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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을 도둑맞다

by 주형민

노동 상담을 10년 넘게 하고 있는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임금 체불에 관한 상담이 압도적으로 많다. 임금체불 중에서도 퇴직급여에 관한 상담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퇴직연금이 도입되면서, 퇴직금과 더불어 퇴직연금에 관한 상담도 늘고 있다. 근속 기간이 길수록 퇴직금의 액수도 당연히 커진다. 그런데 사용자가 퇴직금을 지급할 의사가 없거나 적게 지급하는 사례가 잦다. 이러한 경우에 근로자는 노동 상담을 요청하는 것이다.


퇴직을 했는데도 퇴직금을 못 받은 근로자는, 회사에 퇴직금을 요구하지만, 사장은 조금만 기다리라며 차일피일 미룬다. 시간은 참 빠르게 흐른다. 근로자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고, 먹고 사느라 바쁘다. 그러다가 어느새 3년이 지났다. 그동안 사장에게 간간이 독촉을 했지만,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만 들었고, 이제는 연락도 잘 안 된다. 그래서 무슨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다가 노무사인 나를 찾아와 노동 상담을 요청한 것이다.


내가 노무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위와 같은 상담을 하면서 속으로 투덜댔던 기억이 난다.

곧바로 노동청에 신고하지 않고 뭐 하다가 3년이나 지나서 이제야 퇴직금을 받겠다는 거야?

이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여기서 '3년'은 임금채권의 소멸시효다. 즉, 퇴직일부터 3년이 지나면 퇴직급여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리 오랫동안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는지. 하지만 비슷한 상담이 반복되면서, 점차 근로자들의 마음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근로자는 먹고 사느라 힘들다. 노동청에 신고해서 조사받으러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사장과 얼굴 붉히지 않고 좋게 해결하고 싶다. 이러한 상황과 마음이 얽혀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다가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거다.


반대로 생각하면, 사장은 근로자의 이러한 마음을 약점 삼아 시간 끌기 전략을 구사했다고 볼 수 있다. 3년이 지났으니 근로자는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 퇴직금을 도둑맞은 셈이다! 물론 공소 시효는 5년이므로, 노동청에 신고하여 사용자를 처벌받게 할 수는 있겠지만, 퇴직금을 받을 수 없는데 그러한 수고를 감수할 근로자는 거의 없다.


노동계에서는 임금채권의 소멸시효 3년이 너무 짧으므로, 적어도 5년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 법에 반영되지 못했다. 10년 넘게 노동 상담을 해보니, 3년이라는 시간이 짧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노동 상담을 하면서 안타까울 때가 참 많지만, 임금채권의 소멸시효(3년)가 지난 상태에서, 퇴직금 상담을 할 때 특히 안타깝다. 퇴직금뿐 아니라 월급이나 연차수당 등의 임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일까. 퇴직을 앞두고 또는 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상담을 요청하는 근로자에게 나는, 마냥 기다리지 말고 곧바로 노동청에 신고하여 권리를 행사하라고 조언한다. 근로자가 권리 행사를 망설이는 이유는 많다. 조금만 기다리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한 사례를 무척 많이 보았다.

사장의 '시간 끌기 전략'에 말려들지 말고, 단호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권리를 행사하기. 곧바로 노동청에 임금체불 신고하되, 조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퇴사했으나 퇴직급여를 받지 못한 근로자에게 내가 꼭 하고 싶은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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