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조와 이별하기
어제 우리 가족의 첫 반려조였던 멜로디와 리듬이를 입양 보냈다. 두 쌍의 앵무새들과 함께 지낸 지 어느덧 삼 년이 넘었기에 정든 앵무새 한 쌍과 헤어지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달 다른 한쌍중 수컷 앵무새인 보름이 가 문틈에 끼여 크게 다치는 사고가 있었고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보름이는 예전처럼 잘 걷거나 날지를 못한다. 물론 사고 직후 이주 정도 생사를 오갔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기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보름이는 많이 나아진 상태이긴하다. 이제는 다섯 발자국 이상 뒤뚱뒤뚱 걷기도 하고 간혹 낮게 날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다른 새들과 분리시켜 방에서 홀로 지내는 보름이는 거실에서 들려오는 앵무새들의 시끄러운 소리에 반응하며 그 스트레스로 자기 몸의 털을 뽑는 자해를 시작했고 나도 한 달이 넘게 아픈 아이에게 집중하느라 다른 아이들을 예전처럼 돌보기에는 여러모로 힘에 부쳤다.
앵무새 한 쌍을 입양 보내기로 결심한 지 얼마 안 되어 평소 자주 들여다보는 앵무새 네이버 카페에서 앵무새 한 쌍을 입양하고 싶어 한다는 게시글을 발견했다. 자신은 오 년 동안 네 마리의 앵무새를 키워 본 적이 있으며 믿고 보내주시면 누구보다 사랑으로 잘 키우겠다는 글을 보고 나는 마음이 동했다. 멜로디와 리듬이의 사진과 함께 입양을 계획하고 있다는 댓글을 달자 곧 답장이 왔고 우리는 다음 날 전화 통화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전화기를 통해 느껴진 차분하고 예의 바른 그분의 목소리에 나는 예정보다 빠르게 입양 날짜를 정했다. 어쩐지 이 분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멜로디와 리듬이를 입양 보내는 날, 큰 딸아이과 함께 앵무새들을 차에 태워 입양자 분과의 약속장소로 향했다. 차에서 잔뜩 긴장한 앵무새들만 쉴 새 없이 짹짹거렸고 딸아이와 나 사이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직접 만나보고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점이 보이면 그냥 취소하고 다시 데려와야지..’라는 나의 생각이 무색할 정도로 입양자 분은 실제로 뵈니 더 신뢰가 가는 분이었다. 포치 안에서 잔뜩 긴장한 체 호기심 어린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앵무새들을 본 그분의 얼굴에 번지던 따뜻한 미소를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당분간 먹일 모이와 간식 그리고 아이들이 쓰던 용품들을 건네는 내게 그분은 이렇게 예쁜 아이들을 믿고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셨고 나도 우리 애들이 좋은 가정으로 입양 가게 돼서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다.
앵무새들을 보내고 다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생각보다 마음이 덤덤했다. 우리는 "멜로디와 리듬이 좋은 가정으로 간 것 같아." "그렇지.. 그분 인상이 좋으셨지?" "응~우리보다 더 사랑해 주실 것 같은데?" 라며 애써 서로가 서로를 위로했다.
운전을 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갑자기 엄마가 보고싶었졌다. "우리 할머니 댁에 들렀다 갈까?" 딸아이도 할머니 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평소와 다르게 가라앉은 내 목소리와 갑작스러운 방문에 엄마는 조금 놀라셨던 것 같다. 무슨 일 있냐는 엄마의 질문에 내가 풀 죽은 목소리로 앵무새 한 쌍을 입양 보내고 오는 길이라 하니 평소 집에서 동물을 키우는 것을 싫어하셨던 엄마는 내게 '잘했다'는 말을 열 번쯤 하시며 앞으로 동물은 키우지 말라 신다. 그리고 남아있는 한 쌍도 보낼 수 있으면 보내라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말만 계속하셨다. 윽~ 괜히 왔나~~
엄마가 차려주신 밥과 잔소리를 잔뜩 먹고 집에 가던 길, 이상하게도 나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운전대를 잡고 라디오의 볼륨을 높이며 저녁은 뭐 먹을래? 하고 딸에게 묻는 내 목소리에 생기가 묻어있었다. 하지만 차에 타서는 내내 말이 없던 딸이 문득 내게 말했다.
"엄마, 이제 집에 가도 멜로디와 리듬이가 없겠네.. “
"...."
어떤 이별도 쉬운 건 없다. 보내기 싫고 떠나기 싫고 헤어지기 싫어도 결국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라고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는 물 흐르듯 흘려보내야 할 인연도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 딸아이도 알겠지. 앞으로 얼마나 더 원치 않는 이별을 해야만 하는 걸까? 언젠가는 엄마와도 이별을 할 테지..라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아려온다. 부디 그때도 나보다 어른인 누군가가 내 곁에 함께 있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