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로 떠나기 전 날. 연인과 마지막 데이트로 궤도의 다시 만난 과학자 강연을 들으러 왔다. 광화문으로 향하는 길에 미세먼지 농도가 낮은지 서울의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거리에는 트리가 설치되었고, 건물 전광판에는 크리스마스 테마의 영상이 재생되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강연 시작 시간은 오후 7시 30분. 우리는 7시쯤, 머리와 옷이 살짝 젖은 상태로 자리를 잡았다. 세상이 예뻐 보여서 그런지 별로 춥지 않았다.
과학을 좋아하면 사는 게 더 재밌고 황홀해질 거라는 비슷한 말을 궤도의 책에서 봤던 거 같다. 얼마나 더 흥미로운 사실들을 전해줄지 기대에 가득 찬 채로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초등학생부터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궤도의 영향력이 전 연령층에 미친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나는 책을 반만 읽고 갔는데, 책에 나오지 않은 또 다른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몇십 년 동안 비웃음만 당하던 연구를 끝내 포기하지 않아 코로나가 터졌을 때 백신으로 수많은 이들을 구한 과학자의 이야기, 우스꽝스러운 발상으로 이그노벨상과 노벨상을 동시에 탄 과학자의 이야기.
혁신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전에는 없던 아예 새로운 것만이 혁신이 아니라, 있었지만 혁신으로 취급되는 때가 오기도 하며, 재미를 추구하며 했던 괴짜연구가 세상을 구하기도 한다는 것이 딱딱히 굳어졌던 고정관념을 살짝 물컹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쓸데없는 짓들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을까?
위대한 정신은 언제나 평범한 자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힌다.
나의 쓸데없는 짓도 빛을 발하는 날이 올까? 하긴 어떤 이들의 쓸데없는 짓은 사후에 빛을 발하기도 했다. 궤도는 본인의 쓸데없는 짓들이 쌓이다 보면 나중에 본인을 먹여 살릴 무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했다.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가슴이 찡 해지는 감동적인 대목이었다.
강연과 질의응답이 끝난 뒤, 다시 만난 과학자 책에 사인받을 수 있는 시간이 왔다. 나는 부끄러운 나머지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사인만 받고 왔다.
그래서 이렇게 몰래 전한다.
좋은 강의 감사했어요... 과학자는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좋은 질문을 찾는 자들이라 하셨는데요. 저도 답 없는 문제의 답을 좇지 않고 좋은 질문을 찾는 사람이 되도록 방향을 잡아보겠습니다. 이 빈약한 다짐이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궤도님의 확신에 찬 걸음걸이를 멀리서 지켜보며 견고히 다져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