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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거리 출근자인데 실업급여를 못 받아요?

by 주형민

직장인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 중에 출퇴근 시간이 있다. 출퇴근 시간이 길수록 에너지가 소진되어 쉽게 지치기 마련이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직장으로 출퇴근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좋은 일이다. 물론, 임금이나 근로시간, 직장 분위기 등의 요소도 중요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취업 자체가 어려운 현실에서, 집에서 가까운 곳에 직장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근로자가 많은데, 왕복 출퇴근 시간이 2시간 반을 넘는 경우가 잦다. 최근에 상담한 사례도 그랬다. 인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데 왕복 4시간 가까이 걸린다고 했다. 그렇게 1년을 넘게 회사를 다녔는데, 회사와 갈등이 잦아지면서 퇴사를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고용센터에 실업급여를 문의했더니, 사업장이 이전하거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이사하는 등의 사유가 없으면, 실업급여 수급자격을 인정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고개를 갸웃했다. 사업장이 이전하면서 왕복 출퇴근 시간이 3시간 이상이 된 경우에는 실업급여 수급자격이 인정된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즉, 왕복 출퇴근 시간이 3시간 미만이었다가, 사업장 이전 등의 사유로 3시간 이상이 된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애초에 왕복 출퇴근 시간이 3시간 이상이었는데, 사업장 이전 등의 사유 없이, 그냥 너무 힘들어서 퇴사하면, 실업급여를 못 받는단 말인가?


그래서 관계 법령을 살펴보았다. 고용보험법 시행규칙 [별표 2] 근로자의 수급자격이 제한되지 아니하는 정당한 이직 사유에서 6번에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 통근이 곤란하게 된 사유가 필요했다. 그 사유는, "사업장의 이전, 지역을 달리하는 사업장으로의 전근, 배우자나 부양하여야 할 친족과의 동거를 위한 거소 이전, 그 밖에 피할 수 없는 사유로 통근이 곤란한 경우"이다. 사유가 없으면 실업급여를 못 받는단 말인가... 그래서 <실업급여 업무편람>을 살펴보았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있다. "그간 원거리 출퇴근을 해왔으나, 사업장 이전, 지역을 달리하는 사업장으로의 전근, 배우자나 부양하여야 할 친족과의 동거를 위한 거소 이전 그 밖에 불가피한 사정 등으로 더 이상은 원거리 출퇴근이 어려워져 이직하는 경우도 포함됨"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원거리 출퇴근이 어려워져 이직하는 사유나 사정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왕복 출퇴근 시간이 원래 3시간이었는데, 특별한 사유 없이 그냥 힘들어서 그만두면 실업급여를 못 받는 것인가? 왜 힘들어졌는지에 관한 사유가 꼭 필요한 것인가?


노동부에 서면 질의하여 명확한 답변을 받아야겠다. 만약, 사업장 이전 등의 사유가 있어야 한다면, 법령이나 지침을 개정하여 요건을 좀 더 완화해야 하지 않을까? 왕복 3시간 이상 출퇴근하다가 너무 힘들어져서 퇴직하더라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말이다. 한편, 왕복 출퇴근 시간을 3시간에서 좀 더 낮추거나, 유연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개정하면 좋겠다. 왕복 2시간만 출퇴근해도 피곤해 죽겠는데, 기준이 너무 엄격한 것 아닌가? 이래저래 실업급여를 받기가 어려운 현실인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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