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평 08 <뷰티 인사이드>(2015) : 동일성과 유동성
* 글이 두 편에 해당할 분량이라, 영화 이야기만 원하시면, 1.(연구수업)과 2.(교과서)는 패스하고, 3.과 4.만 읽기를 권장합니다.
1. 서론이 곧 결론, 연구수업(신변잡기 이야기라고 여기면, 패스!)
검색하니 2011년도 SKT 광고였다. 전지현과 이정재 두 미남미녀가 나와, 웃긴 춤을 추며 ‘얼굴 보고 하는 말 아니니 오해 말라’며 ‘잘 생겼다 잘 생겼다’를 연발하는 CM송이 있었다. 지금 봐도 멋지다. 결국 띄어쓰기 차이인데, ‘잘생기다’로 붙여쓰면 ‘못생기다’의 반의어로 외모가 좋다는 뜻이고, ‘잘 생기다’로 띄어쓰면 새로운 제품이 출고되었는데 적절하게 잘 나왔다는 뜻이다. 후자를 사람에게 적용하면, 실제 외모가 출중하지는 않아도 ‘그만하면 괜찮다’는 뉘앙스로, 혹은 ‘못생기다’의 의미를 숨기고 반어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서둘러 결론을 말한다. 나는 잘 생겼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 때 나는 잘생기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40대를 넘기면 사람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상식에 기대서 하는 말이다. 오해하지 마시길. 중년 이후 외모보다는 내면이, 다른 말로 해보면 분위기 혹은 인격, 아니면 자존감이 더 중요하다는 뜻도 될 것이다. 정말 그럴까? ‘외모보다 내면’이라는 이 명제에 내가 과연 동의할 수 있을까. 나이와 성별을 떠나 인종을 넘어, 나는 외모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영화는 철저히 내 직장 업무와의 관련성 때문에 보게 되었다.
지난 글에서 양명학을 운운하더니 어느새 나는 실학자가 되었다. 철저히 실용적인 글쓰기를 하겠다는 뜻이다. 이번 학기 국어교사 로테이션에 따라 내가 ‘연구수업’을 하게 되었다. 내 직장은 민주사학이라 자부한다. 선생님들 중 신참에게만 연구수업이나 업무를 몰빵 하지 않고, 교과주임이나 특성화 프로그램 같은 것도 순번대로 돌아가며, 나름 전통을 잘 이어가고 있다고 본다. 나도 어느새 교사 집단에서 중간을 차지하는 나이와 경력이 되었다. 그럼에도 올해처럼 연구수업을 맡아, 신입교사의 마인드로 교장, 교감, 동료교사, 학생들 앞에서 ‘쇼’를 선보이게 될 것이다. 솔직히 학부모가 몇 분 오셔서 봐주시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다.
농담이 아니다. 교사의 수업은 오픈이 되면 될수록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허락만 된다면 모든 수업을 영상으로 촬영하여 남기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다. 즉, 모든 수업이 연구수업이 되면 좋겠다는 뜻이다. 한때 나도 한 학기 나의 모든 수업을 촬영하고, 그중 한 편씩 남겨 동료교사들과 공유하며 피드백받은 적이 있다. 그때 학생들은 자신들이 공개되는 것을 꺼려하니 내 강의 모습만 찍어 아쉬울 따름이었다. 공교육 교사의 수업은 사교육에 있는 일타 강사의 수업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강의 자체의 퀄리티와 편집의 결과물에서는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본력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 교실의 ‘교수 실재감’, 즉 현장감만큼은 공교육이 사교육을 넘어선다. 학생도 학부모도 학교교육에 기대하는 것 딱 하나, 바로 교사와의 관계에 바탕을 둔 상호작용인 것이다. 아무튼, 이번도 그러한 연구수업을 해내리라!
2. ‘나는 왜 나일까’라는 철학 텍스트(교과서 이야기니 지루하면, 패스!)
연구수업의 콘셉트는 ‘텍스트와 미디어 사이의 리터러시’다. 말을 뭐 있는 것처럼 해서 그럴 뿐, ‘글과 매체 사이의 문식성’으로 순화할 수도 있고, 요즘 국어교육이 개정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강조하고 있는 ‘디지털 리터러시’에 대한 적용이다. 전공을 한 사람이지만 솔직히 교육의 장 안에 들어온 ‘미디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냥 모른다고 말하는 게 정직한 고백이다. 수능 선택과목 ‘언어와매체’를 가르치고 있지만, 늘 수험생인 고3 아이들에게 나는 매체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 그러니 ‘상식’ 수준에서 함께 문제를 들여다보자며 제안한다.
