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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팀장의 고백 - 제가 해고당할 줄은 몰랐어요

by 주형민

나는 노동위원회 사건을 참 많이 했다. 부당 해고 등의 징계와 부당 인사발령 사건에서, 근로자의 대리인으로 활동했다. 사용자를 대리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사건을 수행하면서, 수많은 사내 정치, 거짓말, 배신, 인간의 나약함 등을 생생히 지켜보았다.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옛 생각이 떠올랐다. 왜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어떤 음악을 들었을 때, 과거의 기억이 주르륵 딸려 나오는 경험. 어떤 상황이었는지 세세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대강의 줄거리는 생각나고, 특정 장면과 특정인의 말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참 신기하다.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과 말. 팀장 A가 나한테 꾸벅 인사하며 사과한다.

노무사 님, 그때는 죄송했습니다.....제가 해고당할 줄은 몰랐네요.


팀장 A는, 내가 수행했던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에서, 사 측 대리인으로 출석하여 해고 근로자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던 사람이다. 단순히 불리한 진술을 한 게 문제가 아니라, 거짓말을 일삼고 인격적으로 모욕감을 주는 말을 쏟아내어, 해고 근로자는 눈물을 쏟고 배신감을 토로했다. 내 기억으로, 그 회사는 사내 정치와 파벌 싸움이 심해서, 해고와 징계가 수시로 벌어지고, 퇴사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이었다.


그 사건에서 근로자는 부당해고를 인정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로 1년쯤 뒤에 노동위원회 대기실에서 팀장 A와 우연히 마주쳤다. 팀장 A가 나를 먼저 발견하고 멋쩍게 웃으며 다가왔다. 해고를 당해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고, 신청인 근로자로서 심문회의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자신이 사 측 대리인으로서 거짓말을 많이 했고,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으며,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죄송하다는 말이었던 것 같다.


팀장과 같은 중간 관리자는, 회사 측의 입장을 대변하며 팀원들을 평가하고 관리한다. 어떤 팀장은 그 알량한 권력(?)을 남용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 팀원에게 갑질을 한다. 하지만 중간 관리자도, 회사로부터 월급을 받고 일하는 근로자일 뿐이다. 악덕 회사의 입장에서는, 팀장이나 팀원이나 한낱 부속품에 불과하다. 그러니, 회사가 부여한 권한을 무겁게 여기고,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 게 좋다. 중간 관리자가 대표자 마인드(?)로 근로자를 폄하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거나 간접적으로 들을 때, 나도 모르게 실소를 머금게 된다. 마치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양 착각하는 것이다.


인생사 새옹지마. 직장 내의 구조적인 폭력에 편승하여 가해자가 되지 말라. 부디, 타인이 나를 함부로 대하게 하지 말고, 타인을 함부로 대하지도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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