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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bobusang Apr 27. 2024

낯선 상황의 힘

 문학에는 친숙하고 일상적인 사물이나 관념을 벗어나 이상하게 만들거나 새로운 느낌이 들도록 하는 ‘낯설게 하기’ 표현 기법이 있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인간도 이 ‘낯설게 하기’를 통해 생각의 유연성과 문제 해결 능력을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생에는 자신이 원치 않은 낯선 상황이 불청객처럼 오기도 한다.




  

일반 병실로 옮긴 후에야 비로소 현실로 마주하게 된 낯섦은 엄마의 장애다. 일반적으로 뇌졸중으로 편마비가 오면 남자들이 우측, 여자들이 좌측에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는 우측 편마비에 언어 장애가 심각했다.


  한국 언어 병리학회에서 펴낸 <실어증 환자의 말-언어 치료>에서는 병소에 따른 실어증을 크게 6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병소’란 병이나 상처가 난 자리를 말한다. 브로카 실어증, 베르니케 실어증, 전반 실어증, 전도성 실어증, 연결 피질 실어증 그리고 명칭 실어증이다.


 그중 뇌졸중 환자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실어증으로 브로카 실어증과 베르니케 실어증이 있다.

위 책에 각 실어증의 일반적인 특징도 수록되어 있다.


 브로카 실어증(Broca`s Aphasia)은 말수가 적고 말이 막힘, 주저하거나 말하는 문장이 단조롭다. 자기의 언어 장애를 알고 있기 때문에 한숨을 많이 쉰다는 특징도 있다. 말로 표현하는 것에 비해 알아듣기는 잘하는 편이지만, 따라 말하기와 이름 대기도 심하게 떨어진다. 뇌의 병소가 운동 피질에 가깝기 때문에 조음 장애와 반신불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


 베르니케 실어증(Wernicke`s Aphasia)은 말수가 많고 말을 쉽게 하지만, 자기가 언어 장애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말은 길게 하는데 자신이 무슨 말하는지도 모르고 듣는 사람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뇌 병소가 운동 피질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반신불수가 되는 경우는 적다.


이 외에도 전반적 실어증(Global Aphasia) 스스로 말하기, 알아듣기, 이름 대기, 읽고 쓰기 등 모든 언어 기능에 장애가 있다. 우측 반신마비가 심하고 우측 반신의 감각 소실이 있다.




 실어증은 자연 치유가 되기도 하는데 수술이나 외상을 입은 후 2~6개월에서 회복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2~3개월 안에 회복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엄마가 입원했을 때 뇌졸중이나 뇌를 다친 환자 중에 실어증 환자들이 있었는데 3개월 이내에 치유되는 환자가 많았다. 3개월이 넘으면 회복률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실어증이 자연 치유되는 것은 언어를 담당하는 주요 반구의 손상이 안 되었을 때가 아닌가 싶다.


 실어증 치유에 미치는 요소는 나이, 실어증 종류, 언어 치료 시기 등을 들고 있다. 나이가 젊을수록 예후가 좋고, 전반적 실어증일 때 가장 회복이 어렵다. 언어 장애 치료는 2개월 이내에 시작하는 게 좋다고 한다.


 엄마는 브로카 실어증이다. 편마비는 손상된 뇌 반구의 반대쪽 신체 부위에 생긴다.  뇌의 좌반구가 언어를 담당하는 주요 반구이기 때문에 오른쪽 몸에 마비가 생긴 것이다. 엄마가 일반실로 옮긴 후 처음 한 소리가 ‘아이고’였다. 앞서 설명처럼 자신의 장애를 인식하고 한숨을 쉬는 거였나 보다. 하지만, 그 외에는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언어 치료는 4월 13일 발병해 뇌수술을 하고 2주 후인 재활 의학과에서 언어 평가를 받은 후 27일부터 시작했다. 언어 치료는 1주일에 3번 각 30분씩 했는데 비급여라 비용 부담이 있다.




 담당 진료과도 신경외과에서 재활 의학과로 바뀌고 본격적으로 재활에 집중해야 할 시기다.   


 뇌졸중 환자가 생겼을 때 남은 가족이 해야 할 일은 빨리 슬픔에서 벗어나 환자의 재활에 집중하는 거다. 


 먼저 수술한 병원에서 재활할 것인지 재활 전문 병원으로 옮길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이 둘의 차이는 수술과 치료가 목적인지 재활 운동이 목적인지에 있다. 재활 전문 병원이 일반 병원보다 더 체계적이고 집중적으로 재활 운동을 시킨다. 하지만, 다른 질병이 생기면 외래로 타 병원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환자의 상황에 맞는 재활 운동을 빨리 서둘러야 장애 정도를 낮출 수 있다.


 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재활 운동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빨리 일반실로 옮겨달라고 담당 의사한테 요구했다. 중환자실에서도 재활사가 와서 운동을 시킨다고 하지만, 미비한 수준이다. 병원 측에서는 보호자의 독촉과 환자의 상태가 안정권에 들었다고 판단이 들자 일반 병실로 옮겨주었다. 환자의 상황이 달라 담당 의사와 충분히 상의하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나는 당시 아버지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재활 운동을 병실에서 하면 보호자가 볼 수 있기 때문에 보호자가 수시로 해 줄 수도 있다.


 꼼짝도 하지 않는 엄마의 팔다리는 건강한 일반인과 다름없이 따뜻한 피가 흘렀다.

 '혹시 어느 날 기적 같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 되어 팔과 손이 지리해질 정도로 안마를 해주었다.


   “보호자 침대에서 좀 편하게 주무세요, 하루 이틀 해야 할 것도 아닌데.


 움칫하며 눈을 떴다.


 환자 침대에 누워 몸을 침대 난간에 바싹 붙이고 엄마 다리를 주무르다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는 걸 본 간호사가 한마디 한다.


“괜찮아요.”


나는 그렇게 아련한 꿈속의 의식마저 빌려 엄마의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어떻게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간호할 수 있느냐고.

그것은 나니까 할 수 있었던 게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누구나 할 수밖에 없는 낯선 상황의 힘이라고.


나는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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