독서 교과서에 <나는 왜 나일까>라는 강원대 철학과 최훈 교수님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단행본 책이 2010년에 처음 나오고 2016년에 개정되었는데, 그 사이 영화 <뷰티 인사이드>가 2015년에 개봉했으니, 이 교수님이 수업을 위해 최신 영화를 열심히 보신다는 방증이다. 이 교과서는 2015개정으로 2019년에 발간되어 올해를 마지막으로 7년간의 수명을 다하며 2022개정 교과서에게 자리를 내준다. 새로운 독서과목 교과서는 내년 2026년에 나올 것이다. 이 연도를 굳이 언급하는 까닭은 현재 검인정 교과서의 개발이 어느 정도의 텀을 두고 이루어지는지를 알려주기 위함이다. 길게 잡으면 개발하는 데 3년, 사용되는 데 7년이 최대치라고 보인다. 물론, 아직도 교과서는 종이책이 원칙이고, ‘디지털 교과서’가 단순한 PDF 파일만이 아니도록 만드는 데, 집필하는 대학 교수들이나 출판사가 사활을 걸어야 할 것이다. 그게 안 되면 지난번 이주호 장관의 교육부 해프닝이 또 발생할 테니 말이다.
연구수업 전(前) 차시 교과서 본문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영어로는 ‘아이덴티티(identity)’라는 개념어를 번역함에 있어 우리말은 ‘정체성(正體性)’이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변하지 않는 모양의 성질’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앞에 ‘자기(self)’나 ‘자아(ego)’니 ‘개인(individual)’이라는 단어를 붙여 이 정체성이 ‘인간’만의 고유한 성질임을 강조한다. 이름하여 ‘자기 정체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리고 이 개념을 학문적으로 다룰 때 문제가 되는 요소를 ‘질적/수적’으로 따지는 측면에서 ‘동일성(同一性)’이라는 말을 철학에서는 선호하는 것 같다. 이 에세이에서는 ‘개인 동일성’이라는 용어로 사용한다. 인간이 다른 인간과 비교하여 자기 자신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하나의 개체로서의 인간, 즉 ‘개인’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를 ‘질적(qualitative)’으로 ‘같다(同)’는 데서 찾고, ‘수적(numerical)’으로는 ‘하나(一)’에서 찾는다는 뜻이다.
이 말은, 인간이 다른 생명체, 즉 유기체와 견줄 때 무기물, 그중 인간이 만들어낸 제품과 변별되는 가장 큰 차이점으로, ‘질적’으로 ‘비슷한’ 다른 개체가 혹 존재할 수 있지만, 완벽히 질적으로 ‘같은’ 존재는 결코 있을 수 없다는 명제에서 비롯한다. 보편적으로 인간은 일반적 성질을 공유하지만, 개별의 인간, 즉 ‘개인’은 그 보편성 안에서 자신만의 특수성을 반드시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세계 안에서 ‘같으면서 둘’인 존재는 가능할 수 없다는 논리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인간은 복제할 수 없다는 게 오랜 관념이었던 듯 싶다. 조금 더 확장하면 생명은 복제할 수 없다는 명제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동물 복제는 이루어졌다. 배아줄기세포 혹은 체세포 복제 방식으로 세기말 ‘복제양 돌리’와 세기초 ‘황우석 사태’를 겪었던 밀레니얼 세대의 기억은 확실하다. 그리고 인간도 양이나 소처럼 복제 가능한데, 법적이고 윤리적 문제 때문에 안 했다고 알고 있다. 어느 누가 체세포를 가지고 배양, 즉 출산 문제를 건드리며 실험을 한다는데 마냥 동의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요즘 2020년대 ‘인간(생명) 복제’ 주제로 검색을 하면, 이 과학적 방법론이 바뀐 걸 확인할 수 있다. 초점이 ‘키우는’ 문제가 아니라 ‘옮기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장기이식의 여러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결국 마지막 영역인 ‘뇌’를 옮기는, 즉 ‘뇌 이식’ 수술에 있어서 도전을 한다는 것이 그 골자이다. 실제로 동물의 경우 쥐, 개, 원숭이 등에서 성공했다고 하지 않는가. 인간도 태아로부터 키우는 차원이 아닌, 성인에서 성인으로 옮기는 차원은 동의가 조금 더 수월할 것 같다.
