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시간에 대한 기억들

첫 번째 이야기

by 서쌤

'교사는 담임을 해야만 진정한 교사라고 할 수 있다'는 나만의 교육철학으로 나는 같은 경력의 다른 선생님들에 비하여 담임 경력이 길다. 부장교사(회사처럼 학교도 부서가 있고 부서를 이끄는 대표교사가 있다. ex) 학생부, 회사처럼 직급이 다른 것이 아니라 똑같은 교사이면서 보직을 맡는 거라 권리는 없고 의무만 많아 맡기를 꺼려한다.)를 하면서도 6년 정도 담임을 같이 맡았다. 물론 젋었을 때는 거뜬히 버텨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너무 힘에 부치고, 아이들도 나이가 많은 담임을 좋아하지 않아 최근에는 부장교사만 맡게 되었다.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 중에 어떤 아이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에 대한 질문을 부서 선생님들에게 받은 적이 있다. 망설 힘 없이 바로 떠오르는 아이들이 있었다.

젊었을 때 도농 복합지역의 시골학교에서 근무했던 나를 폭력교사로 만들어준 아주 깜찍한 녀석들이 있었고,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교직에 들어선 지 2년 차가 되는 해였다. 교감선생님이 나를 불러 3학년 1반을 맡아야 하겠다고 약간의 부탁조로 말씀하셨다. 보통은 담임을 맡기는데 교감선생님이 직접 부르시는 경우는 없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전교 33개 반중에서 유일한 남자 반이었고 이미 선생님들 사이에 소문이 난 아이들이었다. 원래 키가 큰 편이었고, 그 당시에는 운동도 열심히 하여 날렵하며 근육질의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열정과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때였다. 나는 과한 자신감에 선뜻 그렇겠다고 하였지만 그 당시에는 자신감을 넘은 자만감이 어떤 시련을 줄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개학 후부터 전교의 유일한 남자반이며 선생님들이 제일 골치 아파하는 아이들이 있는 반의 담임을 맡게 되었다.

35명의 아이들 중 우리 반을 주름잡고, 더 나아가서 3학년 전체까지 영향을 미치는 녀석들이 열명 정도 되었다. 자칭 '불사파'라고 클럽을 형성해 활동했고 중학교 졸업식 때 팬티만 입고 시내를 뛰어다녀서 지역 신문에 기사가 난 나름대로 유명인사들이었다.

아이들한테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내 나름대로의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었고, 전년도에 처음 담임을 맡은 녀석들을 큰 문제없이 잘 이끌었고 좋은 추억을 남겨 나름대로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이 녀석들과 잘 지내야겠다는 마음은 일주일도 못 가서 깨지고 말았다. 거의 매일 오후쯤 되면 학생부에서 항상 연락이 왔다. 담배를 피우다가 적발되었고, 후배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다가 적발되고, 수업 중에 불손한 태도를 보여 적발되고, 나중에는 나를 찾는 전화가 오는 것이 두려워질 정도였다. 그래도 나는 고집을 꺽지 않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그리고 방과 후에 아이들을 불러서 상담하고 이야기를 했다. 귀찮아서 잘 오지도 않고 상담할 때도 건들 거리며 잘 듣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라는 마음을 가지고 아이들이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아이들과 같이 하기 위해 점심시간에도 교실에 가는 아이들에게 친한 척하며 이야기도 하고, 창체 담임 시간에는 과자파티도 하면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고자 노력하였다.


그렇게 거의 담임을 맡은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나의 교직관이 바뀌는 사건이 일어났다. 평소에 친분이 있던 일본어 선생님이 우리 반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자신을 협박했다고 어이없어하셨다. 수업 분위기를 다 잡으려고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우리 반의 그 녀석들이 와서 계속 그렇게 하면 우리 반에서 수업하기 힘들 거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계속되는 자잘한 사건사고들을 참아왔고 대화를 통해 라포를 형성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나의 생각이 어리 섞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속된 말로 '뚜껑'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날 오후 종례시간에 교실의 뒤쪽에 주로 포진해 있던 그 녀석들을 응시하며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이제 우리 반은 대화를 통한 평화의 시대에서 힘에 의한 폭력의 시대로 접어든다"

학급의 평범한 아이들은 무슨 말인지 의아해했고, 뒤 쪽 자리를 점령한 그 녀석들은 내 말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었다.






