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부터 임종까지 7일, 가족들도 나도 힘들었던 밤.
일을 하다 보면 내 환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고
자꾸 여기저기서 말을 들어
아는 듯 모르는듯한 상태가 되는 환자가 있다.
이 환자도 그런 환자 중 한 명이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저 병실은 왜 저렇게 바쁠까'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환자였다.
환자 M은
가볍게 다닐 때는 보행기로,
먼 거리는 휠체어를 타며 살아갔던
평범한 70대 할머니셨다.
그러던 어느 날 시력 등
갑자기 문제가 생겨 응급실로 오게 되었고,
CT 등 검사를 통해 심한 뇌출혈이 발견되었다.
응급실에서도 hours to days라고 할 정도로
예후가 안 좋은 환자였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을
가족들은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수많은 미팅을 통해 환자의 상황과 상태를
가족들에게 납득시켜야 했고,
중환자실 의사까지 미팅에 참여해
더 이상의 치료는 환자를 힘들게만 할 뿐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겨우 환자를 임종케어로 바꾸기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IV 수액, NG, PEG feeding을 하고 싶다고
의사와 매일 가족 미팅을 하며
추가적인 검사를 통해
더 적극적인 의료적 치료를 요구했다.
의사의 설득에도 고소를 하겠다고
할 정도로 참 어려운 가족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가족들이
상황을 납득을 하고 나서 진정이 되었을 때,
나는 그 환자를 내 환자로 받았다.
가족들과 환자에게 내 이름을 말하며,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환자가 편안하게 있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오늘 밤의 목표이다.
2시간에 한 번씩 reposition을 할 거고
이외에 도움이 필요하면 벨을 눌러달라 말하며
조용한 밤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나이트시프트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환자의 호흡이 불안정해졌고,
무호흡 증상도 나타나
가족들은 다시 완전 패닉상태가 됐다.
난 호흡을 도와주는 필요시 약과
모르핀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가족들은 이미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상태,
" 제발 좀 서둘러! 왜 이렇게 느린 거야"
" (약의 이름을 말하는 나를 보며)
그만 말하고 빨리 약이나 줘!"
보호자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진정되지 않는 모습에
나 또한 너무 당황했고,
내가 벨을 눌러서 도움을 청하자
수간호사가 와서 환자 보호자를 상대해야 했다.
" 이거 봐! 환자가 숨도 어렵게 쉬고
호흡이 불안정하잖아 뭐라도 좀 해봐"
" 병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
쟤는 아는 것도 하는 것도 없고,
다른 간호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
" 보호자님, 계속 말씀드렸다시피,
환자는 지금 삶의 끝에 와있어요.
안타깝지만, 중간중간 발생하는 무호흡증상도
숨쉬기 어려운 증상도
설명드린 것처럼 과정 속에서
예견되는 증상입니다."
" 의사를 불러!
의사를 불러서 뭐라도 하라해!"
" 의사를 부른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크게 없을 거예요. "
" 의사를 부르라니깐?!"
" 의사를 부를 수는 있지만
저희가 의사에게 무슨 말을 하길 원하시나요?
무작정 의사를 부를 수는 없어요. "
" 환자가 숨을 잘 못 쉬잖아,
그런데 의사를 부르기 어렵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환자의 상태와 goal of care를 설명해도
가족은 이성적으로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태였고,
우리는 그들에게 시간을 좀 더 주기로 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차팅 하는
와중에 다시 환자 가족들에게 호출이 왔다.
이번엔 내가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 환자가 숨을 더 어렵게 쉬고 있어.
앰부백(수동식 인공호흡기)을 가져와!"
" 보호자님,
환자는 현재 4L의 산소를 공급받고 있고,
환자가 숨쉬기 어려워하는 건
산소가 부족해서가 아니에요.
환자는 삶의 끝에 더 가까워지고 있고,
우리는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치료만 하고 있어요"
" 앰부백으로 강한 산소를 주입하게 된다면,
환자의 호흡기관이 다칠 수 있어요.
