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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빈 Feb 19. 2022

아프리카에서는 시간이 거꾸로 간다

지극히 주관적인, 사회초년생이 바라본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

죽어도 죽지 않는 법


    케냐를 여행할 때 현지 친구와 오후 여섯 시에 만나 현지 시장을 들려 장을 보기로 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친구는 오지 않았고,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일곱 시 반에 나오더니 슬슬 갈 준비를 하자고 했다. 문화 체험을 하고 싶어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결국 한 시간밖에 시장에 있지 못했고, 더 많은 걸 보고 싶었던 나는 화가 났다. 


  그런 내게 그가 던진 한 마디는 ‘시장에 가고 싶었던 이유가 쇼핑을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내게 말했다면, 늦지 않았을 거야. 나는 필요한 물건만 사면 되는 줄 알았어’였다. 제시간에 나오지 않는 것에 사과하기 전에, 쇼핑을 하는 나의 개인적인 목표를 공유하지 않았다는 것에 더 불쾌해했다. 


케냐 나이로비, 2020년 1월


  그 친구뿐만 아니라 내가 만난 대부분의 아프리카 시골 친구들은 시간 개념이 나와 참 달랐다. 과거, 현재, 미래를 직선적인 시간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서구인과 우리들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낯선 개념인데, 대부분 아프리카인은 정확한 시간 개념보다는 상황을 중시하는 경향이 크다. 시간은 자연의 일부 중 하나라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바꾸려는 것은 자연을 거스른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시간은 고무줄처럼 늘리다가 줄일 수 있는 자연현상이며, 자연현상을 중시하고 사람을 모든 활동의 근본으로 생각하는 아프리카 전통 종교적 철학을 반영한다. 생산성을 따진다면 서구식 시간 개념이 더 효율적이지만 철학적으로 무엇이 더 옳은가를 본다면 생각이 깊어지는 질문이다.


  지금 설명하는 아프리카 사회의 시간적 개념은 동부 아프리카 스와힐리 사람들 중심이다. 우선 첫째, 그들은 시간을 일어난 사건으로 생각한다. 너무 먼 미래는 ‘없는’ 시간이나 다름이 없어 ‘노타임(No time)’으로 표시한다. 가까운 미래는 곧 일어날 일이니, 지금 하고 있는 일, 현재로 간주한다. 개인에게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을 현재로 간주하는 것이다. 둘째, 시간이 뒤로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시기까지 인간이 보는 것은 과거밖에 없다. 현재의 나는 과거가 이루고 있는 나이기에 나는 미래가 아닌 과거를 보며 살아오는 것이다. 하고 있는 일을 통해 시간을 소비하고 과거를 채워가며, 미래에 대한 관심보다는 하루하루를 살아남으면서 쌓아가는 것을 시간으로 인식한다.


남아공 케이프타운, 2020년 2월


  반면 내가 사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시간은 얼마나 생산적인 가와 연관된다. 우리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목적을 달성하는 일과 동등하며,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했다면 “시간을 쓸모없이 썼다.”라고 판단한다. 시간이 우리를 따라 사는 게 아니라 우리가 시간에 따라 산다. 


  이곳은 ‘사회적 성공’에 대한 확실한 척도가 있다. 우리 모두는 그 기준에 맞춰 살아가라고 학생 때부터 강요당한다. 무언가를 이루고 성취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를 통해 타인이 내 가치를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명예와 부가 생존을 보장한다는 믿음에 세뇌된다. 남들보다 더 빨리 정상에 오르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린다. 어렸을 때 품었던 소중한 꿈을 잊고 우린 그렇게 현실에 지쳐간다. 남들과는 다른 개성 있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던 나는 없고 어느새 안정적인 직장이 보장된다는 직업을 쫓아 자격증 시험 준비에 급급하다.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우리는 필요 없는 사람을 거르는 법을 배운다. 인연에는 모두 끝이 있다는 생각을 전제로 관계를 맺고, 성공을 위한 인적 자산으로 간주, 평가하고 나에게 필요한 가치가 충분한 인맥인지 평가한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기 위해 우리는 학교 도서관에 10시간 이상 앉아있는 법을 배웠다. 같은 지식을 얼마나 더 많이 암기했는지를 두고 친구들과 경쟁한다. 


  나의 취미와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지식만을 쌓고 또 쌓다가 사회로 나와서야 비로소야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 가치는 어디서 찾는가, 내 가치는 어떻게 정의하는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닌 무엇을 ‘이루었느냐’가 중요해진 사회. 그걸로 내 가치가 판단되는 사회. ‘상황’보다 ‘시간’이 중요한 우리 문화가 만들어낸 폐해다. 


2) 사사(Sasa)와 자마니(Zamani)


  다시 동부 아프리카 시간 개념으로 돌아가자. 이 시간적 관념은 두 단어로 정의된다; ‘사사’와 ‘자마니’. 사사는 현재와 예측이 가능한 가까운 미래를 뜻한다. 반면 자마니는 아주 먼 미래와 기억될 수 없을 정도로 먼 과거를 말한다. 즉 아주 오래된 묻힌 과거의 시간이다. 


