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 2
지이익지이익 스케일링 받는 소리에 두 손엔 더욱더 힘이 들어간다. 치과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아무래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두 손에서는 땀이 나고 가끔씩 이가 찌릿하다. 치아는 보기와는 다르게 많이 예민하다. 단단해서 통증이 잘 안 느껴질 것 같지만 오히려 더 모든 감각이 느껴지니 말이다. 옆에 누군가가 묻는다. 치과는 정기적으로 오는 이유가 뭐냐고. 한꺼번에 아픈 게 너무 싫어서 매번 작은 고통으로 때우려고 한다고 대답한다. 꼭 나의 인생 같다. 작은 실패들로 아파하면서 다시 일어서고 근근이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적어도 지난번 실패 했을 때보다는 조금 더 강해져 있겠지. 나란 사람. 그렇게 믿고 산다.
12년 전 호주에 오게 되었다. 방황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이 딱 하나 있었는데 바로 여행이었다. 차를 끌고 이 큰 나라를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고 싶었다. 울루루도 가보고 정상까지 올라가 보고 싶었다. 돈은 물론 넉넉하지 않았다. 돈벌이가 없었기 때문에 궁리 끝에 가장 저렴한 수동 캠퍼밴을 빌려서 45일을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증명되고 말았다. 거대한 나라를 차로 여행한다는 것은 기름값은 물론이고, 밤마다 묵을 캐러밴 파크, 먹을 것 등등. 정말 들어갈 돈이 기대 이상으로 많았다. 그렇게 대책 없는 호주 여행은 시작되었고 그것은 45일 동안 지속 되었다.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돈도 많이 들어가지만, 호주라는 나라는 달려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라였다. 너무 거대하게 큰 나라를 얕잡아 보고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했었다. 도중에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있어서 차를 반납할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위약금이 어마어마했고, 차를 반납하러 다시 돌아가는 것도 무모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식사는 빵 한 조각과 양파, 계란이었다. 멸균 우유와 시리얼로 대충 끼니를 때우며 길 위를 헤매고 다녔다. 호주는 큰 도시를 벗어나면 초원 아니면 사막이다. 사람 구경하기도 힘들고, 밤에 운전하면 캥거루가 자꾸 차로 달려들어서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한 순간들이 생각난다.
여행하며 될 대로 되란 생각을 하며 카드를 쓸 수 있는 한도 금액까지 끌어다가 쓰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사실 너무 걱정이 되어서 잠을 못 이룬 날들도 많았다. 이 많은 돈을 돌아가서 어떻게 감당하지 걱정하면서 한편으로는 차로 이동하며 내 눈앞에 펼쳐지는 웅장한 풍경들을 바라볼 때마다 걱정은 여행이 끝나면 하자고 나를 안심시키기도 했다. 거지 행색으로 여행을 하면서도 마음은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새로운 곳에서 만나는 좋은 사람들 이것저것 정보도 교환하고 때로는 음식도 나누어 먹고 (나는 나눌 음식이 없어서 거의 얻어먹었지만 말이다) 이국땅에 뚝 떨어져서 길 위에서 헤매고 있어도 세상은 참 나를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남
시커멓게 그을리고 잘 못 먹으며 고생은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렇게라도 여행을 했다는 건 정말 잘한 일인 거 같다. 물론 여행을 끝내고 남은 빚을 아주 고생해서 갚아야 했지만 돈을 벌어서 여행을 하려고 했었으면 아마 그런 자동차 여행은 시도하지 않았을 듯하다.
그 여행 이후에 이 나라에서 몇 년 더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게 벌써 12년이나 되었다. 그동안 영주권도 받았고, 호주 사람들과 부딪기며 아직도 잘 살아가고 있다. 45일의 여행 덕분이 아니었을까? 십 년이 넘은 시간 동안 즐거운 시간을 만들며 이곳에서 살 수 있었다는 것이.
모든 것은 지나고 나야 명확하게 보이고 때로는 대책 없는 무댓보 정신이 새로운 경험과 역사를 쓸 수 있게 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십 년 전보다는 궁핍하지는 않다. 무모하지도 않다. 나이도 많다.
하지만, 그 고생스러운 여행이 너무나 그립다.
나는 다시 가난한 여행자로 길 위에 서서 세상을 경험하고 앞으로의 10년 후를 그려보려 한다.
마음속에 열정의 불길이 다시 쏟아 오르기를, 조금 더 말랑말랑한 마음으로 세상을 마주하기를 바라면서.
버리고 다 버리고
새로운 것들로 차곡차곡 쌓이게 되기를
악취 나는 이기적인 마음들
미워하는 것들
하기 싫은 것
나태해지는 나
자꾸만 편하게 살고 싶은 것
이 모든 것들을 던져 버리고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