실제 유튜브에서 미국의 한 스타트 기업이 불치병을 앓고 있는 러시아 부자 노인의 의뢰를 받고 AI 로봇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젊은 뇌사자의 몸에 자신의 뇌를 봉합하는 수술을 하기로 예약했다고 보도되었다. 2024년 기사이고 8년 후라고 했으니 2032년이 첫 시도가 될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 그 의뢰인이 살아 있어야 할 테고 온갖 변수가 생기겠지만, 나는 꼭 기억하고 그때 기사를 챙겨볼 작정이다. 이 시도 자체가 여러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이 그동안 극복하지 못하고 차별의 요소로 남겨두어야만 했던 생물학적 요소, 즉 인종, 성별, 연령(노화), 이 문제들에 대해서 이 ‘뇌 이식을 통한 인간 복제’ 기술은 과연 어떠한 해답을 내놓을지 말이다.
이러한 과학기술 이전에도 인간은 여러 사고실험을 해 왔다. 우선,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사람이 있다. 내적으로 유전자 정보가 같은 ‘일란성 쌍둥이’나, 외적으로 닮은 꼴을 하고 있는 ‘도플갱어’의 경우가 있다. 또한 첩보영화에서 종종 나오는 ‘페이스 오프’가 <미션 임파서블> 같은 작품에서 먹혔다는 게 신기하다. 그리고 ‘변신’이나 ‘변장’, 거기다가 ‘성형수술’까지도 ‘비슷한 인간’을 만들어내는 데는 여러 가지 경우가 가능할 것이다. 그것과 비교할 때 인간복제의 과학기술이 과연 ‘같다’고 말할 수 있는 차이가 있는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여기까지 장황하게 언급한 것이 개인동일성 문제에 있어서 첫 번째 이론, ‘신체-동일성’이다. 여태까지 말한 것은 특별한 신체에 대한 언급이고, 보통의 신체에 있어서도 고민해야 할 문제가, 바로 ‘시간’과 ‘공간’의 영역이다.
사람은 어릴 때와 컸을 때의 외모가 제법 다르다. 즉 유전자는 동일하더라도 그 신체가 체세포 분열을 거듭하여 성장하고 성숙하며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로는 ‘늙음’의 문제 앞에 서게 된다. 놀라운 생물학적 사실인데, 인간의 피부는 4주 만에 싹 바뀐단다. 그리고 인간의 뼈는 7년 만에 싹 바뀐단다. 이 지점에서 그 유명한 ‘테세우스의 배’ 딜레마가 등장한다. 이것에 대한 언급은 나중에 영화와 함께 다루겠다. 인간의 몸은 시계의 부품처럼 그 세부 요소를 교체하며 몇 퍼센트까지 옛것이고 몇 퍼센트부터 새것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인간은 ‘늙고’, ‘자기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 즉 ‘신체’는 과학적으로 영원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과학기술이 있거나 없거나, 인간의 몸은 영원하지 않은 셈이다.
그러다 보니 두 번째 이론, ‘영혼-동일성’이 등장한 것이다. 영원하지 않은 신체의 반대급부로 영원할 것 같은 ‘영혼’ 개념은 철학적 논의의 단골손님이 된다. 이 개념 자체를 이 글에서 언급할 필요까지는 없을 듯하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이론의 결합으로 인한 상상력이 인류 보편의 서사에서 큰 모티브가 되어 왔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죽음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보는 ‘환생’ 모티브, 다른 두 공간을 연결하려는 ‘빙의’ 모티브, 시공간을 모두 초월한다는 취지의 ‘데자뷔’ 모티브까지, 서로의 몸(영혼)이 뒤바뀌는 ‘영혼-체인지’ 류의 모티브는 여러 형태로 드러난다. 최근 우리에게 가장 큰 감동을 준 작품으로는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이 아닐까 싶다. 영혼은 과학이 증명할 수 없는 개념이고, 신체도 과학이 살펴보니 한계가 분명한 개념이라는 것이, 현대 기술문명이 인간 개체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3. ‘나는 매일 변한다’는 이미지의 세계(연구수업과 영화의 연결고리!)
