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늑대와 흰 사슴(1)

- 영화 같은 여행 이야기 09 : 몽골 1편

by 보이는 말들

10월 긴 연휴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여름방학 때 결정했고 두 달을 준비해 떠났다. 그 바람에 영화 보거나 글 쓰지를 못했다. 대신 ‘영화 같은 여행’을 다녀왔으니, 글로 남기는 게 마땅할 테다. 이번 글을 계기로 사진을 공개해야 하니, 어느 정도는 신변을 노출하려 한다. 그리고 그동안 지인들에게는 브런치를 공유하지 않았는데, 이제 강의도 하고 있고 여행에 대한 보고도 필요하니, 시작한다. 날적이 방식보다는 주제별로 쓰겠다. 쓰다 보니 길어져서 두 편으로 나누겠다. 1편은 준비, 공부, 역사, 공간. 2편은 장소, 사람, 선교, 복귀.


1. 준비


자녀를 데려가는 가족여행, 특히 '자유여행'은 준비가 전부라 생각한다. 여태 아이들 데리고 세 번 비행기를 탔다. 해외 패키지 일정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따라서 자유여행이 수월한 동남아로 가서 수영장을 끼는 게 좋다. 그러나 부모님을 모시고 가면 자녀(10세 전후)와 부모(70세 전후)를 모두 만족시키며 우리(40세 전후)도 좀 쉴 만한 여행 어디 없나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추석 지나고 대가족여행 계획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파토가 났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우리 가족 몽골여행을 보고는, 내년 설에 대가족여행이 다시 추진될 듯하다.

여행의 결정은 의외로 간단했다. 연락이 활발한 내 친구 중 미국은 좀 부담스럽고 아프리카는 너무 멀고 결국 아시아권인데, 몽골에 선교사가 한 명 있다. 악동뮤지션이 다닌 학교에 교사로 있다. 늘 자기 있을 때 오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아내가 대뜸 말한다. “몽골 어때?”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연락했고 다음날 바로 항공권을 끊었다. 생각은 신중하지만 결정은 단호해야 한다. 문제는 숙소와 일정과 교통이었다. 즉, 모든 게 문제였다. 몽골은 결코 자유여행이 쉽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친구가 가이드를 자처했지만, 가정과 생업이 있는 사람에게 모든 걸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여행을 ‘삼분지계’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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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박 5일로 가는데, 첫 번째 1박 2일은 ‘테를지국립공원’으로 가서 그래도 몽골인데 게르에서 묵고 별을 본 후, 말과 낙타를 타고 독수리체험과 액티비티를 하는 것이다. 이걸 처음에는 직접 알아보려 했으나, 하루 묵는 걸 받아줄 게르가 없었다. 몽골은 비수기지만 한국여행사는 성수기라 그런 듯하다. 그래서 결국 여행사를 끼고 가이드와 기사님과 움직이기로 계획했다.

두 번째 2박 1일은 친구와 동행하기로 했다. 짐을 친구네 울란바타르 집에 맡기고 기차를 탄다. ‘몽골종단열차’라고 4인실 침대칸을 타면 10시간을 달려 북쪽 끝 러시아 국경에 접한 ‘수흐바타르’로 간다. 그걸 타고 갔다 다시 그걸 타고 돌아오는 코스를 짰다. 친구가 강추했다, 밤과 새벽을 이어 잠도 자지만 노을과 별과 일출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차에서 먹는 라면, 몽골의 낭만이 여기 있다며. 아이들이 격하게 환호한 대목이다.

세 번째 2박 2일은 수도 ‘울란바타르’로 돌아와 도시여행을 만끽하고 마무리하는 코스였다. 몽골의 역사와 문화도 있지만 한국과 관련한 장소도 있다고 들었다. 친구는 자기가 더 가이드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렇게 인문학적인 여행 코스만 짜다 보면, 아내와 아이들이 싫어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마지막 일정여백을 남기고, 가족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기로 해놓았다.

