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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맑음 Sep 12. 2024

[에세이] 딸기양갱과 잘살고 있지롱

7화 인생의 BGM


한 때, SNL이라고 불리는 프로그램에서 MZ 세대를 표현했던 대표적인 이미지는 귀에 무선이어폰을 끼고 일하는 모습이었다. 오랜 직장생활로 나는 MZ 세대에서 조금 먼 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무선이어폰을 좋아한다는 면에서는 MZ 세대다.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음악이 필요할 때는 주변을 산책하거나 드라이브할 때, 그리고 복잡한 일을 할 때다. 음악을 들으면 신경이 분산되어서 일을 못 하겠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백색소음을 좋아한다. 숨 막힐 것처럼 조용한 상황에선 신경이 곤두서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시험 기간에는 째깍째깍 울리는 초침 소리가 나를 초조하게 했기 때문에 시계를 떼어버렸는데, 그보단 시계 소리를 덮는 약간의 소음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흔히 노동요라고 부르는 그것일 것이다. 과거부터 이어지는 전통 덕목일지도 모른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특히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두 가지 소개하고 싶다. 멜로디가 좋은 노래, 나를 그 시절로 데려가는 노래 등 사랑하는 음악은 많지만, 오늘은 그중에서 내 삶의 가치관과 잘 맞는 노래를 소개하고 싶다.


첫 번째 곡은 윤딴딴의 [잘살고 있지롱]이라는 노래이다. 동요처럼 가벼운 음의 배치로 만들어진 노래는 유쾌하고 즐겁다. 곡을 좋아하지만, 가수에 대해선 잘 몰랐는데 오늘 음악을 소개하기 위해서 검색을 해봤다.


윤딴딴은 2014년에 데뷔한 싱어송라이터라고 한다. 예명은 고등학교 시절 반에서 유일한 예체능 전공이라 담임 선생님이 ‘딴따라’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특히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뚝심 있는 어조로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잘살고있지롱.’이라고 말하는 가사의 주인공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산에서 호랑이를 보았다고 말한 가사의 주인공은 사람들에게 ‘호랑이가 나타났어요, 빨리 도망가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이가 어리지만, 본인이 도망치는 것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외쳐주다니 용감하다.


도망친 사람들은 소년을 떠올리면서 ‘그 소년은 분명 잡아먹혔을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잘살고 있다는 가사가 유쾌하다.


추측하는 말들을 싫어하는 편인데, 특히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내 삺에 대해서 판단하는 걸 싫어한다. 뒤에서 하는 말의 좋지 않은 점은 결국 내 귀에 들린다는 것이다. 근거 없는 추측을 들으면 해명을 할 수 없기에 화가 난다.


이 노래를 듣고 화를 내지 않기로 했다. 뭐하고 하든 상관없기 때문이다. 나는 잘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 노래는 2절도 유쾌하다. 소년은 어릴 때 바다에서 고래를 보았다. 사람들에게 ‘고래가 나타났어요. 어서 이리로 와보세요.’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고래는 이미 사라진 뒤였고 사람들은 고래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소년에게 거짓말쟁이라고 욕했지만, 소년은 이렇게 말한다.


‘난 분명히 봤지롱.’


어조 때문일까. ‘나만봤지롱, 부럽지롱.’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소년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존중하고 싶었다. 거짓말쟁이라고 욕을 먹었지만, 소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기 눈으로 똑똑히 고래를 봤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았는데 거짓말쟁이라고 하면 화가 난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내가 화가 많은 사람인 것 같다. 나는 주로 억울할 때 화가 났다고 표현한다.


내게 해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오해한 채로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억울하고 때론 슬퍼진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나를 미워하기 때문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좀 다른 생각을 했다.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는 게 왜 중요했던 걸까. 내가 봤으면 됐다. 나는 혼자만 고래를 본 소년이 조금 부럽기도 하다. 나도 고래는 좋아한다. 언젠가 나도 혼자만 봤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그래서 이 노래를 인생의 BGM으로 정했다.


싱어송라이터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멜로디와 가사에서 그 사람의 인생이 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윤딴딴이라는 가수는 잘 알지 못하지만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의 삶을 엿본 기분이 든다.


내가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그는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내가 그를 응원하게 했다.


에세이를 쓰는 것은 소설가인 나에겐 어찌 보면 큰 도전이었다. 소설은 결국 캐릭터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던 내가 내 이야기를 쓰기로 결정하면서부터 고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소설을 쓸 때보다 좀 더 말을 고르는 것은 내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소설을 쓸 때 독자들은 댓글을 남긴다. 그중에서 인상 깊은 말은 ‘작가님, 진짜 또라이예요? 진짜 얼굴이 궁금해요.’라고 남긴 말이었다.