이제 현대인이 과학의 틀 안에서 신봉하는 학문인, 심리학이 말하는 세 번째 ‘심리-동일성’ 이론이다. 말이 심리학이지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뇌’라는 외부 신체가 지니고 있다고 여기는 ‘심리’라는 내부 세계에 대한 언급이다. 전문적인 용어로 ‘심리(psychology)’를 써서 그럴 뿐, 과연 인간에게 ‘마음(mind)’이라는 것이 있는가, 있다면 그 내용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따라온다. 그 세부 요소로는 행동, 성격, 습관, 태도, 학습, 기억 등이 있다. 여태까지 심리학이 추구한 연구의 영역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행동주의, 인지주의, 구성주의, 정신분석 등, 전공은 안 해도 현대인들이 한 번씩은 들어본 심리학의 종류들이다.
쉽게 말해 인간은 그 사람이라고 특정할 수 있는 개별성이 그 외모나, 보이지 않는 영혼이 아니라,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고 여기는, 정신세계, 즉 심리적 특징에 근거한다는 뜻이다. 그 과학적 근거란 철저하게 ‘뇌(brain)’라는 생물학적 실체이다. 뇌 연구를 거듭한 결과, 최근 의학적 측면에서 접근한 이슈로는 ‘치매’ 문제가 있다. 인간이 그 사람임을 증명하는 최후의 보루, 즉 종합적인 근거는 ‘기억’인데, 이 기억의 영역에서 장애가 발생하면 인간의 존엄 자체가 흔들린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결국, 여태까지 철학이든 과학이든 모든 논의가, 인간에게 ‘변하지 않는’ 혹은 ‘영원한’ 성질, 즉 정체성이나 동일성의 전제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 <뷰티 인사이드>는 인간에게 ‘변하지 않는’ 성질 못지않게 ‘변하는’ 성질이 함께 탑재되었다는 상상에서 시작한다. 즉, 매일 아침, 잠을 자고 일어나면, 이유는 모르겠지만 신체가 변한다는 설정에서 비롯된 판타지다. 딱 한번만 변하니, 그 변화를 뒤집고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애쓰는 기존 영화와는 사뭇 다르다. 어차피 매일 몸이 변하는 것이 개인의 성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전제가 이 영화의 매력이다. 이 말은 사실 우리 인생에 대한 비유와도 같다. 우리는 자기 삶이 시시각각 변하는 이유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하물며 얼굴과 몸이 변한다고 상상할 때, 이유를 찾기란 더 어려울 것이다. 말 그대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일 뿐이다.
이 지점에서 이 영화는 매우 철학적인 통찰을 던져준다. 기존 ‘동일성’이니 ‘정체성’의 개념 틀 안에서 바라봐서는 도저히 생각이 확장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 에세이의 저자인 철학 교수님은 결론에 가서 논리가 좀 꼬이는 듯하다. 내 평가가 아니라 교과서에서 이 글을 읽은 고2 학생들의 피드백이 그러했다는 뜻이다. 기존 철학의 틀로는 인간 복제의 가능성이든 이 영화의 상상이든 도저히 사유를 진행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철학적으로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사고의 도구가 되는, 개념을 만들어주는 언어의 세계 안에서 변화를 줄 필요를 깨달았다. 그래서 말 하나를 바꾸어 보았다. 인간 존재도 ‘유동성’을 띌 수 있다면!