아내는 지인들 선물을 사기 위해 쇼핑을 해야 할 것이고, 아이들은 몽골음식은 제대로 못 먹었을테니 한식이든 패스트푸드든 맛난 걸 좀 먹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선교사 친구이므로 영적인 시간과 그 가정과의 만남도 필요하다. 남부 고비 사막과 서부 홉스골 호수는 훗날을 기약한다. 이미 몽골 성수기는 지났다. 그때면 중부 위주로 가능은 하지만 슬슬 추워진다고 했다. 아무튼,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은 늘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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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부


그래서 여행에는 공부가 필요하다. 물론, 맡겨놓은 여행은 그냥 가도 즐거울 것이다. 그러나 자유여행인 이상,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 모르는 만큼 고생한다는 것, 그리고 알아도 몰라도 보일 것은 보이고 고생할 것은 고생한다는 것, 따라서 여행은 어찌 되든지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없다. 이제 아이들이 얼마나 고생하며 또 얼마나 배우는가에 달렸다. 그동안은 부모가 다 준비해서 짜준 여행을 편하게 다녀왔다면, 이제 어느 정도는 컸다. 그래서 ‘몽골’과 ‘칭기스칸’을 주제로 우선 아이들과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우리 동네 도서관 기준으로 ‘몽골’로 검색되는 여행 전문서는 국내에서 강한나 작가가 쓰고 한빛라이프가 발간한 <리얼 몽골>(2022~2023 초판/2025~2026 개정)과 남희원・최연재 작가가 쓰고 테라출판사가 발간한 <디스 이즈 몽골>(2020~2021)이 좋았다. 둘 다 시리즈물인데, ‘론니 프래닛(Lonely Planet)’ 시리즈는 ‘세계1등’이라지만 공동집필과 번역투가 영 거슬렸다. 앞선 두 책은 정보야 비슷하지만 편집 방식에서 ‘리얼’이 ‘디스 이즈’보다는 나은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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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가 기획한 두 책으로 기본 줄기를 만들고, 그 디테일을 위해서는 개인 작가가 주관적인 스토리로 만든 에세이를 살폈다. 올드한 느낌(이렇게 말해 죄송하지만 텍스트 중심이란 의미)으로는 이태원 작가(전직 항공사)의 <몽골의 향수>(기파랑, 2011)가 사진도 좋고 내용이 알차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외에는 최근 몽골여행 붐과 함께 발간된, 감각적인 느낌(이 말은 텍스트가 주가 아닌 사진이 책의 주된 내용이라는 의미)으로는 차은서 작가(사진작가)의 <그럼에도 몽골>(푸른향기, 2025)이 눈에 띄었다. 그 사이에서 이시백 작가의 <당신에게 몽골>은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 구하진 못했으나, 그의 브런치 <고비>의 글 몇 편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 글의 제목에 아이디어를 준 것이 ‘몽골의 푸른 늑대’였다.

몽골 사람은 자기 조상이 ‘푸른 늑대’‘흰 사슴’ 사이에서 나왔다고 믿는다. 우리가 단군 신화를 말하며 곰과 호랑이 토템을 언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언젠가 ‘삼프로’에서 국사학자로 동아시아사를 연구하는 윤명철이라는 교수가, ‘무속’이란 게 유라시아의 숲을 관통한 보편적 문명이며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를 거쳐 특히 동북아의 끝, 만주와 한반도에서 성행했다고 주장한 걸 보았다. 산세가 가장 험한 함경도 무당이 기가 세다는 말도 떠오른다. 우리 가족이 그 푸른 늑대 세 마리와 흰 암사슴이 된다면, 캬아, 왠지 ‘신기(神氣)’가 느껴진다.

