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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두라는데 해고는 아니래요

by 주형민

직원이 약 20명인 회사에서, 2년째 근무하는 근로자 A 씨는, 사장으로부터 이달 말까지만 근무하라는 말을 들었다.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엉겁결에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억울했다. 이건 해고 아닌가. 내가 해고 당할 만큼 일을 못했나. 자책감이 들었다.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봐, 알겠다고 대답한 자신이 한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A 씨는 나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A 씨는 자신이 '해고'당했다고 표현했다. 나는 '해고'인지 여부가 아직까지는 불분명하다고 말해줬다. 어리둥절한 기색을 보이는 A 씨에게 덧붙여 설명했다.


사장 입장에서는 "알겠다"는 대답을 동의한 것으로 받아들였을 겁니다. 즉, 사장은 사직을 '권고'했고, 근로자는 이에 동의하여 이른바 '권고사직'이 성립된 상황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해고가 성립하려면, 근로자가 동의하지 않는데도, 사 측에서 일방적으로 근로관계 종료를 통보했어야 합니다.


A 씨는 혼란스러워했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하냐고 물었다. 나는 되물었다. 어떻게 하고 싶냐고. 해고의 부당성을 다투고 해고예고수당을 청구하고 싶은지, 아니면 실업급여를 받고 근로관계를 종료하고 싶은지를 물었다. 권고사직이든 해고든 실업급여 수급자격은 인정된다고 말했다.


A 씨는 해고 당하는 게 억울하지만 회사를 계속 다니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당해고를 다투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 그래서 구체적인 대응 방법을 설명했다.


사장한테 계속 근무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사장이 거절한다면 해고 통지서 교부를 요청하세요.


며칠 후, A 씨는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해고 통지서 교부를 요청했더니, 사장은 해고가 아니라면서 잘 생각해 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 후에는 상담 요청이 없었고, A 씨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별다른 조짐 없이 갑자가 그만두라는 말을 들은 근로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수치스럽고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게 싫어서, 알겠다는 취지의 대답을 하고 자리를 떠나는 사례가 잦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사직 권고에 동의하는 뜻으로 "알겠다"고 대답한 게 아니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동의한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이렇게 애매한 상태에서 그만두게 되면, 회사는 자진 퇴사로 처리할 가능성이 크다. 해고를 다툴 수 없는 것은 물론, 실업급여도 못 받는다. 따라서 평소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초기 대응을 잘 해야 한다. 입사할 때부터 퇴사 준비를 하라는 말에는, 이러한 돌발 상황에 대한 준비도 포함된다. 해고를 다툴지, 권고사직으로 실업급여를 받고 퇴직할지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알겠다"고 대답해선 안 된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 뒤에, 심사숙고하여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른 의사를 회사 측에 전달해야 한다.


계속 근무하고 싶고 부당해고를 다투고 싶다면, 계속근로 의사를 밝히면서 해고 통지서 교부를 요구해야 하고, 권고사직으로 실업급여를 받고 퇴직하겠다면 회사에 이직확인서 발급신청서를 제출하여, 회사에서 이직 사유를 '권고사직'으로 기재했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이와 같이, 권고사직과 해고는 법적으로 명확히 구분되지만, 실제로는 애매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핵심은, 근로자의 동의 여부다. 결국, 근로자가 무엇을 원하는가에 따라서 대응 방식이 달라야 하고, 그 대응 방식에 따라 권고사직과 해고가 구분될 수 있다. 아무쪼록 분명하게 의사 표현을 함으로써, 애매한 상황에 빠져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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