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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서 퇴사하면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을까?

by 주형민

대다수의 회사는 상당한 기간 동안 아픈 근로자를 잘 배려하지 않는다. 대놓고 그만두라고 하거나, 퇴사를 종용한다(물론, 모든 회사가 그렇지는 않다). 아픈 것도 힘들고 서러운데, 이런 취급을 받으면, 근로자로서는 퇴사를 고민하게 된다.


무엇보다, 아픈 정도가 중하여 회사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기가 곤란한 상태라면, 근로자 스스로가 치료에 전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퇴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이때, 근로자는 자신이 실업급여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몸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퇴사하는데 실업급여를 못 받는다면 억울한 일이다. 누구나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질병 사유로 실업급여를 받기가 참 쉽지 않다. 요건이 무척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 상담을 할 때, 나도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앞으로는 요건이 대폭 완화되거나, 질병으로 퇴사할 때 지급하는 별도의 실업급여(예를 들어, 질병 급여나 상병 급여 등의 명칭으로 지급)를 신설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도대체 뭐가 그리 까다로운지 하나씩 살펴보자.

아래에 첨부한 문서에서 9번을 보면, "체력의 부족, 심신장애, 질병, 부상, 시력/청력/촉각의 감퇴 등으로 피보험자가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곤란하고, 기업의 사정상 업무 종류의 전환이나 휴직이 허용되지 않아 이직한 것이 의사의 소견서, 사업주 의견 등에 근거하여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경우" 실업급여 수급자격이 인정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벌써 만만치 않아 보인다. 다소 두루뭉술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실업급여 업무편람>을 보면, 구체적인 요건이 모습을 드러낸다.

[별표 2] 근로자의 수급자격이 제한되지 아니하는 정당한 이직 사유(제101조제2항 관련)(고용보험법 시행규칙)_1.jpg

작년 말에 상담받으러 오신 분이, 고용센터에서 받았다는 안내문을 사진으로 찍어 두었는데, 질병 사유로 실업급여를 받으려 할 때, 필요한 요건과 서류가 잘 정리되어 있다. 고용센터에서도 관련 문의가 너무 많아서, 안내문을 제작하여 배포하는 듯하다.



KakaoTalk_20250209_042655055.jpg


먼저, 소견서가 아닌 진단서가 필요하고, 치료 기간이 13주(3개월) 이상으로 기재되어 있어야 하며, 최초 진단일은 근무 기간 중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아무리 아파도 퇴직한 후에야 병원에 갔으면 안 되고, 치료 기간이 13주(3개월) 미만이어도 안 된다. 또한 통원 치료를 통해 회사 근무와 치료가 병행 가능한다는 의사 소견이 있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사업주한테 확인서를 받아야 한다. 근로자가 회사에 질병 휴직을 신청을 했으나, 회사의 사정으로 질병 휴직을 줄 수 없었다는 확인서를 받아야 한다. 맙소사! 회사 측에서 과연 협조적으로 확인서를 작성해 줄까?


고용센터를 방문하면 아래와 같은 확인서 서식을 주면서 사업주한테 받아서 제출하라고 한다. 고용센터에서 실제로 배포하는 서식은, 아래에 첨부한 것과는 다소 다르겠지만, 내용은 거의 유사하다.

2021년 실업급여 업무편람(실업급여)_210322 111.jpg

이쯤 되면, 참 까다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사업주가 비협조적으로 확인서를 작성한 경우, 고용센터에서 사실 관계를 조사하여 판단하겠지만, 그 과정이 순조롭지 않을 수 있다. <실업급여 업무편람>에서는 아래와 같은 조사 지침을 명시하고 있으니, 고용센터에서 소극적으로 조사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독촉할 필요가 있다.


2021년 실업급여 업무편람(실업급여)_210322 109 (발췌본).jpg

이렇게 힘든 장애물을 뚫어야, 질병 사유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현실이 서글프다.

만약, 몸이 아파서 퇴사와 실업급여를 고민하는 근로자 중에서, 13주 이상의 치료 기간이 필요한 진단서를 확보할 수 있는 분은, 퇴사 전에 반드시 사업주에게 직무 전환이나 병가(휴직)를 요청하고, 그 기록을 보관하자.

적어도, 퇴사 전에 질병 휴직 신청을 하지 않아서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이 글을 쓰면서 나도 마음이 좋지 않고, 실업 급여의 보장 범위가 확대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어쨌든, 이 글이 아파서 퇴사하는 근로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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