아이들에게는 아무래도 ‘칭기즈칸’이 최고다. 발간일 최신순으로 <설민석의 세계사 대모험 15/ 칭기즈칸의 꿈>(단꿈아이, 2022), <Who? 칭기즈칸>(다산어린이, 2020), <Why? People/ 칭기즈칸>(예림당, 2018), <가장 넓은 땅을 정복한 칭기즈칸>(한국톨스토이, 2018)을 꾸준하게 읽었다. 학습만화 책이 지니는 장점과 단점은 분명한 듯 보인다. 재미있지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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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의 본명은 테무친, 아버지 예수게이를 일찍 여읜 사연, 성장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벌인 친구 자무카와의 전투, 조강지처 보르테를 뺏겼다 찾아온 사연, 마지막 아내 홀란, 그의 세 아들 주치, 차가타이, 오고타이 사이의 갈등, 막내아들 톨루이로부터 나온 손자 쿠빌라이, 칸의 계보, 원나라를 포함한 칸국의 분열, 원나라가 고려는 먹었지만 일본은 못 지배한 사연, 우리의 저항과 비슷하게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도 몽골을 막아낸 이야기, 결국 몽골은 해군이 약하다는 결론, 나머지 대륙에서 유럽으로는 러시아, 아시아로는 이란과 튀르키예, 인도까지 갔다 왜 멈추었을까에 대한 질문, 칭기즈칸의 충신 수부타이와 개국공신들, 언젠가 아이들이 크면 읽게 될 <삼국지>와 <대망> 같은 ‘무협’의 이야기가 몽골에도 있었다. 그게 스케일이 꽤 크다. 그리고 몽골이 중국과 일본보다 스케일은 솔직히 더 큰 듯 보인다.

그런데 몽골의 이 ‘세계’ 제패 이야기는 중국의 ‘대륙’이나 일본의 ‘열도’, 혹은 우리의 ‘반도’ 제패 이야기보다 읽히지 않는다. 스케일은 비슷한데 <로마인 이야기>만큼도 알려져 있지 않다. 왜 그럴까? 아이들과 더불어 나도 질문을 시작했다. 심지어 영화 <킹덤 오븐 헤븐>까지 떠올랐다. 분명 중세를 관통하는 중요한 두 사건인데, 십자군 전쟁은 제법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의 충돌로 다루어지는데, 도대체 1206년에 건국되어 두 세기에 걸쳐 펼쳐진 ‘몽골 제국’의 역사는 ‘최대영토 정복’이라는 타이틀 외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왜 없을까?

‘보르츠’라는 육포를 우유에 타 먹으며 쉴 새 없이 진군하고, 말이 지치면 함께 끌고 다니던 다섯 마리 가운데 다른 말로 갈아타며, 초반에 약하던 공성전에서도 ‘무적불패’를 자랑하게 된 몽골 기마병이, 어느 날부터 게르가 아닌 궁궐에 머물고 더 이상 진격하지 않더니, 아들 손자들로 ‘칸’국을 쪼개고, 몽골이 ‘원(元)’이라는 중국이 되기로 선택하며, 결국 ‘흑사병’으로 자멸했다 쯤으로, 몽골 제국의 무협 이야기를 요약할 수 있겠다. 아이들의 표현대로면, 몽골이라면 계속 말을 타고 달려야 했는데, 어느 순간 뚝 멈추어버리니, 그렇게 역사에서 사라져 버린 셈이다. 여행 준비하며 매일 세계지도와 지구본을 본 듯 싶은데, 아이들의 질문 왈, "왜 몽골은 옛날에는 강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약해?" 역시 남자 아이들이라 ‘쎈 걸’ 좋아한다.



3. 역사


그래서 아빠는 공부를 따로 했다. 이것을 여행 이야기와 함께 쓰려면 ‘역사’라는 카테고리가 가능할 것이다. 도움받은 자료는 티모시 메이라는 미국 교수가 2012년에 ‘세계화’라는 주제로 쓴 <칭기스의 교환>(사계절, 2020)이라는 책인데, 번역한 사람은 권용철이라는 신진 동양사학자이다. 콜럼버스(스페인) 신대륙 발견을 ‘말, 소, 양, 천연두 vs 옥수수, 감자, 고구마, 매독’ 같은 식량과 질병의 교환으로 해석한 책에서 쓴 말이 ‘교환’이다. 사실 이전에도 바스코 다 가마(포르투칼)가 인도에서 후추를 발견하며 향신료 무역을 시작했고, 이 통찰로 요즘 유명한 책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2005)가 아닌가 싶다. 이 모든 서구의 세계화보다 대략 200년이 앞서는 몽골의 세계화를 주장하는 책으로 읽혔다.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콜럼버스의 발견이 1492년이고, 몽골제국이 최대 영토를 이룩하던 시기가 1300년 전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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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인상평은 다른 세계화처럼 ‘물건’들의 교환이 아닌, ‘문명에 대한 관대함’을 제도화한 것, 즉 ‘문명의 교환’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쓴 책이라고 보인다. 몽골은 처음으로 ‘종교’에 대해 ‘관대’한 ‘제국’을 만들었다. 키워드로만 말하자면, ‘제국’, 즉 황제의 나라라고 이름하면 보통 민족, 언어, 인종, 종교를 초월하는 큰 나라라는 뜻이므로, 경제력과 군사력이 그 기초겠지만 제국을 지속할 힘은 ‘관용’일 수밖에 없을 텐데, 세계사 이래 그 어떤 제국도 ‘종교’에 대해서는 통합의 기반으로 삼았을 뿐, 관용의 대상이지 않았다.

