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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퇴직금을 되찾다

by 주형민

결론부터 말하자면, 퇴직금 전액을 회수하진 못했다. 한때, 노무사로서 근로자의 사건을 많이 맡아서 수행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옛날 폴더를 찾아보았는데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고, 분노가 되살아났다. 악덕 사장의 느물거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고, 법원과 대한법률구조공단과 동 주민센터를 왔다 갔다 하며 고생했던 기억이 소환됐다.


혹시,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이, 괜히 주눅 들어서 퇴직금을 쉽게 포기할까 봐 걱정이 앞선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자식은, 내가 만난 악덕 사장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놈이다. 표현이 다소 거칠어졌는데, 이해를 구한다. 이 글을 통해, 여러분은 최악의 경우에 진행해야 할 절차를 미리 알아둔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면 좋겠다.


4~5년 전의 일이다. 비수도권 지역의 노동센터에서 상담을 하고 있었는데, 제조업체에서 일하시던 근로자 A 씨가 찾아왔다. 작년에 회사가 문을 닫아서 그만두게 되었는데, 퇴직금을 못 받고 있다고 했다. 사장한테 전화로 독촉하니, 200만 원을 지급했고 이제는 전화해도 안 받는다고 했다.


나는 입사일과 마지막 근무일, 월급액 등을 물었다. 약 10년간 근무했는데, 대강 계산해도 2,700만 원 정도가 산출되었다. 그런데도 사장 놈은 200만 원으로 퉁치려 한 것이다. 근로자 A 씨는 나한테 사건을 맡아달라고 했다. 자신은 다른 지역으로 가서 막노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사건 수임 약정을 맺고, 사건을 맡아서 진행하였다.


먼저, 노동청에 임금체불 진정서를 제출했다. 정확히 계산해 보니, 퇴직금은 27,554,983원이었다. 이 중에서 2,000,000원이 지급되었으니, 미지급 퇴직금은 25,554,983원이었다. 나는 근로자 A 씨 대신 노동청에 출석했는데, 사장은 나오지 않았다. 그 후, 사장은 노동청에 출석했고, 7,000,000원을 근로자 A 씨의 계좌에 입금했다. 이제, 남은 퇴직금은 18,554,983원이 되었다.


어느 날, 사장이 나한테 전화해서, 느물거리며 만나서 얘기하자고 말했다. 그래서 남은 퇴직금을 어떡할 거냐고 물었는데, 500만 원으로 합의하자는 식으로 퉁치려 했다. 그래서 단박에 거절했다. 이 사장 놈은, 근로자 A 씨에게도 전화해서, 협박과 회유를 일삼으며 택도 없는 금액으로 퉁치려 시도했다.


나는 노동청에서 체불임금확인서를 발급받아, 근로복지공단에 소액체당금(지금은 간이대지급금으로 명칭이 바뀌었다)을 청구했다. 소액체당금(현 간이대지급금) 지급액에서, 퇴직금의 상한액은 그때나 지금이나 700만 원이다. 3~4일 뒤에 700만 원이 근로자 A 씨의 계좌로 입금되었다. 이제 남은 퇴직금은 11,554,983이 되었다.


이제부터는 법원의 시간이다. 나는 체불임금확인서와 기타 서류를 지참하여 대한법률구조공단을 방문하였다. 민사 절차를 의뢰하기 위해서다. 근로자 A 씨는 월 평균임금이 400만 원 미만이었으므로, 지원 대상에 해당되었다. 공단을 통해, 판결문에 해당하는 '이행권고결정서'를 확보하였다. 이제는 강제집행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난관에 부딪혔다. 이 사장 놈은 자기 명의의 재산을 가족이나 지인 명의로 전부 돌려놨다. 집과 자동차는 배우자 명의로 되어 있고, 공장 시설은 다른 근로자의 명의로 넘겼다. 은행 등 금융권의 계좌를 찾아 채권 압류 및 추심 신청을 했지만, 잔액이 없었다. 그래서 법원에 재산명시신청을 하였고, 이 사장 놈이 사업이나 입찰 등의 활동을 할 수 없도록, 일종의 신용불량자로 법원에 등록시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였다. 근로자 A에게 진행 상황을 설명하고, 필요하면 변호사를 연결해 주겠다고 했는데, 그 후에는 소식이 끊겨서 진행 여부를 모르겠다.


판결문 등을 확보해서 강제집행을 할 수 있더라도, 개인사업자 또는 법인 명의의 재산이 하나도 없다면, 채무액을 회수하기가 사실상 매우 어렵다. 그러니, 악덕 사장들이 이렇게 활개 치며 다니는 것이다. 이 사장 놈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하는 근로자가 여러 명이라고 들었다.


결국, 사용자가 임금 체불을 하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법과 제도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체불 임금액의 2배를 손해 배상하도록 법을 개정한다면, 사용자는 임금을 체불하지 않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할 것이다. 또한, 임금 체불의 죄는 반의사불벌죄인데 이를 폐지하여 무조건 형사 처벌하도록 한다든가, 간이대지급금의 상한액을 대폭 상향 조정하거나, 체불 임금 전액을 국가가 근로자에게 선지급하고 사용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등의 획기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작년 임금체불액이 역대 최고를 찍었다는 언론 기사가 있을 정도로, 임금체불이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임금체불이라는 용어는 너무 고상하다. 내가 '도둑'이라고 표현 했는데, 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을 시키고 돈을 주지 않으니 도둑이 아니면 무엇인가. 임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으면, 사업을 접어야 한다. 자영업자들이 들으면 화를 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임금체불은 범죄다. 형사 처벌의 대상이니 범죄가 맞다. 범죄를 저지른 사용자를 도둑으로, 범죄자로 다루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현실의 법과 제도는 임금체불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다. 근로자가 임금을 제대로 받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대한민국을 노동 후진국이라 불러도 할 말이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생계를 위해 임금 체불을 감수하며 일하는 근로자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하지만 쉽게 포기하지 마시라. 신속하게 대응할수록 체불 임금을 회수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을 명심하자. 그리고 소송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말자. 요즘은 나 홀로 소송을 할 수 있는 사이트를 통해, 변호사 비용을 들이지 않고 직접 소송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여러분의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일에 있어서는, 좀 집요할 필요가 있다.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를 투입하는 일을 아까워하지 말고, 적극적인 태도로 임했으면 좋겠다. 주체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존감이 상승함을 느낄 수 있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며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하라는 조언을 나는 자주 한다.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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