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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bobusang Apr 15. 2024

마주 서기   

"엄마, 예전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나 이제 집에 가고 싶어."

 중국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딸의 말에 엄마는 울었고, 아버지는 집에 못 오는 이유를 물었다.


"엄마, 음식도 많이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똑같이 시작해도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보니까 속상하네."

엄마는 얼굴을 감싸고 또 울었다.


그렇게 엄마는 마음이 여렸다. 그런 엄마를 볼 때면 가슴에서 데워져 위로 스며 올라오는  훈기에 얼른 누가 왔다는 핑계를 대며 전화를 끊었다.

'엄마,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 줘. 엄마 없으면 난 고아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오래오래 살아 줘.'


 이 세상에 나를 위해 울어줄 단 한 사람에게 꺼이꺼이 울면서 애원하다가 잠이 깼다. 베갯잇의 질퍽한 질감에 몸을 일으켜 시계를 보니 여명이 밝아오려면 서너 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  


 나는 반평생을 살고도 여전히 아픈 엄마를 의지하고 산다. 정작 엄마가 필요로 할 때는 어쩔 수 있는 일보다 어쩔 수 없는 일이 더 많다는 무력함에 미안해하면서.


 6년 전,   4월 12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중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기 전부터 인연을 맺은 15년 지기 중국 동생 생일이기도 했지만, 내 인생이 바뀐 날이기도 하다. 엄마 생신보다 열흘 빠른 이유도 있지만, 앞으로도 이 동생 생일만큼은 잊지 않을 것 같다.


 집을 나가기 전에 습관처럼 한국 집에 영상 전화를 했다. 평소에 일어나면 화장부터 하던 엄마는 핏기 없는 맨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왜 어디 아파?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이네."


 아침 준비하는데 팔에 갑자기 힘이 없어서 동네 병원에 갔는데 큰 병원에 가라고 해서 준비 중이라는 거였다. 나는 전날 꿈자리가 어지러웠던 생각나 순간 불안이 엄습했다. 빨리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중국 동생 부모님도 오랜만에 오셔서 즐거워야 할 식사 자리였지만, 마음은 온통 한국 집에 가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한국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오빠였다. 병원 측에서 MRI까지 다 찍었는데 이상이 없다고 일단 며칠 입원하라고 했다는 거였다. 그렇게 엄마는 간호 통합병동에 입원했다.


  인간의 예감이란 호의적이지 않은 무의식이자 본능이다.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직장에 며칠 휴가를 내고, 다음 날 새벽에 출발하는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아버지는 며칠 입원하면 되는데 뭐 하러 오냐고 한다. 항공권 취소가 안 된다고 핑계를 대면서 일단 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국에 도착해서 엄마가 입원하고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식구들이 안절부절못하며 수술실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엄마가 갑자기 혀가 꼬이고 쓰러져서 수술실에 들어간 지 30분이 다 되어가는데 막힌 혈관을 뚫지 못하고 있었다. 의사는 미세 혈관이라 터질 있어 시도해 보고 되면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했다.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통화를 했는데 그것도 병원에 입원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고 얼마 후 엄마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의사는 일단 혈관은 뚫었지만, 더 진행될 가망성도 커서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장애가 어느 정도인지, 세 시간 안에만 병원에 와도 골든타임이라는 뇌졸중이 어떻게 병원에 입원해서 이렇게 될 수 있는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고, 답답했다. 장애보다 생명이 위험하다는 말에 반박할 기운도 할 말도 잊은 채 머리만 하얘져 올 뿐이었다.


 하루에 두 번 가족 중 두 사람만 중환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수술 후 처음 본 엄마는 왼쪽 팔다리 쇠 수갑 같은 걸로 채워져 침대에 묶여 있었다. 자꾸 왼손으로 마비 된 오른쪽을 만지려고 한다는 거다.


딸을 쳐다보는 엄마의 눈은 두려움에 가득 차 있는 듯도 하고, 무슨 상황인지 멍해 보이기도 했다. 그것도 잠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간호사님 우리 엄마 지금 뭐라고 하는 거예요? 제발 말 좀 해주세요."

그때까지 엄마의 장애 상태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는 간호사에게 애원하듯 소리쳤다.


"우리도 무슨 말인지 몰라요."

가슴이 서늘해지는 간호사의 말이 귓전에 퉁겨지고 있었다.


 면회 시간 다 되었다는 말이 꿈속 어느 저편에서 아득하게 들려왔다.


 "엄마, 걱정하지 마, 조금만 더 여기에 있어. "

 내일 다시 오겠다는 말을 끝내 다 하지 못했다.


 엄마는 딸이 자신의 시선을 벗어나는 것도 다 보지 않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린다. 점점 초점이 꺼지는 엄마의 눈을 멀리서 돌아 보고 또 보면서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의 뜻을 비로소 알았다.


'말도 안 돼.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야. 날이 새면 꿈에서 깨어날 거야. 지금 가위눌림 때문에 못 일어나고 있는 거야.'  

라고 되뇌며 빨리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아침이 오고, 또 다른 아침이 오면서 나는 서서히 현실과 마주 서기를 배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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