국어 공부는 말놀이다. ‘같고 하나인 성질(동일성)’이나 ‘변하지 않는 것의 성질(정체성)’만 생각하다가, ‘유동성(流動性, liquiduty)’이라는 말, 즉 ‘액체 같이 흘러 움직이는 성질’이라는 뜻을 지닌 단어를 찾았다. 철학에서는 있을 수 없는 개념이다. 왜냐하면 철학에서는 인간의 신체를 ‘고체’처럼, 인간 영혼을 ‘기체’처럼 사유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액체’는 좀 안 어울리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을까. 이 대목에서 영화 <터미네이터> 2탄부터 등장하여 당시 초딩이던 우리 세대를 흥분에 빠지게 만든 ‘액체인간’, 즉 T-1000이 떠올랐다. 이병헌 형님도 5탄에서 맡았던 이 역할, 엄밀히 말하면 액체금속형 사이보그라고 한다. 어찌 보면 인간 신체의 70~80%가 물, 즉 체액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왜 인체를 고체라고만 고정해서 사고했을까 의문스럽다. 인간은 원래부터 흐르는 물처럼 모양을 바꿀 수 있는 존재일 수 있다. 이 사고가 가능한 것도 과학기술과 자본력이 동원되는, 근대 이후, 즉 현대사회의 힘 때문이다. 그래서 논문 중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주창한 ‘액체-근대’ 개념으로 이 작품을 비평한 글이 있다. ‘모든 견고한 것이 녹아버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징후에 대한 역작이라고 보인다.
요즘 이 유동성 개념이 가장 많이 쓰이는 분야는 경제학인데, 화폐와 상품이 교환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산을 손실 없이 현금화하는 정도’라는 의미로 적용되고 있다. 인간 존재로 적용하자면, 늙어가며 피부가 쪼글쪼글해지고 흰머리가 나더라도, 성 정체성의 고민 끝에 성 전환 수술을 받고 호르몬 주사를 꾸준히 투여하더라도, 성형수술을 해서 일정 신체 부위를 더 아름답고 멋지게 만들어내더라도, 혹은 영화 <겟 아웃>이 보여준 ‘인종 이식’을 하더라도, 더 나아가 외계인과의 교배를 가정한 <에어리언>이나 <스피시즈> 같은 영화도 떠오른다. 그렇게 나의 신체는 끊임없이 변화하더라도 ‘나’라는 인간의 존재 가치는 흘러흘러 변화하지 않는다, 이 논리가 가능할 것이다. 나는 매일매일 변한다, 그러나 그 수많은 ‘나’들은 결국 모두 ‘나’이다. 봉준호 감독의 최신작 <미키 17>도 문뜩 떠오른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이미지’의 세계에서는 가능하지 않을까. 이 영화가 미남미녀의 ‘비주얼’로만 승부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 비주얼 너머에서 보이지 않게 말하고 싶은, 그래서 관객들이 ‘보이는 말’로 들었으면 하는 메시지란 이게 아닐까. ‘나’라는 존재가 선험적으로 고정되기보다는, 변화하는 수많은 ‘나의 이미지’들이 축적되는 과정에서 ‘나’라는 존재도 경험적으로 인식된다. 이 선언은 미학적으로 매우 복잡한 논리의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내 공부가 턱없이 부족하다. 더 깊게 다룰 순 없지만, 이 영화가 어디선가 전통적 서사의 관점에서는 뭔가 빈틈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왠지 연속성 없는 이미지의 나열이라고 폄하될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주인공 우진이가 잠을 깰 때 모습이 변한다는 장면을 도저히 다룰 수 없었으며, 그걸 지수가 우연히 보았다는 식으로 처리한 대사에서, 이 영화의 한계를 엿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지점에서 이 영화가 근대적인 ‘이야기’에 기반을 두지 않고, 철저히 파편화된 ‘이미지’를 모아서 만든, 탈-근대적 영상미학이라는 느낌을 제공한다.
그 느낌은 감독에 대한 조사를 하며 적중했다. 감독은 CF 및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이라고 한다. 할리우드에서 잭 스나이더 감독이 영화 <300>과 <맨 오브 스틸>과 온갖 DC계열 작품에서 받고 있는 찬사와 비난과 마찬가지의 평가를 이 감독님도 받겠다 싶다. ‘백종열’이라는 감독 이름을 잘 기억해야겠다. 내가 영화의 작품성을 평가할 만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21세기 한국영화의 ‘미학적’인 역사에서는 분명 의미있는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싶다. 단순히 ‘영상미’라고만 볼 수 없는 ‘철학’적인 요소가 크게 개입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4. 그 모든 ‘나’들이 모여 ‘다 같은 나’라는 진실(영화 이야기는 이 부분만!)
이 영화의 명대사 세 대목을 언급하며 마무리를 하련다.
