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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기억하고, 역사가 증명한다

역사의 판단

국사교과서 국정화로 온나라가 떠들석하다. 창조경제, 다양성의 시대에 획일화된 시각의 국정화가 왠 말인가? 역사란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다양한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의 객관적 혹은 주관적인 해석, 판단에 따라 기록하고, 의미부여하면 될 것을 왜 굳이 국정교과서로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찬반을 논할 가치도 없는 문제를 왜 이렇게 소모적으로 다루는가? 필자 역시 다양성을 존중하기에 국정화를 하겠다는 사람을 반대하진 않는다. 국정화한 것도 여러 시각 중의 하나일 뿐이다. 다만 하나의 국사교과서만 존재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역사를 독점하겠다는, 아니 역사를 독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강한 부정을 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역사란 무엇인가? 굳이 필자가 힘주어 설명하지 않더라도, 여러 역사학자에 의해 혹은 지식인에 의해 의되어 있다. 그 중에서 에드워드 카(E.H. Carr)의 걸작이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오래된 고전 '역사란 무엇인가?'를 10여년만에 다시 꺼내 보았다. 굳이 정독을 하지 않더라도 예전에 밑줄쳐 놓은 기억에 남는 글귀를 애써 찾아보았다. 여기 저기 붉은 펜으로 그어진 어귀에 역사란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표현해 준다.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고,  '역사가는 자신의 해석에 맞추어 사실을 만들어 내고, 자신의 사실에 맞추어 해석을 만들어 내는 끊임없는 과정에 종사하고 있다.' 라고...

그렇다. 과거의 다양한 사실, 현상에 대한 역사는 현재의 다양한 가치관, 서로 다른 역사관을 가진 역사가에 의해 재해석되고, 재평가되는 것이다.

   

역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흘러간다. 자연스럽게 시대가 기억하고, 기억된 시대는 역사가 된다. 그 역사는 사람에 따라, 관점에 따라, 시대에 따라 각각 판단되고, 어느 순간이든 바로 그 역사가 스스로 증명한다. 누군가 역사를 판단하고, 의미부여를 제 아무리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이가 새로운 관점과 근거, 새롭게 판단한다면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 진다. 그 역사는 시대정신에 따라 재해석되고, 대중의 공감과 인정, 지지여부의 정도에 의해 의미를 부여받는다 .역사를 독점할 수 있다는 바보같은 생각, 과거의 과오를 숨기려는 부끄러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얕은 수작에서  비롯된 어리석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코미디 같은 정치를 더이상 보고 싶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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