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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시대유감(時代遺憾)

1996년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중학생인 나에게 가치관의 작은 변곡점을 만들어 준 그런 때였던 것 같다. 사람마다 자신의 가치, 신념, 우선순위가 언제 만들어지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나에겐 그런 중요한 삶의 방향들이 형성되고 만들어지는 그런 때였다.


그 때는 군인이 아닌(군인출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일반정치인이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이 통치하던 문민정부가 들어선 때이기도 했다. 건국헌법이 들어선 이후 한국 정치사회를 나름대로 정해보면 반공-군부독재-문민으로 나누어서 볼 수 있고, 문민정부이후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기점으로 중요한 변곡점을 맞아 사법부의 판단에 좌초된 탄핵정치 이후에 등장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헌정사...현재는 그 연장선이라고 본다.


삼천포로 빠지지 말고 다시 1996년의 그 때로 돌아가 보자. 그 땐 출판영상물의 사전심의, 사전검열제도라는 것이 있었다. 세상이 불과 얼마 만에 개벽했는 지 이 사전심의, 사전검열이란 것만 봐도 알 수가 있다. 그 당시 혜성처럼 등장해 최정상의 인기 아이돌그룹으로 떠오른 '서태지와 아이들'이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그 아이들 중의 한 명인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이고,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의 인기는 그야말로 상상이상이었다. 그 부분은 논외로 하고, 그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이라는 곡이 사전심의 관련해서 한 창 논란인 때였다. 그 당시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제도로 인해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의 곡가사는 사전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서태지와 아이들'은 이에 대한 저항으로 '시대유감'의 가사를 전체 생략한 채 연주곡으로만 발매하게 된다. 문제가 된 일부 가사는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일이 벌어질 것 같네”,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네” 등이었다고 한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봐도 말도 안되는 제도였고, 가사 내용이 비상식적이거나 욕설이거나 한 것도 아니고, 제도 자체의 모순이랄까, 조금 비정상적인 사회임이 분명했고, 얼마지나지 않아 정치권에서도 이 부분을 문제삼았고, 시대유감이라는 곡이 정상 발매되었다.


그 당시 나는 범죄가 아닌 생각, 사상, 가치, 의견, 표현에 대해 누가 누구를 판단하며, 그것이 지배세력의 판단에 맡겨진 사실에 분노했고, 민주사회, 자유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라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지금의 시대라고 다른가? 나는 시대만 변했고, 지금의 지배세력들, 정치권력자들이 하는 행태는 껍데기만 바뀌었지,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지금의 위정자들이 가진 생각이 더 편협하고, 옹졸해서 더 위험한 사회를 살고 있고, 그들이 변하지 않는 한 이 사회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새로운 패러다임, 새 프레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반공-독재시대에는 민주화가 절실했다. 문민정부가 들어섰어도 민주적인 절차, 민주적인 제도가 실질적으로 도입되지 못했다. 그땐 그랬었다. 그런데 지금은  때와 다르다. 민주화가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 이미 민주사회에 진입한  20년이 넘었고, 시민수준, 시대가치가 민주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직도 민주화를 외치던 세력이  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때의 제도적 가치로 지금, 우리의 권력에  있다.  이점에 바로 시대유감의 뜻을 표한다. 탄핵정권이후의 시대가치, 시대의 요구를 문재인 정권은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시대의 가치에 매여 미래지향적 사고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분열을 만들어 내고, 성장의 한계, 정책의 부재, 새로운 시대를 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지금이 더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의 정책, 가치, 생각들이 더 자유롭게 표현되고 토론되고 깊이 있게 논하고 있는가? 보수든 진보든 자기 생각들이 맞다는 주장만 난무하고, 자기 생각에 배치되면 모두가 적이라고 생각하고, 누가 적폐이고, 누가 적자인지를 누가 판단하는가? 20여년 전의 사전심의제도가 있었던 시대와 뭐가 다른가?


1996년, 90년대 후반을 거치면서 스스로 터득한 저항정신을 가지고 20여년이 지났고, 그러한 저항의 정신들이 지금껏 이어져 왔고, 그러한 생각이 지금의 나를, 대한민국의 건전한 소시민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들이 모여 지금의 합리적인 생각을 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생각을 존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생각해 본다. 내가 소중하다면 남도 소중하고, 내 생각이 존중되어야 한다면 남의 생각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 때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해야 함에 변함없다. 그러하지 못한 사회, 정치권을 보면서 시대유감을 표하지만, 언젠간 시대공감이 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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