로마는 기독교를 국교화하였고, 페르시아는 조로아스터라는 혼합종교를 만들었고, 오스만 이래 모든 무슬림 국가의 꿈은 이슬람교의 낙원이다. 그런데 지배층 본인들은 무속이나 라마 불교를 믿는데, 지배국의 형편을 따라 기독교와 이슬람을 모두 허용한다. 아마 이 지점 때문에 몽골은 확장되었지만, 또 몽골은 무너졌다고 보인다. 현재도 힘을 발휘하는 대영제국이나 미국을 보면 ‘보편종교’는 필요하다. 종교인 기독교의 가치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정치와 경제의 제도로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 측면에서 몽골 제국의 역사는 무엇을 남겼는가? 유목민은 관대하다? 침략할 당시 유목민은 군대라서 무관대하고 강했지만, 지배하려고 정착하는 순간, 관대한 유목민은 관대함 외에 자신들의 어떤 가치도 남길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답을 했다. ‘몽골은 지금은 약해졌고, 그래서 돌아다닐 땅밖에 안 남았다.’

여행 때 최후의 만찬으로 몽골이 자랑하는 ‘샤브샤브’를 중국식으로 만든 체인점 ‘더불’에서 친구네 식구들과 함께 먹고, 숙소로 함께 와서 담소를 나누었다. 에피타이저로 꽈배기 ‘유타오’가 나온 걸 보니 중국식이 맞다. 이러한 방식으로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 상권 발전의 뒷배경에는 중국 자본이 있으리라. 사실 동남아를 여행할 때도 늘 깨닫는 사실이 상권을 지배하는 것은 화교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몽골 경제의 중국 의존도는 굉장했다. 몽골 수출의 대부분은 광물, 석탄, 구리, 철 등인데 거의 다 중국으로 팔고, 몽골의 제품이란 제품은 거의 다 중국산이다. 사실 전 세계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가 아닌 것이 어디 있겠냐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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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몽골은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소련의 도움을 받아 독립했지만, 어느덧 소련은 해체되어 러시아는 몽골에 큰 지배력이 없다. 독립된 몽골은 ‘몽골리아’라는 공화국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중국 내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내몽골’은 이 국가를 ‘외몽골’이라로 부른단다. 심지어 외몽골은 러시아 영향으로 ‘키릴문자’를 쓰는데, 내몽골은 원나라 이래 쓰던 한자화된 ‘몽골문자’를 아직도 쓴다. 역설적으로 중국 내 내몽골이 민족주의를 더 강조하고, 몽골이라는 국가는 오랜 세월 국제사회주의를 표방했다. 그래서 전통적인 여당은 ‘인민혁명당’이다. 일본의 자민당, 우리의 민자당 같은 보수당인 셈이다. 이게 무너지고 정권을 교체한 게 2009년 이후 최근 10여년 간의 ‘민주당’ 연립정부였다. 이 시기 몽골은 국가명에서 ‘인민’을 떼고 1990년 선거제를 개혁한 ‘민주화’ 이후 진정한 ‘공화국’을 만들게 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최근 정권을 되찾은 정당은 공산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로 강령을 바꾼 ‘인민당’이다.

