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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FERMATA

過猶不及;과유불급


한동안 생각이 없었다.

생각하는 게 사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랬다.

근데 잠시 멈추어 서니 생각하게 되었다.

숨가쁜 일상을 잠시 뒤로 하고 긴 심호흡을 해 보면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카페에 조용히 앉아 있으니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의 주변 사람들이 보였다. 나도 그들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오늘은 잠시 3인칭 관찰자의 시선으로 카페에 앉았다.


우연히 들어간 카페의 이름이 FERMATA였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단어인데, 갑자기 생각이 안나 몇 번을 머리 속을 되내어 보다가 안되겠다 싶어 검색해보니, 음악에서 곡의 일정한 변화를 주기 위해 박자 운동의 정지나 늘임을 표시한 것을 페르마타라고 한다. 아 맞다하면서... 시간이 좀 많이 흐르긴 했지만, 기억이 맞다면 중학교 음악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났다. 어쨋든 나를 다시 생각에 잠기게 한 페르마타... 그 페르마타라는 단어가 내 일상을 스스로를 돌아보게 해 주었다.


사전적 정의를 한번 더 생각하면 페르마타는 곡에서 잠깐 쉬게 하는 게 아니라 변화를 주기 위해 쉼을 준다는 것이다. 처해 있는 환경과 상황변수가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현대 사회에는 쉼없이 달려가는 사람들이 많다. 특정 목적을 위해, 혹은 그 자신도 모르는 그 무엇을 위해, 혹은 달리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고, 어쨌거나 사회가 많이 바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한국은 전력 질주를 원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사회이다. 그렇게 우리는 전력질주에 익숙한 민족이 되었다. 뭐든 속전속결로, 전광석화를 내재화한 아주 흔치 않은 민족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우리에게 페르마타같은 쉼이란 무엇일까? 그 쉼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 쉼을 통한 변화는 어떻게 오는가? 그러한 쉼이 꼭 필요한가?


시간개념으로 쉼을 생각해 보면 일년은 12달, 그 중 누군가에게 일정기간의 방학이 있고, 또 누군가에게 특정기간의 휴가가 있다. 또 일주일은 7일이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휴일이다. 더 작게 보면 하루에도 근로시간이 있고, 휴게시간이 있다. 직업적으로도 안식년, 연구년이 있는 경우도 있고, 그 외에도 개인의 선택에 따라 휴가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쉼에 대해 최근에는 일과 삶의 균형, 근로시간의 단축 등 정치, 사회, 문화, 경제적으로 사회가 선진화되면서 조직이나 국가 우위에서 법과 제도의 진일보에 따른 개인의 삶의 질의 변화가 이어져 오고 있다. 사실 그 중심에는 고용없는 성장 즉, 실업률 증가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삶과 시간에 대한 의식 수준의 변화 즉, 개인의 영역에 대한 간섭, 개입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과거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쉼을 함에 다른 누군가로부터의 지배, 부당한 간섭, 개입이 자연스럽게 있다보니 쉼의 여유와 여력이 없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 부모님은 쉼을 모르고 달려오셨다. 8-90년대 기적을 이룬 지난 시절 부모님이 여유롭게 쉬는 것, 여행 가는 걸 내가 본 적이 없으니, 적어도 부모님에게는 여유롭게 쉬면서, 혹은 여행을 통한 쉼은 없으셨다. 쉼 조차 무엇인지, 일과 쉼의 경계조차 불분명하여 항상 단지 자식에게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과 같은 삶을 자식이 살도록 하는 것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아마도 쉼의 경계를 없애 버렸는지도 모른다.    


일상 환경이 급격하게 변했지만, 과거에나 지금이나 하루 24시간은 동일하고, 하루에 할 수 있는 근로시간, 쉼의 시간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생각만큼 절대 비슷하지 않다는 것이다. 마치 동남아시아, 아프리카의 절대 시간이  우리와 같지만 우리의 생각과 그들의 생각이 절대 다른 것처럼...


그러한 점을 볼 때 부모세대, 그 이전 세대의 하루 근로시간을 생각해 보면, 우리 할아버지는 14시간, 우리 아버지는 12시간, 나는 8시간 일하고, 아마도 우리 자녀는 6시간보다 적게 일할 것이다. 그렇게 하고도 우리 삶은 이전 세대보다 더 풍요롭고 더 여유로움에 틀림없다. 그리고 세대가 여유를 느끼는 쉼을 느끼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시점, 그 때의 정서가 다르겠지만...


쉼없이 달려 온 부모세대, 또 다른 분주함과 쉼이 필요한 지금의 청춘세대에게 모두 페르마타와 같은 변화를 위한 쉼과 늘어짐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의 삶은 너무나도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가족, 친구, 동료 등 특정 집단과의 교류, 만남, 또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일, 생계활동을 위한 일, 성장을 위한 배움, 학습, 또 다른 만남, 재충전을 위한 휴식, 변화를 위한 휴가, 개인의 취향에 따른 문화생활, 취미생활 등 일상의 요소는 무궁무진 하다. 그러함 속에 앞만 보고 달리는 전력질주를

매일 같이 할 수 없다. 할 수 있지만, 중간에 반드시 지치게 되어 있어 그러함을 절대 오래 할 수 없고, 멀리 갈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어떤 변화를 원하는가? 그 변화는 어떤 변곡점에서 가능한가? 그 변화를 위해 반드시 무엇을 해야한다는 생각보다는 음악에서의 페르마타처럼 잠깐 쉼을 통한 전환점을 맞이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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