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어설픔의 온기

by 지구별여행자

평소에도 우리 반에서 제일 일찍 와서 조용히 책을 읽는 재이가 오늘은 더 일찍 왔다. 8시쯤 아침으로 삼각김밥을 먹고 있던 나는 화들짝 놀라서 남은 아침을 입에 넣고 자리를 정리했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으려던 재이는 뭔가 이상한지 특유의 제스처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책상 줄을 이리저리 맞추기 시작한다. 가림판이 삐뚤어진 책상은 바로 세워주기도 하고 바닥 선에 맞추어 책상 줄을 맞추기도 했다. 어수선하게 느껴졌던 교실이 어느새 단정한 느낌이 제법 들었다. 양치를 하고 와서 보니 재이는 어느새 책에 푹 빠져 있었다. 내 자리로 돌아오는 길에 살펴보니 아직 줄이 안 맞는 곳이 눈에 띄었지만 그 마저도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졌다. 어설픔이 가지는 온기가 가슴 시큰하게 전해졌다.



오랜만에 수학시간에 게임을 했다. 평소에도 게임을 자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요즘엔 도통 준비할 시간도 여유도 체력도 없어서 진도만 주야장천 나갔던 터라 단원평가를 앞두고 이번에는 제대로 골든벨 퀴즈를 준비했다. 단순한 문제에도 환호성을 지르고 감탄하는 아이들 덕분에 즐거운 수업시간이 끝나고 부랴부랴 알림장을 화면에 띄웠다. 수요일 5교시는 더욱 숨 가쁘다. 마치고 바로 학원에 가야 하는 학생들이 많아 점심을 얼른 차려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사용한 육각 보드판은 정리도 못하고 알림장 검사를 하는데 여학생들이 교탁에 모여서 뭔가 분주한 모습이 보인다. 오늘 사용하고 남은 보드판과 보드마카 펜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본인들도 바쁘면서 삼삼오오 모여 고사리 손으로 정리하는 모습이 퍽이나 감동적이었다. 점심을 다 먹고 아이들이 간 후에 교실을 정리하는데 여학생들이 정리해 둔 흔적이 보인다. 여기저기 미처 지우지 못한 흔적이 가득한 보드판과 상자에 구겨 넣듯이 들어가 있는 보드마카펜이 눈에 들어왔지만 오히려 그 어설픈 친절함에 기분이 뭉클하고 가슴이 따뜻해졌다.



대청소 시간이다. 코로나 상황이기도 하고 가림판 덕분에 교실이 좁아져 청소 당번이 활동하기에 제약도 많아 한 달에 한두 시간은 대청소로 교실을 쓸고 닦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창체시간에 짬을 냈다. 미술이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 20분 남짓 시간이었지만 수업을 안 해서 그런가 아이들은 청소마저도 신나서 흥얼거리면서 하고 있다. 특히 요즘 스케이트를 배우는 오진성 주위로 남학생들 사이에 '물티슈 스케이팅' 바람이 불었다. 물티슈 두 장을 밟고 스케이트를 타듯이 교실을 닦으면서 다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한 두 녀석이 하더니 어느샌가 교실이 스케이트장이 되었다. 그래..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생각으로 지켜봤는데 나중에 보니 물티슈가 거의 검게 변할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 뒤처리는 어설퍼서 교실 구석 여기저기에서 다 말라버린 물티슈가 보였지만 해맑게 물티슈 스케이트를 타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어설픔이 가지는 온기가 있다. 정확하지 않아서 완벽하지 않아서 치열하지 않아서 느껴지는 온기가 있다. 아이들은 어설프고 실수한다. 그래서 온기가 있다. 그 온기 덕에 오늘도 교실이 따뜻하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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