역사 공부가 부족하긴 해도, 살짝 아일랜드 공화국과 영국연방에 속한 북아일랜드의 갈등을 보는 듯하다. 그쪽 문제는 카톨릭과 개신교의 갈등까지 결합되니 더 복합하지만, 민족주의에 공산/사회주의가 결합하여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룩하느냐의 성격에서는 비슷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네 보수 여당이 국익을 우선시하는 명목과는 달리 늘 ‘친일’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몽골의 인민당도 사회주의를 해왔고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것 같지만, 결국 뒤로는 중국 자본에서 자유롭지 못하므로 ‘친중’이라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그에 반해 민주당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서방세계’와의 연대를 내세웠지만, 워낙 중국 의존도가 높은 몽골 사회에서 자립적인 정권을 지속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도 민주당 정권이 무너진 핵심 사안이 이 광물자원 개발의 이권 문제였다.

몽골사람들에게 그래서 가장 우호적인 나라가 러시아, 그 다음으로 가깝지만 위험한 나라가 중국, 그 외에 ‘제3국’의 위치에서는 경제적으로 교류가 많은 일본과 한국이 경쟁자인 셈이다. 최근 칭기스칸 공항을 울란바타르 시내에서 떨어진 곳에 신축하여 우리네 김포/인천공항처럼 만드는 사업은 일본 미쓰비시가 했다. 그리고 한국은 이마트와 CU 같은 유통업을 장악했다. 그런데 한때 민주당 대통령으로 재임 시절, 탈북민을 받아주고 중국이나 북한으로 돌려보내지 않아 한국과 가장 가까운 외교관계를 유지했던 ‘엘벡도르지’는 최초의 미국 유학파였다. 놀랍게도 그 시절 남북통일을 위한 평화모드가 조성되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한다는 취지에서, 유럽연합 같은 동북아연합으로 ‘한-몽 국가연합’ 아이디어가 제시되었다고 한다. 뜬금없는 말 같지만, 강대국이 즐비한 동북아에서 자주국가로 살아가기 위한 구상이라는 점에서 눈부시다.



4. 공간


어떤 사람들은 공부만 하다가 여행을 안 가는 경우가 있다. 굳이 가볼 필요가 뭐가 있나, 책 읽고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면 되지, 그러다 보면 세계여행을 <EBS 테마기행>으로 끝낸다. 틀린 말은 아니다. ‘간접경험’의 극치, 독서를 통해 ‘시간’에 대한 ‘사유로서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그러나 여행은 ‘공간’을 발로 걷고 ‘교통’ 수단으로 속도감을 느끼며, 그 공간의 기후와 냄새를 ‘몸’으로 체험하고, 명승지를 눈으로 보며 외국어를 귀로 듣고, 무엇보다 그 나라 특유의 ‘음식’을 먹어보고, 그곳의 일몰과 달과 별과 일출을 보며 잠이 들고 깨는, ‘직접경험’의 극치다. 여행은 반드시 ‘공간의 이동’이여야 한다. 시간여행, 역사기행, 이러한 것들은 어디까지나 비유인 셈이다. 공간을 이동하면 사람은 자연스레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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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말 타고 세계를 제패하던 유목민(노마드, nomad), 오늘날은 그들의 후예가 목축하기에 딱 적당한 만큼의 ‘그래도 큰 땅’으로 쪼그라들어 살고 있는 나라가 몽골이다. 그래서 현대의 우리들에게 몽골 여행은 그 큰 땅의 자연을 감상하러 가는 것이 주된 목적이 된다. ‘시간’을 거슬러 세계로 뻗어나갔던 민족의 후예들이, 딱 한정된 ‘공간’에 머무르며 만든 신생국에서는, 그 시간과 공간과는 별개로 ‘자연’ 자체가 관광상품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면서도 흥미롭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인간이 만든 문화재 못지않게, 그 문화재의 배경을 이루는, 그 땅이 생겨난 그대로의 자연에도 반응하는 듯하다.