첫째, “나무였다가 배였다가 의자였다가”라는 대사이다. 그동안 여러 얼굴의 ‘우진’들이 이 가구점에 들렀을 때마다 지수(한효주 분)는 한결같이 친절했다. 그래서 그날의 우진(이범수 분)이 정체를 숨긴 채, ‘작업할 때 기마자세 비슷하게 일한다’면서 ‘의자보다는 높고 스툴보다는 낮은’ 가구를 찾고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지수는 대뜸 ‘뭐 하시는 분인지 맞춰 볼까요’라고 ‘아까 문 손잡이 고르시는 걸 봤다’며 ‘가구 만드시는 분’임을 맞춰 버린다. 그만큼 고객 개인의 ‘맞춤’에 신경을 쓰는, 친절하고 세심한 직원임을 오랜 기간 관찰해 왔는데, 그 태도가 한 번도 변함이 없다는 사실은, 이 사람이 ‘진짜’임을 확신하게 만든다. 그런데 거기다가 더 좋은 가구가 있다며 ‘알렉스’라는 브랜드를 소개하는 장면에서, 우진은 지수에게 완전히 반해 버린다.
직원이 자기 회사 물건 말고 다른 상품 소개하는데 ‘이래도 되는 거예요?’라고 묻자, ‘이러면 안 되죠.’라며 웃으며 대답한다. 집에 돌아온 우진은 그동안 수도 없이 받았던 지수의 명함을 보며, 이 사람은 ‘진짜 좋은 사람’이다고 확신하고, 언젠가 프러포즈하리라 결심한다. 그때 지수의 매력적인 말이 ‘나무였다가 배였다가 의자였다가’이다. 선박의 폐목재로 만든 의자임을 강조하는 맥락인데, ‘나무’라는 물체가 그 형태에 있어서 유동성을 지녔음을 뜻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감독이나 작가가 목공예에 조예가 깊거나, ‘테세우스의 배’를 참고로 했다고 본다. 자신이 외모가 계속 변하는 사람이라도 왠지 이 사람이면 받아줄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외모의 변화 정도가 아니라, 남녀, 인종, 연령 같은 모든 조건을 넘어설 수 있는 ‘다양성에 근거한 사랑’ 혹은 ‘다양하므로 아름다움’에 대해 이 영화는 이야기하고자 한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다양성에 대해서 이 영화는 “트랜스포머”라고 표현하고 있다. 원래 이 단어는 ‘transformer’로 ‘변압기’를 뜻하는 단어였는데, 마이클 베이의 영화(2007)가 나온 후로는, 사람들은 인류문명이 개발한 모든 기계 속에 내장된(실제는 외계 생명체가 만든) 기술력이 그 ‘외형’을 끊임없이 변모시킨다, 즉 과학기술은 계속하여 '발전'한다는 설정으로 이 단어를 이해하게 되었다. 프러포즈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우진은 잘생긴 남자(박서준 분)이던 날을 선택하여 데이트를 신청하게 되고, 그 외모를 유지하기 위해 이틀 밤을 꼬박 지새운다. 첫 데이트 저녁 알렉스의 작업실로 안내하여 ‘나무젓가락’을 머리 묶는 ‘비녀’로 빌려주고, 한 테이블에 앉아 ‘비싼 초밥’(<헤어질 결심>과 같은)을 함께 먹는다. 그때 분위기 좋게 만들고자 음악을 틀고, 핸드폰 ‘스피커’의 소리를 크게 울리게 '빈 플라스틱 병’에 담자, ‘테이블 안에서 소리가 나는 듯한 느낌’에 대해 지수가 운을 띄운다. 그러자 우진이 ‘트랜스포머 같은’이라 답한다. 훗날 지수에게 알렉스 가구가 선물로 보낸 테이블에 그 ‘트랜스포머 핸드폰 거치대’가 장착되어 있다. 이 영화가 말하는 트랜스포머 같다는 말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잘생긴 우진은 셋째 날 새벽을 지하철에서 맞이하는데, 깜빡 조는 바람에 완전 ‘잘못된 트랜스포머’가 된다. 못생긴 우진으로 ‘대머리에 수염 있고 배 나온 아저씨’(김상호 분)가 등장한 것이다. 앞서 잘생긴 우진이 입었던 푸른색 롱코트가 이 아저씨에게도 제법 잘 어울린다는 평이 무색하게끔, 너무 극심한 외모 차이를 보여준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실소를 금치 못한다. 그리고 알렉스의 가구 선물이 스튜디오로 도착했을 때 지수의 상사가 “잘 보면, 이쁜 애들이 일도 잘 해!”라는 감탄사를 뱉는다. 