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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연차휴가를 모두 소진하고 퇴사하래요

by 주형민

근로자가 퇴사를 통보하거나, 회사로부터 퇴사를 권고받거나, 해고를 통보받는 등의 상황으로 인하여, 퇴사일이 결정되면, 회사와 여러 모로 부딪히게 된다. 그러한 문제 중 하나가 남은 연차휴가에 관한 것이다.

근로자 A씨는 회사로부터 퇴사 요구를 받았고, 그 달 말까지 근무하고 퇴사하기로 하였다. 남은 연차휴가를 따져보니 10일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와중에, 인사 담당자가 전화하여 이렇게 말했다.


연차휴가가 10일 남았는데, 모두 소진하고 퇴사하세요. 연차수당을 지급할 수 없습니다.


일방적인 통보였다. 반발심이 들었다. 그런데 최근에 퇴사한 동료도 퇴사일까지 남은 연차휴가를 모두 사용한 걸 아는지라, '원래 그렇게 하는 건가' '연차수당을 달라고 하면 나만 유별난 사람이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A씨는 노무사인 나한테 상담을 요청하여 물어보았다. 나는 근로자가 5명 이상인 사업장인지를 물었다. A씨는 근로자가 12명 정도 근무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나서 입사일과 퇴직 예정일을 물었다. A씨는 2023년 4월 3일에 입사하여, 2024년 12월 말까지 근무하고 퇴사하기로 했다고 대답했다. 약 1년 8개월 근무하고 퇴직하는 셈이다.


나는, 연차휴가 발생일수(누적)는 총 26일(11일+15일)인데, 16일을 사용했으니 10일의 연차휴가가 남아 있으며, 퇴사 예정일까지 사용하고 남은 연차휴가에 대한 수당을 청구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그런데 A씨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정말 연차수당을 받을 수 있어요? 회사에서는 연차수당을 줄 수 없다는데요?

나는, 남은 연차휴가를 모두(또는 일부) 사용해도 되고, 하나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어쨌든, 퇴사 시점에 남은 연차휴가일수에 상응하는 수당을, 퇴사일부터 14일 이내에 정산하여 지급받을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만약, 회사에서 연차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면 노동청에 임금체불로 신고하여 받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A씨는 남은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않으면 연차수당을 받을 수 있는지를 반복해서 물었다.


이러한 상담을 자주 하는 편이다. 회사에서는 연차수당을 지급하기보다는, 근로자가 남은 연차휴가를 소진하는 편을 선호한다. 그러면 근로자 쪽은 어떨까? 연차휴가를 소진하고 퇴사하는 편을 선호하는 근로자도 있고, 그렇지 않은 근로자도 있다. 당연히 근로자에게 선택권이 있다.


문제는 회사가 근로자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데 있다. 무조건 연차휴가를 소진하고 퇴사하라거나, 반대로 연차수당을 줄 테니, 빨리 퇴사하라고 종용하는 사례가 잦다. 이는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근로자가 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법 조항을 위반한 것이다.


하지만 근로자는 아무래도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 회사와 마찰을 일으키기 싫은 심리가 작용한다. 회사는 이러한 심리를 악용하여, 퇴사를 앞둔 근로자에게 뻔뻔한 태도로 이상한 요구를 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만만해 보이는(?) 근로자에게 특히 더하다. 그래서 더더욱 근로자는 자신의 법적 권리에 관해서 평소에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나는 늘 이렇게 강조한다.


입사할 때부터 퇴사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 회사에 뼈를 묻을 게 아니라면요.


만약, 여러분이 회사와 갈등을 빚기 싫어서, 회사의 부당한 요구를 알면서도 수용하겠다면, 그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반면, 회사와 마찰이 생기더라도,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겠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선택이다.근로자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다고해서, 반드시 회사와 마찰이 생긴다고 볼 순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크다. 대한민국은 노동후진국이기 때문이다. 슬픈 현실이고 개선해야 할 문제지만, 이러한 현실에서는 결국 여러분의 인식과 태도가 중요하다. 나는 항상 여러분이 권리와 자존감을 높은 우선순위에 두고 행동하기를 촉구하는 편이다. 여러분이 조금 용기를 내어 '똑똑하고 야무지게 퇴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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