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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빈 Sep 16. 2022

방콕의 나이트라이프, 레이디보이를 만나다

아름답고 화려한 그들과의 딥토크

  방콕에 온 첫날, 부산외대 선배와 선배 여자 친구가 차를 끌고 공항으로 마중 나왔다. 코리아타운에서 소고기 4인분을 해치우고 두 분은 예약된 숙소로 날 데려다줬다. 허름하고 어두컴컴한 민박집에 도착한 건 새벽 세 시. 영어를 못 하시는 작고 허리 구부정하신 할아버지가 눈을 비비며 나오셨다. 좁은 골목길에 위치한 숙소를 보며 선배 여자 친구가 태국어로 '혼자 묵기에 위험해 보인다'며 불안해했다.


  이튿날 한국의 이태원 거리라 불리는 카오산 거리에서 선배 여자 친구가 들려준 바로는, 내가 묵는 숙소는 외국인들에게 유명하지만, 태국인들 사이에서 귀신이 나오기로 알려진 숙소 중 하나라는 것이다. 에어컨이나 TV를 고치러 간 현지 방문객들이 빨간 소방관 옷의 목 없는 거대한 장정 귀신을 몇 번 봤다는 거다. 


  소름 끼치는 건 그 방문객들은 서로를 몰랐고 방문한 날짜가 다 달랐다. 숙소에 대한 이러한 후기가 너무 많이 달리자 주인은 사실이 아니라며 화를 냈고, 법정에 글을 단 이들을 모두 고소해 소송에서 이겼단다. 이는 모두 영어가 다닌 태국어로 검색해야 나오는 정보라고.


방콕의 전경


  그 숙소는 1층에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 좁은 탱크 화장실이 두 개 있고 내 방은 2층에 있었다. 마당에는 민 간신을 섬기는 사당이 있어 화려하게 채색된 금색 종과 울창한 나무들, 중간에 놓인 부처 돌상과 동전을 넣고 소원을 빌 수 있는 연못이 있었다. 바닥이 더러워서 새벽에 슬리퍼 신고 내려와야 했고 불이 다 꺼져있어 무서웠다. 고양이가 소리를 내거나 종이 흔들릴 때면 소스라치게 놀라서 다시 방으로 돌아와야 했다.


  귀신 따위, 난 상관없다 생각했는데 마침 그 숙소가 무섭긴 했는지 나는 자기 콘도에서 머무르라는 선배 여자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10박 동안 머물기 위해 지불한 5만 원은 깨끗이 포기하기로 했다. 카오산 거리에서 언니와 언니 친구들과 만난 후, 할아버지 몰래 짐을 빼낼 전략을 짰다.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선배 여자 친구의 친구들은 정말 독특했다. 클럽에서 만나 힘겹게 대화를 이어가긴 했어도 국적과 배경, 실력도 다양하고 사고관도 자유분방했다.


길거리의 태국 레이디보이


  언니의 친구 중 한 명은 레이디보이였다. 인도 계열 방콕인인 그분은 반짝이로 뒤덮인 짧은 드레스와 찰랑이는 갈색 머리, 화려한 장신구와 짙은 화장으로 모두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한국을 좋아한다며 내게 K-pop과 관련해 좋아하는 드라마와 노래를 말해주며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이 예뻤다. 친구들이 하나씩 떠나고 선배 여자 친구와 레이디보이 언니, 나만 남게 되며 우린 자연히 선배 여자 친구의 콘도 방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레이디 보이 언니는 자기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줬다. 자신은 10대 때부터 여성이 되고 싶었고, 부모님은 이를 받아들였다. 언니는 여성으로 꾸밀 때 정체성을 찾는 느낌이었고 화장을 할 때 가장 행복했다. 밖에 나가기 전 정성껏 꾸미는 것을 일상으로 하고 싶었단다.


  언니는 운동을 못 한다. 조금이라도 하면 근육이 붙기 때문이다. 종아리에 근육이 붙을까 봐 오래 걷는 것도 피하기 위해 택시나 버스를 타고 다닌다. 여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먹지 않는 인생을 택한다. 그런데 최근에 치킨을 자주 먹었더니 배가 나와 아주 불만이란다.


태국 로컬 시장에서.


  언니는 내게 트랜스젠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솔직하게 대답했다. "언니, 나는 여성인 게 좋아. 그래서 남성으로 태어나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 따라서 다른 성으로 바꾸고 싶은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해. 내가 그 입장이 되본 적이 없는데 이해하기는 어려워. 이해한다고 거짓말하고 싶지도 않고." 만약 이해한다고 거짓말한다면, 그건 내가 언니를 동정해서일 거다. 하지만 나는 이해할 수 없어도 언니가 당당히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보기 좋고, 동정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그만큼 언니는 잘 살고 있었다.


  우리 세 명이 화장실에서 화장을 닦고 마스크팩을 올릴 때 언니의 쌩얼을 보고 깜짝 놀랐다. 화장을 안 한 모습이 더 예뻤기 때문이다. 남성이었던 과거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수하고 깨끗한 미인이었다. 언니에게 "화장이 필요 없을 정도로 예쁘다, 덜 해도 되겠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언니가 울먹이며 정말이냐고 물었다.


  나는 진심이었다. 나는 언니에게 시간이 되면 투명하고 옅지만 여성스러운 한국 메이크업을 언젠가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언니가 아이처럼 좋아하고 까르르 웃는 게 좋았다. 언니가 했던 말 중 생각나는 게 있다. "내가 틀릴 수도 있고, 옳을 수도 있고. 옳고 그름이 없을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 알겠지. 내가 한 선택에 후회가 없을 정도로 지금 내 모습에 행복해. 누구는 불쌍한 인생이라는데, 나에게는 내 인생이 너무나 아름다운 걸."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어쩌면 언니의 내면은 나보다 강하고 단단할 수 있겠다.




  콘도에서 선배 여자 친구가 우리의 대화를 잠깐 정지시켰다. 언니는 콘도 방의 안전함을 다시 어필하며 내가 그 숙소에서 나오길 바랬다. 귀신 이야기를 들어버린 이상 무섭고 겁 많은 나란 녀석, 바로 결정을 내려버렸고 새벽 두 시에 우린 택시를 잡았다.


  레이디보이 언니가 "내가 남자였기 때문에 힘이 일반 여자보다 쎄. 너 짐 내가 빼내 올게" 하며 숙소로 들어갔다. 후딱 짐을 챙기고 몰래 나왔다. 나는 할아버지께 친구 집에서 잠깐 자고 올 테니, 방은 정리 안 하셔도 된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게 짐을 빼오는 것부터 편의점에서 유심칩을 사는 것까지 레이디보이 언니와 선배 여자 친구가 도와줬다. 아무것도 몰라 헤맬뻔한 내게 두 분은 천사였다.


태국의 해산물.


  한국에 갔을 때 자기를 도운 사람이 많았다며, 이건 졌던 빚을 갚는 것이니 미안해하지 말라던 레이디 보이 언니. 나와 정반대의 사고관을 가졌지만 시선에 상관없이 당당하게 삶을 꾸려가는 언니가 계속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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