솔직히 김상호 아저씨는 ‘못생김’을 정말 잘 ‘연기’하는 배우이다. 그 직업을 떠나서 살펴보면, 즉 일반인의 관점에서 이 아저씨는 ‘잘 생겼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서두에서 내가 잘 생겼다고 ‘도발’적인 발언을 한 이유도 이 맥락이다. 나도 그렇게 나름 매력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비교당하기 시작하면 나도 트랜스포머가 될 수밖에 없다. 김상호는 박서준으로 변신하고, 나무젓가락은 비녀를 대체하고, 일회용 페트병은 빠방한 우드 스피커로 진화한다. '변화'를 거듭해야만 할 '우열'의 대상이 존재하는 것 또한 세상의 진실이다. 그 우열의 기준을 단순히 매력이라고만 말하기도 복잡하다. 때로는 힘, 때로는 아름다움, 때로는 기능, 그 ‘우열성’의 기준에 있어서는 ‘다양성’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세상에는 ‘아름다움’이라는 가치가 존재하는 것도 같다.
셋째, 이 영화의 결론이 내 연구수업의 결론인데, 끝맺기 쉽지는 않다. 이 영화는 결국 사랑 이야기다. 지수는 결국 정신과 질환을 앓게 된다. 현실의 의학 개념에서는 ‘안면인식장애’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본인이 자기 정체성으로 인해 분열되었다면 ‘정신분열’ 혹은 ‘조현병’, 그것도 아니면 ‘양극성 장애’라고 볼 수 있지만, 이 경우는 그러한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다가 걸린 병 아닌가. 그래서 약을 먹게 된 지수 곁을 우진은 떠나게 된다. 자기 탓으로 여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먼저 알아보겠다며, 말없이 손을 잡으면, 모르는 사람이 있어요’로 힘들어하는 지수를 떠나보내야만 한다. 그러나 끝내 지수는 그렇게 떠난 우진을 찾아내서는 ‘아파도 네 곁에 있어야 살 것 같다’고 말한다. 아파도 약을 먹어도 네 곁에 있는 것이 나에게 낫다는 결론, 이러한 고백이 진정 사랑인가. 현실에서는 쉽지가 않지만, 또 실제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사랑에는 늘 그러한 중독과 집착의 부분적 측면이 있지 않는가.
마지막 장면에 가서 지수는 우진에게, 수많은 외적 변화를 겪은 우진의 이미지들을 “다 같은 너니까”라고 정의하며, 그 사실을 근거로 삼아서 “나는 네 안에 있는 이우진을 사랑한다”라고 프러포즈를 한다. 제목대로 ‘뷰티+인사이드’가 성립되는 피날레다. 영화의 외피는 수많은 ‘아웃사이드(외양)’의 ‘멋진’ 이미지들을 축적했지만, 그 이미지가 쌓여 이룩한 ‘아름다운’ 주인공 우진의 ‘인사이드(내면)’로 마무리가 맺어진 셈이다. 이 판타지가 논리적으로 납득이 가고 안 가고는 집어 치우고, 영화는 엔딩곡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그동안 등장했던 수많은 ‘나’들의 이미지가 재등장하여 ‘키스 씬’을 연출하며 감성적 엔딩으로 끝난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결론이다. ‘나’들은 정말 매일매일 변하면서도 매일매일 쌓여서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내니까. '일신우일신'이다.
* 참고자료
- 고형진 외, <고등학교 독서 교과서>, 두산동아, 2019.
- 최훈, <나는 왜 나일까>, <<라플라스의 악마, 철학을 묻다>>, 뿌리와이파리, 2016.
- 최은진, 「<뷰티 인사이드>에 나타난 ‘액체근대’의 징후」, <<영상문화콘텐츠연구>>, 2018.
- https://www.youtube.com/watch?v=B2zpuolk2BA (미국 스타트업 뇌이식 로봇 공개)
- https://www.youtube.com/watch?v=MCK-hGJJFSs (‘영혼 체인지’는 이제 체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