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병

by 지구별여행자

오랜만에 순댓국이 먹고 싶다는 아내 말에 자주 가던 순대국밥집을 찾았다. 좁은 골목 사이에 있는 데다 허름한 집이지만 국물이 진하고 맛이 있어 자주 찾는 집이다. 사실 나는 그런 허름한 분위기를 더 좋아한다. 결혼 전에는 먹지도 못하던 순댓국을 이제는 나보다 더 잘 먹는 걸 보니 부부는 닮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국밥집 앞에 당도하니 퇴근 무렵이라 그런지 자리가 만석이다. 밖에 마련된 대기석에서 기다릴까 하다가 아직은 밤공기가 차 안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젊은 부부가 서성대고 있으니 아저씨 한 분이 괜찮으니 자기 앞에 앉으라고 하신다. 예전 같으면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정중하게 거절했겠지만 몸이 좋지 않은 아내를 생각해 아저씨 앞에 자리를 잡았다. 무심코 테이블을 보니 국물만 남은 순대국밥보다 옆에 놓인 소주 한 병이 눈에 띈다. 이미 거의 다 마시고 마지막 잔을 남겨놓고 있었다. 아저씨는 우리가 짐을 풀기도 전에 입에 소주를 털어 넣으시고는 말없이 일어나셨다. 바쁜 주인장에게 눈빛으로 인사하고는 만 원짜리 한 장을 계산대에 올려두고 나가셨다.

우리 때문에 서둘러 나가신 것 같아 괜히 미안해하면서 다시 자리를 고쳐 앉는데 그제야 주변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의 절반은 혼자 순대국밥 한 그릇을 안주삼아 반주 중인 중년의 아저씨들이었다. 어떤 사람은 막걸리로, 어떤 사람은 소주로 하루의 고단함을 허기짐과 함께 넘기고 있었다. 그들에게 순대국밥은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는 밥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이 한 그릇의 국밥은 따뜻한 위로고 또 치열하게 오늘을 살아낸 자신에게 주는 보상 같은 것이리라. 집에 들어서면 또 반주하셨냐는 마누라의 걱정 섞인 핀잔을 듣겠지만 마음만큼은 든든하고 따뜻할 것이다.

그럴 용기도 의무도 없지만 가서 오늘은 그들에게 술이라도 한 잔 따라드리고 어깨라도 주물러주고 싶다. 아내가 국물이 참 맛있다며 머리고기 두어 숟가락을 나에게 덜어준다. 국밥이 오늘따라 참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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