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34.속도에서 깊이로

현대인은 참 분주하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급하게 먹는 음식은 체하기 마련인데...


눈부신 과학기술•정보통신의 발전으로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의 양,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던 것을 처리할 수 있는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항공•기차•자동차 등 교통수단의 발달로 일평생을 살아도 절대적으로 갈 수 없던 거리를 가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현 추세로라면 멀지 않은 장래엔 우주여행이 대중화될 날도 얼마남지 않은 것 같다. 참 우습게도 최첨단의 기술혁명으로 물리적으로 갈 수 없는 곳을 갈 수 있게 되었지만, 같이 살지 않는 한 가장 가까운 부모형제와 물리적으로 볼 수 없는(?)아니 거의 보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너무 바빠서, 맘에 여유가 없어서 말이다.


정보통신혁명의 성공적 상품화, 대중화로 손 안에 컴퓨터인 스마트폰은 이미 생필품이 되었고, 제품 교체주기도 짧아 스마트폰 관련 산업은 전자통신업의 대표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스마트폰 얘기가 나왔으니, 스마트폰에 얽힌 이야기를 해보면, 스마트폰은 글자그대로 굉장히 스마트하다. 이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스마트폰은 굉장히 훌륭해 모든 이를 만족시키는 제품이지만 이를 소유하고, 활용하는 대부분의 사용자는 스마트하지 못하다. 아니 스마트폰이 더 스마트해질수록 사용자는 점점 덜 스마트해진다.


얼마전 스마트폰이 갑자기 고장이 나 전원이 켜지지 않는 일이 있었다. 금요일 저녁이었기에 '다음주에 고치면 되겠지'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 생각은 1시간을 넘기지 못했고, 집에 오고부터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게되었다.

다음날 친구 결혼식이 있었는데 모바일청첩장을 받은 까닭에 결혼식 장소와 시간을 알 수 없었고, 다른 친구에게 전화할 전화번호를 하나도 기억할 수 없었다. 이럴수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기억하는 전화번호는 달랑 2개, 아내와 엄마의 전화번호밖에 기억을 못하겠다. 새로 번호를 바꾼 아버지의 번호도, 가장 친한 친구의 전화번호도 기억이 날듯말듯 정확히 기억할 수 없었다. 거의 모든 활동을 스마트폰으로 했던 나로서는, 전화도 안되고, 카메라도, 인터넷쇼핑도, 음악도 듣는 것이 불가능했다. 모든 정보와 개인정보 접근을 스마트폰으로 일원화 시켜놓은 것이 나를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 아니 나는 바보였다. 스마트폰에 나의 뇌기능을 맡겨 버렸고, 나의 스마트폰에 접속 불가능한 상황은 나의 뇌기능도 함께 마비가 된다. 스마트폰에 나의 모든 기억과 생각, 뇌를 넣어 두게 되었고, 스마트폰이 나를 대신해 생각해 주고, 그 생각은 스마트폰이 꺼져 버리면 나 역시 깜깜한 꿈 속의 세상이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과거에 TV를 바보상자라 불렀다. 아무 생각없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다른 활동을 하지 않게 만드는 TV를 그렇게 칭했다. 이제는 스마트폰이 그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 스마트폰은 TV는 물론 영화, 음악, 게임, 뉴스 등 모든 엔터테인먼트가 가능한 물건이다. 그야말로 정말 대단한 물건이다. 그 대단한 물건 덕에 버스나 지하철을 타거나, 식당에 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앉아 있다. 대화도 없고, 주변에 대한 탐색도, 뜬 구름 감상도 없이 어색하게 폰만 쳐다보는 우리의 모습이 현실이다. 스마트폰은 스마트한데 나는 우리는 스튜피드하다.

속도에서 깊이로


속도가 너무 빠른 세상에서, 그 주역이 스마트폰이라면...다시 한 번 깊이있는 접근은 바로 스마트폰이 아닌 나 자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할 시간, 일상에서의 고민이 너무 부족하다. 그 분주함을 잠시 내려놓고, 매순간 삶의 의미를 깊이 있게 되새겨봐야 한다. 빠른 것이 결국 나 자신을 빠르게 잃어 버리게 한다. 

다시 지난 금요일 저녁을 돌아가 보자. 난 스마트폰이 망가졌고,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뉴스도, 영화도, TV도,  음악도, 쇼핑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그러나 아니 정말 소중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아이들과 집중하여 뛰어놀 수 있었고, 몰입해서 이야기할 수 있었고, 아내와 아이와 깊이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른 무엇인가에 정신팔려 있던 분주함도 내려놓았고, 혼자 고민하는 시간도 가지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스마트폰으로 알게 되는 정보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게 대부분이다. 속도의 불안과 어색함이 가져다준 폐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쨌든 스마트폰 고장사건은 생각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삶의 우선순위는 무엇인지, 중요한 것과 가치있는 것은 무엇인지, 깊이 있게 고민해 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잠시 스마트폰에 뺏겼던 시간을 다시 되찾아 와야하고, 일상에 대해, 그 일상의 소중함을 생각해 봐야 한다. 정말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속도보다 깊이를, 속도에서 깊이를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매거진의 이전글 #33.색깔과 이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