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라 주말에 일하냐고요? 아니요, 밤새 놀아요
해당 글은 출판된 [25살 문과생의 PM으로 살아남기] 글의 일부입니다. 나머지 글들은 숨김 처리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나는 양쪽 귀에 피어싱을 각각 다섯 개, 두 개씩 뚫었다. 여름에는 시원한 민소매 탱크톱 입기를 좋아하고 한 달에 한 번씩 헤어클리닉에 정기적으로 7만 원씩 쓴다. 클럽을 자주는 못가도 춤추러 가는 거 꽤 좋아하고 홍대, 이태원, 성수 근처 힙한 카페와 펍은 꿰뚠다. 뮤지션, 댄서, 스케이트 보더들 파티에 초대받으면 반드시 간다.
직장툰 만화를 그리거나 브런치와 티스토리를 쓰는 등 집중 작업이 필요하면 조용한 카페보단 신입 DJ 음악이 플레이되는 복합 문화공간을 찾는다. 자주 만나는 타투이스트 친구가 있다. 도안 그리는 데 몇 시간이 걸린다면 그 친구는 작업하고, 나는 옆에서 내 일을 한다.
힙한 공간을 찾다 보면 불가피하게 클럽거리를 지난다. 어제 새벽 두 시까지 놀았던 펍이 눈에 보여 인스타 계정에 들어가 보면 새롭게 초대될 DJ들 리스트가 뜬다. 갈까 살짝 고민하다가 작업할 양이 많으니 친구와 깨끗이 포기하고 일이나 하기로 한다. 작업이 일찍 끝난다면 30분이라도 즐기고 집 가지 않을까.
홍대 9번 출구 앞에 스케이트 보더들이 새벽 한 시 정도 나와 연습하는 광장이 있다. 낮에는 버스킹 장소였지만 밤에는 그들만의 세계다. 타는 거 보면 짜릿한 게 금방이라도 타다가 뼈 부러질 것 같이 과격하게들 탄다.
걷다 보면 독특한 패션의 길거리 사람들을 보는데 머리 전체 색을 파란색과 분홍색으로 염색하고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드레스 입고 다니는 분들 많다. 이해 못 해도 예쁜 거 인정한다. 남들의 시선을 원하는 건지, 신경 쓰지 않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와 다른 그들의 모습이 나에게는 신선해서 좋다.
여기는 인스타그램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다. 전화번호 대신 인스타를 교환하며 서로가 서로를 모두 안다. 다양한 커뮤니티 지인들이 다 연결되어 있어 얕게 친구를 만나 즐기기도 쉽다.
여기는 사람들이 정착하지 않는다. 외국인들이 많은 이유는 다양한 나라에서 교환학생들이 학기마다 교체되며 오기 때문이다. 새 얼굴들이 끊임없이 보인다. 거주민으로서 다들 떠나갈 사람들이라는 걸 안다. 여기는 그래서 조심스럽게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곳이다. 넓고 얕은 관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곳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 자유로움을 주말에 집 밖에만 나와도 만끽할 수 있다는 게 이리 아름다운 것을.
평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출근하는 종각은 좀 진부한 편이다. 우선 높게 솟고 빽빽한 회색 건물들로 가득하며 정장 입은 직장인들이 노트북을 끼고 뛰어다닌다. 점심시간에 밥 먹으려고 보면 회식 장소로 딱 좋은 비싼 식당들로 가득하고 고즈넉하고 인테리어가 단순한 카페가 많은 편이다.
출퇴근 시간에는 지하철과 버스가 빽빽하고 나를 포함한 서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눈빛만 봐도 지쳐 보인다. 서로 신경 쓸 겨를 없이 집 가고 싶단 생각이 가득해 버스 탈 때 앞뒤 다퉈 안 보고 올라탄다.
그나마 이 지루한 평일 일상을 재밌게 만드는 건 일할 때 퍼포먼스를 내며 느끼는 희열감과 개발자, 디자이너 동료들과의 수다다. 같이 일할 때가 가장 재밌어서 재택근무를 잘 안 하게 된다.
사무실 안은 인테리어가 예뻐서 잘 밖에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 내 자리는 비누꽃과 방향제를 데스크에 올려놓아 조금 향긋하다. 방향제는 나무향이다.
우리 회사 CTO가 프랑스인인 만큼 워라밸을 추구하는 문화에 익숙한 나와 개발 본부 직원들에게 야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칼퇴한다. 조금 늦게 가는 개발자들이 있다면 진심으로 일이 재밌어서이거나, 아침에 늦게 출근하셔서라고 믿는다. 밤새 일하거나 밤에 서로를 태그 하는 일은 되도록 없어야 한다.