그 댓글을 보면서 우선은 웃었고, 그 후엔 생각했다. ‘실제로 보면 멀끔해요.’ 그래도 소설을 보면서 그 뒤에 있는 작가를 궁금해했다는 점에서 고마웠다.


두 번째 노래는 비비의 [밤 양갱]이다. 이 노래를 좋아하는 노래는 내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과 관련이 있기도 하다. 나한테는 밤 양갱이라는 노래가 굉장히 ‘냥냥.’거리는 것처럼 들린다. 처음엔 냥냥냥한 노래라서 좋았고, 지금은 노래에 담긴 의미 때문에 좋아한다.


참고로 잘살고 있지롱이란 노래의 가사를 듣게 된 건 굉장히 롱롱 거리는 노래였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헤어지는 연인에 대한 내용이다. 너는 바라는 것이 너무 많다고 이야기하고 떠나가는 사람을 보면서 노래의 주인공은 말한다. ‘아냐 내가 늘 바란 건 하나야. 한 개뿐이야. 다디단 밤 양갱.’ 그냥 양갱이 아니라 밤 양갱이었다.


그렇다면 양갱과 밤 양갱은 얼마나 달랐을까. 둘 다 양갱이란 공통점이 있다. 밑바탕은 같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안에 밤을 넣기로 했다면 밤을 가공하고 섞는 정성이 추가로 들것이다.


둘은 주재료, 맛과 질감, 비주얼에서 차이가 있다.


양갱의 주재료는 팥앙금 또는 백 앙금이다. 그에 반해 밤 양갱은 기본 양갱에 삶은 밤이나 밤 페이스트를 추가한다. 밤 특유의 고소한 맛과 부드러운 질감이 더해진다.


양갱은 팥이나 백 앙금의 달콤한 맛이 주를 이루며, 깔끔하고 부드러운 질감을 가진다. 특유의 깊은 단맛과 약간의 씁쓸함이 어우러져 있다. 밤 양갱은 기본 양갱의 달콤함에 밤의 고소하고 풍부한 맛이 더해져 한층 더 복합적인 맛을 느낄 수 있다.


비주얼적으로는 양갱은 색상이 고르게 분포된 깔끔한 외관을 가지고 있다. 밤 양갱은 양갱 내부에 밤 조각이 들어있어, 절단면에서 밤이 보이거나 밤 페이스트가 섞여 있는 경우 조금 더 밝고 고르지 않은 패턴이 있다.


주인공은 그냥 양갱을 주는 사람이 아닌 밤 양갱을 주는 사람을 원했다. 그것은 커다란 변화는 아니다. 그저 기본 양갱에 밤을 추가하는 정도의 정성만 있다면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도 인간관계에서 양갱이 아닌 밤 양갱을 주는 사람을 원하는 것 같다. 종일 나를 생각하거나 시간을 쏟아붓지 않아도 된다. 일상에서 가끔 나를 떠올리는 정도면 만족할 것이다. 가끔 오늘은 이런 일이 있어서 내가 생각났다고 한다면 나도 그 사람을 한 번 더 떠올릴 것이다.


내 과거 연애를 떠올려보면 내가 만났던 남자는 나에게 밤 양갱을 주었던 사람들이었다. 결국엔 헤어졌으니 끝이 좋지 못한 연애였을 것이다. 그래도 전 남자친구들을 미워하진 않는다.


그들은 나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사랑받는 방법을 알게 해주었으며, 길치인 나에게 지도 보는 법을 알려준 사람이었다. 그래서 고맙다. 그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내가 사랑했던 남자를 나쁘게 기억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에게 밤 양갱을 넘어서 다디단 딸기양갱이 되어준 사람은 내 남편이 되었다. 그와의 결혼으로 나는 조금 더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할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 남편이라는 것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래서 두 노래를 조합하자면 나는 밤 양갱이 아닌 다디단 딸기양갱과 누가 뭐라고 해도 잘 살고 있다.


나를 화가 나게 했던 말이 있다. 누군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나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남편 말도 들어봐야죠? 잘 맞춰서 사는 게 아니라 남편이 참아주는 거겠죠.’


그때엔 그냥 참았다. 싸우고 싶지 않았기 떄문이다. 이젠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네가 뭘 알아. 난 잘살고 있지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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