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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bobusang Apr 26. 2024

마음 예보

'날씨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내일은 많은 비가 내리겠습니다. 우산과 비옷을 준비하셔야겠습니다. 지금까지 일기 예보에서 전해드렸습니다. '

이처럼 우리의 삶에도 마음 예보가 있으면 좋겠다.

아직 긴팔을 입어야 할 계절인데 한 차례 비가 올 듯 후덥지근했다.


“네 엄마 어떡하면 좋겠냐?”

“네?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말의 의도를 이내 알았지만 모르는 체했다. 순간 어디선가 큰 공이 날아와 가슴을 쿵 치고 튕겨 나가는 것 같았다.      

                         

“네 엄마 어떡하면 좋겠냐고?”

꺼질 듯 산산이 재가 되어 부서져 내리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거의 흐느낌에 가까웠다.


“어떡하든지 살려야죠, 살려서 혼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죠.”

 나는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지 않으려는 말을 뱃속 힘을 끌어올리며 내뱉었다.


하지만, 차마 아버지의 얼굴은 쳐다볼 자신이 없었다, 나도 온몸의 기가 막히고 두려웠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우리 아버지라고 생각하며 반평생을 살아왔다. 그런 아버지가 자식 앞에서 한없이 무너지고 있다는 걸 느꼈을 때 손마디에 남은 힘마저 빠져나갔다.


“그래, 그래.”

아버지는 아까보다는 좀 더 힘이 실린 살아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냈다.



 

 우리 삼 형제와 아버지는 하루 두 번 있는 면회를 위해 일찌감치 중환자실 앞에서 서성였다. 엄마를 보고 나오면 누구도 벌겋게 핏발 선 눈을 서로 마주 보지 못했다.


“엄마 간호하려면 어쨌든 간병하는 사람들이 힘을 내야 하는데 식사하러 갑시다.”

동생의 말에 대답 대신 땅에 시선을 꽂으며 차에서 내린다. 면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평소 좋아하는 냉면집에 들어갔다.

냉면이 나오자, 냉면 한 줄기를 길어 올린 아버지의 젓가락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젖은 손수건을 꼭 쥔 거친 손과 앙상한 어깨만 간간이 떨릴 뿐이다.


여든을 바라보는 한 노인이 성긴 머리숱 아래 굵은 빗줄기가 흐르는 얼굴을 떨구고 소리 죽여 흐느끼고 있다. 아이가 두 팔을 벌려 안아도 안길 구부정한 어깨가 어떻게 저토록 슬플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삼 형제는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식탁 위의 냉면만 보고 있었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며칠이 지나 담당 의사는 다른 장애는 좀 더 봐야겠지만 언어 장애가 심할 거 같다고 했다.

“언어 장애가 심하다는 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거죠?”

 “글쎄요, 회복하는 걸 봐야 하겠지만 언어를 담당하는 뇌 부위의 손상이 심합니다.”


의사의 말은 모두 외계어다.


중환자실에 24시간 켜져 있는 밝은 조명 탓인지 딸이 온 것을 보고도 눈을 뜰 듯 다시 눈을 감는 엄마의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아주며 먹먹해진 가슴이 넋두리를 한다.


‘엄마 왠지 지루한 장마가 시작될 거 같아, 우리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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