아프리카인의 시간 개념에는 종말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데, 이가 시간 개념에도 반영된다. 지나간 시간(과거)은 잊혀야 할 소멸된 시간이 아니라, 자연이 소멸을 허락하지 않는, 소멸되지 않는 개념이다. 어떤 것도 이 세상에서는 소멸이 될 수 없기에 자마니는 계속 존재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에서 조상을 ‘Living dead’, 즉 ‘살아있지만 죽은 자’로 부르는 이유는 조상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있는 후손이 그 조상을 기억한다면 그는 아직 사사에 있다. 즉 당신은 기억되는 한 살아있다. 왜냐면 잊힐 정도로 묻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기억하는 후손이 단 한 명도 없다면 조상의 혼령이 드디어 자마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종결된 시간, 신화의 시간, 거시적 시간이 자마니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져온 자마니에는 더 오래 산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신 또한 자마니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신은 법과 도덕, 윤리의식의 최후 보루에 거주한다. 그래서 자마니에서 질서와 평안, 도덕규범, 신성함이 나온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말을 뒤집으면 이런 뜻이 된다; 육체가 죽었는데 기억되는 한 영혼이 살 수 있다면, 기억되지 않아 죽었는데 육체만 살아있는 인간이 있다는 거다. 


  앞만 달리는 우리 현대인들은 과거라는 시간으로 쌓아온 나의 경험, 생각, 가치관, 정체성을 돌아볼 시간이 없다. 그렇게 우리 스스로가 누구인지 모른 채 살아가는 우리들은 육체만 살아있는 인간들일까?


남아공 케이프타운, 2020년 4월


  삶에 쉽게 지치는 이유는 ‘나’를 찾지 못해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 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 취미는 무엇인지, 어떠한 가치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이 정한 사회적 성공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고 앞만 보고 달리다가 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내 속에 세워진 기둥 하나 없이 그렇게 길을 잃어버린다. 나만의 철학, 정체성, 종교 없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목소리들에 휘둘려 허우적댄다. 


3) {성공=가치}라는 그 공식


  나는 암벽등반을 좋아해서 등산을 자주 간다. 내게 등산은 아름다운 장관을 보기 위한 길은 언제나 험난하다는 인생철학을 가르쳐주는 소중한 스포츠다. 


  최근 경쟁이 등산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정상에 일찍 오르면 엄청난 성취감이 몰려온다. 하지만 뿌듯했던 순간도 잠시, 뒤쳐지던 사람들이 하나씩 올라와 내 옆에 서서 함께 장관을 바라본다. 


남아공 케이프타운, 테이블 마운튼 정상, 2020년 2월


  어차피 함께 정상에 서게 될 우리들인데, 사회 구성원으로서 같이 일할 사람들인데. 일찍 정상에 올라가 혼자 장관을 보는 것보다, 일부로 길을 돌아가기도 하고, 다른 등산가와 대화하기도 하고, 쉼터에서 일기도 쓰며 등산을 통해 느끼는 소소한 기쁨을 곱씹는 게 훨씬 가치 있다.


  나에게는 예쁜 삶을 살고 싶은 추상적이지만 확고한 꿈이 있다. 그냥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가치관, 주관을 갖고 뚝심 있게, 나 답게 사는 인생을 꿈꾼다. 내가 경험한 모든 것, 접했던 많은 목소리를 곱씹고 또 곱씹어서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고 ‘나’라는 사람을 발견해야 한다. 내가 정의하는 옳고 그름, 나의 사상과 종교, 법, 도덕, 윤리는 무엇인지 파헤치고 싶다. 


  그러려면 나는 아주 자주 멈춰서 내가 현재 서 있는 곳을 둘러봐야 하고, 지나온 장소와 과거를 다시 들려보는 번거로운 짓을 해야 한다. 과거 썼던 일기와 시집을 뒤적이며 현재 내 생각과 일치하는지 비교해보거나, 새로운 취미에 도전해서 나와 맞는지 시험해 보는 모든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나에 대한 사소한 사실을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내가 사람 왼쪽에 서는 걸 좋아하는 것, 갈색톤 립스틱이 잘 어울린다는 것, 음식에 청양고추 넣는 걸 선호한다는 것 등) 참 즐겁다. 


  아프리카 시간관념에 따르면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는 한 내 영혼은 죽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내가 나를 오랫동안 기억했으면 한다. 내 가치를 사회가 아닌 내가 정의하길 바라며 어떻게 효율적으로 살았는지가 아닌 무엇을 하며 성장했는지에 초점을 두고 살면 좋겠다. 끊임없이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자 한 과거의 나, 발전한 현재의 나, 앞으로도 변화할 미래의 내가 기대되고 자랑스러운 이유다.


  사회가 말하는 정상에 조금 늦게 서더라도 성공한 이은빈보다 가치 있는 이은빈이라는 타이틀이 더 매력적이다. 그 타이틀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지혜로운 삶을 사는 내가 되었으면, 난 꿈을 이미 이룬 걸 것이다.



  아프리카 지역학 전공하고 우연히 IT 회사로 들어가 PM이 돼버린 스물네 살 신입 직장인 스토리.

  홍대 살고 종로에서 일해요. 취미는 비건 베이킹, 시간 날 때 피포 페인팅, 좋아하는 건 한강 보러 가기, 카페 가서 인스타그램 포스팅하기.


- 만화 연재: pm_life_24(인스타그램)

- 블로그: babylion.eun(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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