예를 들면 ‘천진벌덕’이라는 ‘칭기즈칸 기마상’을 보러 갔다. 그런데 그 크기가 40M로 세계 최대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동상이 위치한 벌판과 주변의 방향마다 위치한 자연물을 보게 되었다. 몽골은 그런 측면에서 문화재보다는 자연이 우선이다. 그리고 지평선이 드넓은 평원에 덩그러니 서 있는 유적은 쇠락한 몽골 제국의 역사 때문인지, 초라하며 뭔가 '언밸런스'하다는 인상을 준다. 아무리 사회주의 계획 건축이 웅장하더라도, 즉 울란바타르 시내에 있는, ‘수흐바타르 광장’이나 ‘자이승 승전기념탑’은, 뭐랄까 우리 광화문 광장이나 서울타워와 비교하면(물론 우리 건축물도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광장과 탑이 주변 자연과 건축과의 조화 측면에서 횡하다는 느낌은 피할 수 없다. 내 주관이지만 몽골의 과거와 현재의 부조화 때문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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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타르 시내는 분명 현대적 도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설프게 복원중인 광화문보다는 수흐바타르 광장이 낫다고 보였다. 애초에 사회주의 국가는 광장을 확실히 넓게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 광장이 관광하는 외부인인 아니라, 내부인의 관점에서 어떤 용도로 쓰이고 있는가를 따져보면, 정부가 관(官)을 위해 선전용으로 행사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시민들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표출되는가에 그 건축학적 평가도 달려 있다. 코로나 팬데믹 후로는 근래 정치인의 부패를 빌미로 의원들이나 내각의 사임을 요구하는 소규모 시위는 있었지만, 제대로 된 시위는 2008년 부정선거가 이슈였는데, 경찰이 죽으며 폭력시위로 매도당했고 비상사태로 간 경우가 유일했다. 이 평가는 2007년에 이곳에 와서 15년째 살고 있는 한국인의 전언이다.

그러한 정치적 문제는 여행자의 관점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울란바타르 도심이 건축과 상권에서 자본주의의 첨단으로 가고 있는 것만큼은 눈에 띄었다. 우리 잠실 롯데타워 같은 성격의 ‘블루스카이 타워’는 대놓고 수흐바타르 광장 맞은편에 있는데, 굳이 들어갈 볼 명목은 없으니 쳐다보기만 했다. 현지에 사는 분들은 이곳 라운지 식당에 가서 야경도 보고 이벤트들도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있으니, ‘국영백화점’에서 선물을 산 후 좀 걸어 ‘블랙버거’로 갔다. 한국에서도 우리 아이들이 햄버거와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한 게 최근이다. 이제 맥도날드와 버거킹, 서브웨이 몇 번 가본 게 전부다. 그래서인지 ‘까만색’ 문어 먹물로 만든 버거는 흥미로울 수밖에. 나름 세련된 울란바타르 라이프를 경험한 것으로는 이 버거가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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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를 빠트릴 수 없다. 심지어 그 유명하다던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최초의 숙소였다. 국내에서도 기웃거리기만 했을 뿐 하지 않던 걸 몽골에서 처음 했다. ‘나담센터’라고 울란바타르의 ‘강남’(‘평화를 다리’를 기준으로)에 위치한 쇼핑몰이 있다. 그 근처는 은행이나 금융기업이 많이 보였다. 그 사이에 아파트 촌이 즐비한데, 그중 ‘에르데네’라는 호스트가 자기 집(8층)과 함께 운영하는, 9층에 복층 옥상이 있는 아파트였다. 영어와 러시아어가 자유로운 몽골 사람이고 육아대디였는데, 인테리어를 보니 뭔가 미적인 감각이 필요한 직종에서 일한 느낌이었다. 복층으로 올라가는 달팽이 모양의 계단, 막상 나와 아내는 침구를 옮기느라 힘들었는데, 아이들은 오르락내리락 잘도 뛰어놀았다. 가족여행이란 아이들이 즐거우면 다 된 것이다. 이번 몽골여행은 우리 아이들이 즐거웠다. 그만큼 몽골이라는 땅이 공간적으로 넓어 뛰어놀기에 좋다는 의미로도 해석가능할 것이며, 우리 집의 흰 사슴님께서 푸른 늑대 세 마리를 마음껏 풀어 놓아주신 덕분이다.(준비와 공부를 넘어선 찐 여행 이야기는 2편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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