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빈 Sep 04. 2022

아름다운 말레이시아, 셈포르나 거리의 집시 아이들

낮엔 구걸, 밤엔 마약 하는 노숙 아이들, 그들의 부모는 어디로 갔을까

  셈포르나(Semporna)는 말레이시아의 코타키나발루에서 버스로 11시간, 비행기로 1시간 거리에 떨어진 숨은 '몰디브 섬'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휴양지이다. 한국인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이라 한국어로 검색하면 정보가 없다. 그래서 더 끌렸다. 현지 친구의 추천으로 우연히 알게 되어 바로 항공권을 사 도착했다.


  셈포르나는 1980년대 한국을 연상시키는 시골이다. 내가 묵게 된 곳의 게스트하우스는 부둣가에서 10분 떨어진 곳이다. 근처에 인도 식당들이 즐비하게 있어 항상 그중 싼 곳을 골라 식사를 해결했다.


셈포르나 야간 시장에서 구입한 2천원 사과와 오렌지


  열대 나무가 우거진 길을 걸어 마을부터 돌아보게 되었다. 딱딱한 파파야와 망고를 300원 패키지로 파는 길거리 아저씨, 다 쓰러져가는 건물에서 당구 치는 젊은이들, 신선한 코코넛 오일과 주스 파는 여인들을 봤다. 폐가인 줄 알았던 건물이 사실 백화점이었더라. 건물들을 자세히 보면 약국, 슈퍼마켓, 은행 등 있을 건 다 있다. 도로가 넓고 쓰레기가 길에 흩어져있어 코를 틀어막는 악취가 자주 났다. 주인 없는 근육질 개들이 어찌나 많은지 지나갈 때 물릴까봐 무서웠다.


바다마을 셈포르나의 부둣가 근처


  게스트하우스 오너는 영국에서 온 스쿠버 다이버로 말레이 여성과 결혼하고 2살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직원들은 현지 말레이인이고 모두 영어를 해서 다행이었다. 여행 패키지가 제공되는 회사를 찾다가 없어 고생하다고 있는데, 현지사람들이 인터넷을 잘 몰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여행사를 운영한다고 정보를 주셨다. 덕분에 싸고 좋은 곳을 페이스북으로 골라 당일치기로 유명한 섬들을 들릴 수 있었다.




  여기 섬의 바다는 맑고 깨끗해서 해양식물을 보트를 타고 달리면서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그래서 유럽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해산물도 저렴해서 중국 관광객들이 자주 찾아온다.


셈포르나 해산물을 먹으며


  부둣가에 나가면 여러 여행사들이 부스로 진열되어 있는데 이 중 하나를 골라 들어가 가격을 흥정하고, 투어 패키지를 구매할 수 있다. 나는 Bohey Dulang Island가 포함된, 섬 세 개를 투어 하며 하이킹과 스노클링을 즐기는 패키지를 90링깃으로, 게스트하우스 오너가 주선해준 덕분에 싸게 구매했다.


  하루 전날 구매하면 다음날 8시~9시 사이에 부둣가로 나가 기다리면 된다. 보트에 타자마자 주는 구명조끼를 입고 20분 정도 바다 위를 달린다. 바자우족(필리핀 남부 출신 사람들로 바다 유목민이라 불린다. 대부분이 국적이 없으니 본토에 정착할 수도, 직장을 구할 수도, 공교육을 받을 수도 없다.)이 사는 푸른 바다 위 수상 가옥들 주변에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즐비하여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질 수 있다.


  그것도 잠시, 조금 더 벗어나면 바다가 맑은 녹색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눈앞에서 색깔이 서로 다른 세 층으로 희미하게 분열되어 가는 것이 보인다. 그렇게 눈 떼지 못할 아름답고 거대한 자연경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사람이 건드리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게 감동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 자체로 순수하게 있는 자연 앞에서 겸손해졌다. 앞으로 내가 살고 싶은 구체적인 미래를 끊임없이 그리고, 사회가 보기에 만족스러울 인생을 꿈꾸는 복잡한 머릿속이 공허해진다. 너무 작은 것들에 그동안 매달린 게 아닌가 싶다. 때 묻지 않게 그 자체로 있어도 원대한 바다 위의 산을 보며, 사회에 휩쓸려 너무 많은 생각에 지친 나를 반성한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나는 작은 오염덩어리 같다.


  스노클링을 하며 레인보우 빛을 내는 물고기 떼 속으로 들어가 헤엄쳤다. 바다거북이와 아기 상어도 봤다. 인간을 무서워하지 않는지 옆에 와 비비적대는 고양이처럼 내 종아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숨을 더 오래 참을 수 없음에 한탄하며 다음에는 체력을 키워 폐활량을 키워놓고 오겠다고 다짐한다. 깨끗한 바다가 내가 들어가도록 허락해줘서 영광이었다.




  아름다운 셈포르나 바다를 나오면 다시 마을을 지나야 한다. 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쓰레기 악취만이 아니다. 길거리 곳곳에서 꾀죄죄한 옷을 입고 노숙하는 아이들이다. 외국인인 나에게 1링깃만 달라고 손을 내밀거나, 음식을 달라고 구걸하거나, 배고픔에 지쳐 쓰러져 자는 이들 모두 10살이 안 된 아기들이다. 이들은 말레이 국적은 있지만 부모가 없는 '집시'다. 어떤 애들은 바자우족 출신으로 아예 국적도 없다.


셈포르나에 단 한 개 있는 카페 - 스타벅스


  편의점에서 600원짜리 과자를 사 항상 들고 다녔다. 쿠키가 낱개로 포장되어 있는 걸 산 이유는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돈 대신 떼서 주려고 하기 위함이다. 배고파하는 아이들에게 네 개씩 주면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다. 음식을 받으러 손을 내미는 그 애들 손톱에는 때가 굵게 끼여있다.


 내게 돈을 달라고 하는 아이들을 만날 때 당황스럽다. 눈동자가 순수하지 않다는 거다. 이들은 이미 사회를 혐오한다. 인생의 목표를 잃었다. 내가 돈을 주면 아마 암시장에서 마약을 사거나 주유소 가스통을  빨대를 대고 코로 흡입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쿠키를 대신 주면 뿌리치고 필요 없으니 돈을 달라 요구한다. 무시하고 지나가면 말레이 욕을 외치거나 나의  뒤에서 크게 웃는다.


  한 번은 지나가는데 Money를 외치며 어린 남자애가 내 허리를 만졌다. 졸졸 따라오며 한 번 더 거세게 나를 밀어내서 경찰을 부를 거라며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너무 무서웠다. 말레이어로 경찰은 "Polis" 발음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에 아이가 알아들었는지 날 떠났다.




  엄청난 명작의 스토리 결말이 후반부에 반전과 함께 급하게 꼬이는 것처럼. 이 여행지에 가졌던 환상 뒤편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가난을 보았다.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시대의 과제고 분명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을 테지만 기분이 참담하다.


  셈포르나에서의 일주일은 쉬러 왔으나 오히려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였다. 아이들을 보고 싶지 않아 쉽게 밖에 나가지 못하기도 했다. 걔네들을 볼 자신이 없었다.


  불공평한 세상에서 나는 그나마 상위권의 인생을 살고 있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씁쓸함. 여기서 더 내려가진 말자는 결심과 그런 결심을 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 그런 모순적인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셈포르나 숙소에서 독서하며.


  

 


 




  

작가의 이전글 나홀로여행, PADI 오픈워터 스쿠바다이빙 자격증 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