대신 야근을 하지 않도록 가장 효율적으로 업무를 제 시간 안에 끝내 놓으려고 노력한다. 뇌세포가 열렬히 태워지는 느낌으로 몰두한다. 밤에 오면 훌륭한 수면의 질을 위해 건강한 수면 영양제를 섭취하고 푹 자도록 한다. 그래야 내일 또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가끔 퇴근하고 인사동, 익선동 거리를 간다. 고즈넉한 한옥 거리가 예뻐서 하염없이 걷는다. 옛날 카페에 들어가 개인 갤러리도 보고 팥죽도 먹는다. 야경이 예쁘고 조용한 거리가 정신없었던 평일을 정리하기에 완벽한 마무리를 선사한다.
자기 전 부모님과 전화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부모님은 내 인스타그램, 티스토리, 브런치를 전부 구독하신다. 내 스토리도 부모님께 모두 열려 있어서 내가 평일과 주말에 무엇을 하는지, 어딜 갔는지 모두 투명하게 보신다. 딸 혼자 서울에 살게 허락해주시며 걱정이 많으실 테니 내가 잘 지내고 있음을 항상 아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해서다.
주말
힙한 카페나 식당을 찾아다니거나 밤새 노는 건 기본이지만, 나 스스로 보내는 시간도 잘 확보해야 한다. 시간 분배를 잘해야 한다.
나는 준비하는 자격증과 하고 있는 부업이 많다. 온라인 강의도 준비하고 있고, 전자책을 내고 싶어 글을 정말 많이 쓴다. 읽고 싶은 책도 많아서 쌓아두고 자기 전에 읽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후 세 시까지는 거리가 잠잠하니 (아마 어제 늦게까지 파티한 친구들이 자는 시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시간을 틈타 일을 모두 끝내 놓는다.
일요일에는 교회를 간다. 외국인 예배를 다니는데, 필요하다면 예배 시간에 가끔 피아노 반주를 해준다.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반주했던 나로서는 반갑게 기꺼이 도와줄 수 있다. 청년부 3시 예배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후에 공동체 모임이 있어 밥 먹고 벚꽃을 보러 가거나 한강 드라이브도 간다. 내게 원하는 것 없이 나 자체를 좋아하고 관심 있게 지켜봐 주는 사람들로 가득한 이 장소가 내게 소중하다.
뮤직 앱으로 유튜브 프리미엄을 애용한다. 갤러리 갈 때 듣는 앙리 마티스 뮤직, 클럽 뮤직, 재즈 뮤직, 자기 전 듣는 뮤직, 중국 뮤직, 프랑스 뮤직 등 카테고리를 만들어 상황에 따라 플레이한다. 요란한 생각에 편안한 음악이 필요해서인지 Gospel 노래를 자주 듣는다.
노는 걸 정말 좋아한다. 놀 때 어느 누구보다 핫하게 논다. 그런 일상의 다른 나로 생활하는 게 익숙하다. 항상 워커홀릭으로만 살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는 직장을 사랑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훈과 생존법, 희열감을 통해 내일을 꿈꿀 좋은 자극제니까. 하지만 똑똑하게 하루하루를 산다는 것은 돈을 모으며, 자격증 공부도 하고, 하루하루 커리어를 발전시키는 착실한 직장인으로만 평생을 보내라는 뜻이 아닐 거다.
하도 다른 정체성과 가치관을 가진 오늘만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홍대와, 하나의 공통된 목표과 결과물을 내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 엄청난 역량의 직장인들이 모인 종로를 드나들며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한 공간에만 어울리는 사람이기보단, 환경이 다른 어느 곳에서도 적응하는 유목민 같은 인생을 선호한다.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기 전까지는 어느 한 곳에 정착하고 싶지 않은 말을 어제도 직장 동료에게 했다.
홍대와 종로 두 공간을 모두 사랑한다. 하지만 언제든 이 두 공간을 떠나갈 준비가 되어있다. 앞으로 자유로운 유목민 같을 내 인생에 스치는 인연으로 남을 수도 있는 곳들이다. 깊게 들어가지도, 그렇다고 두 공간이 주는 재미를 아예 누리지 않고 싶지는 않다.
평일에는 뇌세포를 태우는 수준으로 일하고, 놀 때는 밤을 새운다는 작정으로 핫하게 놀고, 일주일에 적어도 나만을 위한 하루 시간을 확보해하고 싶은 작업을 하는 것이 내 일상에 활력을 넘치게 한다. 에너지 드링크를 콸콸 쏟아붓듯. 앞으로 이런 자유로운 생활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오늘도 난 집 밖을 나가 어딘가로 향한다.
프로젝트 관리자. 애자일을 공부합니다. 아프리카 지역학 전공하고 우연히 IT 회사로 들어가 주니어 PM으로 활동하고 있는 스물다섯 직장인이에요. 홍대 살고 종로에서 일해요.
- 만화 연재: pm_life_24(인스타그램)
- 블로그: babylion.eun(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