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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플펀치 Jun 12. 2023

고시탈출기 더 비기닝

왜 고시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을까



평범한 일요일 오후였다.


 바쁜 대학생이었지만 가끔 여유가 되면 아버지와 함께 사우나를 갔다가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함께 보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아버지는 주로 액션영화나 SF영화를 좋아하신다. 그래서 <스타워즈> 시리즈도 아버지를 통해 입문했던 기억이 있다.


그날 보았던 영화는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자지간의 쑥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국제시장>과 <변호인>을 아버지와 영화관에서 봤다. 두 영화 모두 눈물이 나는 장면에서 어찌할 줄을 몰라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날은 영화 <변호인>을 보았고, 영화가 끝나자 서로 말없이 나와 순대국밥 집으로 향했다. 가볍게 반주를 곁들이며 영화 얘기를 하고 있던 찰나 나는 불쑥 말을 꺼냈다.


"저 이제 공부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비록 지금 27살이지만 3년 정도 잡고 짧고 굵게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그래 무슨 공부를 하고 싶니? 도전해 봐라. 힘닿는 데까지 지원해 주마."


"행정고시를 하고 싶습니다. 고시 패스해서 관리자로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버지의 쿨함과 자식에 대한 신뢰는 대단했다. 내가 공부를 하겠다고 선언한 시기는 사실 집도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 우리 집은 휘청거리고 있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의 여파가 우리 집에도 찾아왔고, 분양받은 새 집으로 이사 가려던 계획에도 파도가 몰아쳤다. 우리 가족은 팔리지 않는 집을 끌어안고 강제 다주택자의 길로 들어섰다. 게다가 동생이 아직 대학을 다니고 있던 상황이라 두 명의 준비생을 감당해야 했다. 그래도 그전까지는 간간히 받는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로 대학의 반을 버티고, 생활비는 각종 알바와 과외로 버텨왔는데 이제 다 큰 27살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힘든 상황에도 항상 나를 믿어주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버틸 수 있었다. 아마도 그 믿음이 진심이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때 왜 행정고시에 꽂혔는지는
그때의 나만이 알 것이다.


도전할 것이 필요했고, 지금껏 도전해보지 않은 나 자신에 대한 채찍질이었을 수도 있다. 27년 인생을 살면서 기껏 도전해 본 게 수능정도라서였을까. 사실 수능도 내가 능동적으로 도전한 것이 아니다. 공부 외에 예체능에는 재능이 없었고, 남들 다하는 공부 나도 그냥 시키는 대로 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성적에 맞춰서 법학과와 경영학과 위주로 원서 접수를 했고 법학과에 합격하여 법대를 왔다.


법대에 합격하자 할아버지를 비롯한 집안 어른들은 집안에 법조인이 나오는 거냐고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법조인이 될 생각이 없었다. 중학생 시절 한때 국제변호사를 꿈꾼 적이 있었으나, 그때는 단순히 멋있어 보여서 꿈꿨었다. 변호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지만 국제변호사는 변호사보다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멋있어 보여서 품었던 꿈이 두 가지가 있는데  국제변호사와 파일럿이었다. 변호사든 파일럿이든 학창 시절의 나는 그저 공차는 것만 좋아하는 기 왕성했던 청소년이었다. 이런 나의 학창 시절은 훗날 어머니의 분노를 일으키며 대학생이 되자마자 반강제 독립을 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어쨌든 그때의 후회들이 모여 인생 처음 스스로 선택한 도전 발을 내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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