.


아 제발.. 할아버지.. 제발요. 할아버지께 뭐라고 말씀드리지? 노래 안 부르시면 안 될까요? 아니 이렇게 말고, 뭐라고 말씀드릴까? 노래를 참 잘 부르시네요. 근데 조금만 작게 불러주시면 어떨까요? 아. 이것도 별론데. 뭐라고 말씀드리지? 눈은 책을 바라보고 있는데 머릿속은 온통 뭐라고 말씀드리면 좋을까를 생각하고 있다. 이 와중에도 또 노랫소리가 들린다. 아. 진짜. 도대체 왜 부르시는 지? 도저히 안 되겠다. 도대체 왜 부르시는 거예요? 하는 마음으로 획하고 뒤를 돌아보는데,


할아버지가 운동 기구에 기대어 소를 가득 머금고 너무 행복하게 노래를 부르시고 계셨다. 리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마주쳤음에도 눈길을 피하지 않고 너무나 즐겁게 부르시는 것이다.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할아버지의 모습에는 누군가에게 방해가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매우 편안한 모습과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가 있었다.


할아버지의 웃는 얼굴에는 행복이 있었다. 즐거움이 있었다. 내가 할아버지의 즐거움을 방해할 뻔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큰 소리도 아니고 흥얼 흥얼이었다. 내가 책에 더 집중하면 될 것을 할아버지의 소리에 집중을 한 내 탓이었구나 싶었다. 할아버지가 앞으로 100세까지 사신대도 얼마나 사신다고.


이 기쁨을 뺏지 말자. 그래, 할아버지는 노래에 집중하고 나는 책에 집중하고. 내가 또 이성의 세계가 아닌 감정의 세계에 빠져 열을 내고 있었구나.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자.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자. 바꾸려고 하지 말자. 차라리 내 생각을 바꾸자라고 고의 전환을 주니 감정의 세계에 빠져 있던 나는 어느새 이성의 세계로 어왔다. 나에게 크게 영향을 끼치거나 큰 피해를 준건 아니지 않은가. 다만 나는 나의 일에 더 집중하지 못했음을 인식하자. 그로 인해 남의 일에 간섭할 뻔했음을. 할아버지께 아무 말씀 안 드리고 그만의 즐거움을 뺏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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