주말 내내 고민을 하던 나는 당구장을 운영하고 있는 지인을 찾아가서 사정을 이야기했다. 흔쾌히 당구 장 벽 보관함에 들어있는 좋은 당구 큐대를 선뜻 나에게 주었다. 그렇게 좋은 것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했지만 취지에 공감한다고 가볍고 튼튼해서 잘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거의 반강제로 당구장에서 가장 좋은 큐대를 나의 손에 쥐어 주었다. 집에 가지고 와서 당구 큐대를 2단으로 분리하고 공을 맞추는 부위가 아닌 손으로 잡는 부위만 사용하기로 했다. 큐대 뒷부분에 구멍을 뚫고 잘 끊어지지 않는 굵은 노끈을 매어서 묶었다. 그리고 테니스 라켓에 사용되는 고무 러버를 구해서 큐대의 뒷부분에 잘 감아 주었다.

월요일 출근 시에 큐대 뒷부분만 들고 오는 나를 의아한 눈으로 보신 선생님들이 당구대회 나가냐고 물어보기도 하셨다. 경력이 있으시고 눈치가 빠르신 샘들은 '무리하지 말고 살살하라고' 미소를 지으며 알듯 모를듯한 말씀을 남기셨다.



역시 오후에 학생부에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수업을 오셨던 샘들 중에도 메시지를 보내 주시는 분들도 있으셨다. 교무수첩을 펴고 하나하나 내용을 꼼꼼히 적고 종례시간에 맞추어 한 손에는 교무수첩을 들고 다른 손에는 당구큐태를 들고 교실로 향했다.

아이들은 내가 뒷부분만 있는 당구 큐대를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샘 당구 몇 치세요? ", " 근데 큐대 반쪽으로 당구를 칠 수 있나?"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들렸지만 무시하고 나는 교탁 앞에 섰다. 교무수첩을 펼치고 오늘 있었던 아이들의 만행을 이야기하고 해당되는 녀석들을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교실은 순간 조용해지고 적막이 흘렀고, 그 녀석들은 다들 눈치만 보며 나오지 않았다.

화가 나서 순간 가지고 있던 큐대로 교탁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런데 정말 천둥 벼락 치는 소리가 나는 동시에 내리친 교탁의 윗부분이 움푹 꺼져 버렸다. 가볍고 튼튼한 재질로 된 큐대라고 하더니 정말 단단하게 만들었는지 큐대는 멀쩡했다.

내가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 너무 소리가 컸는지 옆반 담임선생님이 슬쩍 들여다 보고, 지나가는 아이들이 복도 창문으로 들여보다 보는 모습이 보였지만 무시했다.

"빨리 안 나와" "늦게 나오는 순서대로 더 맞는다"

녀석들이 나와서 쭈욱 한 줄로 섰다. " 내가 부르면 한 놈씩 와서 엎드린다."


그날 나는 교직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체벌을 가했다. 마음이 좋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체벌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꽤 오래전이고 그 당시에는 아직 체벌에 관한 명확한 지침이나 규정이 없었고, 도농복합도시의 면지역에 있는 학교라서 체벌을 권장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강하게 금기시하지도 않았다.


그다음 날부터 아이들에게 체벌에 대한 규칙을 정해서 공지했다. 체벌은 엎드려서 엉덩이를 맞는 것으로만 한정했고 흡연, 폭력, 음담패설 등 각각의 항목별로 체벌의 횟수를 정했다. 그리고 수업 중 선생님에 대한 불손한 행위는 가장 높은 수위의 체벌로 정했다.


이제 내가 교직생활에서 한 체벌의 거의 대부분이 실행되었던 폭력교사로서의 시간들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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