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그럴 수도 있지'의 힘

by 지구별여행자

요즘 우리 반에서 자주 들리는 말이 있다. "그럴 수도 있지~." 내가 학기 초에 아이들이 실수하면 괜찮다는 표현으로 자주 쓴 말인데 아이들은 재밌는지 유행처럼 쓴다. 급식을 받다가 반찬을 떨어뜨려도 그럴 수도 있지~. 피구를 하다가 잘못 던져서 상대편에게 공이 넘어가도 그럴 수도 있지~. 친구가 실수로 내 가방을 떨어뜨려도 그럴 수도 있지~. 가끔은 화를 낼 상황인 것 같은데도 주변에서 친구들이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는 바람에 화가 쏙 들어가 머쓱한 표정을 짓는 경우도 더러 있다. 또 어떤 녀석은 숙제를 안 해와놓고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능글맞게 에이~ 그럴 수도 있죠 선생님~ 하면서 내 말문을 막히게 해 상황을 모면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귀여움 반 어이없음 반으로 웃어넘기곤 한다.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그럴 수는 없는 일이 몇 이나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니까 누가 봐도 문제가 될 만한 상황을 제외하고 학교에서 친구사이나 선생님과 제자 사이에 그럴 수는 없다고 할 만한 상황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 말이다. 식판이 엎어져 반찬이 떨어진 것? 피구공이 상대방에게 넘어가게 잘못 던진 것? 친구의 가방을 실수로 떨어뜨린 것? 전날 노느라 정신이 팔려서 숙제를 해오지 않은 것?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면 참 별일 아니다. 떨어진 반찬은 치우고 다시 받으면 된다. 피구에서 진다고 큰일이 나지도 않는다. 때로는 숙제고 뭐고 안 하고 싶은 날도 있는 법이다.

그럴 수도 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누구나 잘못을 한다. 때로는 거짓말의 경험을 통해서만 거짓말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느낄 수 있고 실수나 잘못을 통해서 더 깊은 깨달음을 얻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나부터가 스스로 '그러면 안 된다'의 틀에 너무 자신을 가두곤 한다. 하면 안 되는 것이 많아질수록 생각과 마음의 평수는 줄어든다. 마음의 방이 줄어들면 내 생각만으로도 이미 가득 차버려 다른 사람을 생각하거나 품어줄 수 있는 여유가 없어진다. 용서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의 방 한 칸만 내어주면 된다는 말이 있다. 이해나 배려도 마찬가지 아닐까? 화내거나 짜증내기 전에 숨 한번 크게 쉬고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는 것. 그것 하나 만으로도 정말 많은 것이 달라짐을 경험할 수 있다. 내일은 또 어떤 그럴 수도 있지~가 등장할까? 수학 단원평가 점수를 받아 들고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애써 웃을 아이들이 벌써부터 눈에 그려진다. 과연 부모님도 그럴 수도 있지~ 해주실까?라고 놀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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