계속 말씀드린 것처럼
환자는 임종 돌봄만 하고 있어요.
저희는 Invasive care 은 할 수 없습니다. "
" 그냥 좀 가져오면 안 돼? 네가 의사야?
네가 의사냐고. 환자가 숨을 못 쉬잖아!"
" 보호자님 저희에게 소리를 지르고,
이렇게 말씀하시면 저희는 대화를 할 수 없어요.
환자분은 임종에 가까워지고 있고,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
수간호사도 와서 그 보호자에게 설명을 해야 했고,
나는 병실 밖에서 다른 가족들에게도 같은 내용을 또다시 설명해야 했다.
계속 의사를 불러달라는 요청에
나는 의사에게 콜을 했고
전화로 상황을 설명했지만,
임종케어 중인 환자에게
의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고,
당직 중인 의사는
환자의 히스토리를 잘 알지 못하고,
오늘 밤 하루만 신경과 환자들을 커버하는 의사가
환자 치료에 관여를 하는 건 어려움이 있을 거라며
더 적극적인 치료를 원한다면
그동안 가족들과 계속 소통을 해온
의사가 관여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말이 돌아왔다.
나는 그나마 대화가 가능했던 환자의 손자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한 시간마다 환자의 호흡을 도와주는 약을
투여하겠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앰부백을 요청하는 가족들에게도
더 강하게 산소를 투여하는 건
환자가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환자에게 고통만 줄 거고
그건 환자의 삶의 질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다시 한번 설명을 했다.
환자 가족들은
임종에 가까워지는 환자의 모습에 절망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의 모습에 화가 났고,
뭐라도 해보라고 계속 화를 냈지만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혼자서 생활이 가능했던 가족이
임종 직전의 환자로
단 며칠 새에 바뀌었을 때
그 가족들이 느낄 참담함은
나는 감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나에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며 대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환자의 첫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나에게도 쉽지 않았다.
처음 감정적인 가족들의 모습을 대하고
병실 밖으로 나와 주던 약들을 정리할 때
복도에서 날 기다리면서
너는 잘못한 게 없고 잘하고 있다는
수간호사의 말을 들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병원 구석에서 눈물을 훔치며
내 감정을 홀로 다스려야 했고,
나는 5명의 환자가 더 있기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른 환자들을 대해야 했다.
머릿속으론 그 가족들의 모습이 이해가 간다.
하지만 3개월 차 초짜 간호사인 나는,
환자의 첫 죽음을 마주하는 나는
그 분노와 감정을 받아내는 게 너무 힘이 들었다.
이게 왜 내 잘못이지.
나는 왜 이런 태도를 다 감당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12시간 동안 쉬는 시간을 반납하고 일을 하면서
잠 못 자고 멍 때리며 일을 하면서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일을 하며 그 가족이 무서워 손이 떨렸고,
나도 감정적으로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환자는 그 후 한 시간쯤 지나 임종했고,
두어 시간쯤 뒤 영안실로 환자가 내려갔다.
난 내 안에 응어리진 감정을 데이 간호사들에게,
clerk에게,
속털이를 하는 걸로 풀었지만
많은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무례했던 환자가족들에 대한 원망도 있었지만,
그보단 그 상황에서 당황하고 우왕좌왕했던
나의 모습에 대한 정의할 수 없는 감정과
수간호사 없었다면 대처하지 못했을 상황들이
자꾸 생각나 나를 괴롭혔다.
다른 매니저도 와서 내가 그 상황을 잘 대처했다고
말해줬지만 잘 모르겠다.
그냥 마음이 힘든 시프트였다.
제목을 뭘로 해야 할지 고민을 했는데,
그래도 이 시프트가 끝난 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불이 꺼진 복도에서 눈물을 참으며
약을 정리하는 날을 바라보며 기다려준
수간호사가 나에게 해준 말.
그래서 그 말을 제목으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