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수학쌤 Oct 12. 2023

나의 일춘기

마음이 몸처럼 말을 듣지 않고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심신이 오락가락 제멋대로 날뛰는 문제의 그 시기. 고전적으로는 질풍노도의 시기, 일반적으로는 사춘기, 요즘말로는 중2병, 그렇다. 잘못 걸리면 약도 없다는 이 몹쓸 병이 고작 초2, 아홉 살 나에게 찾아왔다. 일찍도 말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딱 일 년을 다니고 나니 여럿이 한 공간에 모여 딱딱한 의자에 앉아 정해진 시간에 똑같은 내용을 배운다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슬슬 학교가 재미없어져 버린 것이다. 2학년이 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나의 일탈이 시작되었다.

아침 등굣길, 책가방을 메고 내가 향하는 곳은 학교가 아닌 집 앞 슈퍼마켓이다. 가게 옆에는 아이 한 명 정도는 거뜬히 들어가고도 남을 커다랗고 빨간 고무다라이가 늘 있다. 주인아저씨가 자주 사용하지 않는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곳인데 뚜껑도 있어서 물건을 숨기기에 딱이다. 날씨가 너무 좋다 싶은 날이면 나는 그곳에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숨겨두고는 학교 반대방향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걸어간다. 20센티 남짓한 작은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학교 운동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옥상, 나의 아지트다.

아이들의 분주했던 등교가 끝나고 1교시가 시작되면 동네는 누가 음소거 버튼을 누른 듯 조용하다. 얼마 후 쉬는 시간이 되면 다시 와글와글, 그리곤 이내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다시 평화가 찾아오기를 반복하는... 그 패턴의 소음이 마음에 든다. 소란과 정적의 스무스한 바통터치가 꽤나 멋지다고 생각하며 옥상에 있는 작은 평상에 발라당 눕는다. 가을에는 빨간 고추가 떼로 몰려와 자리를 차지하고선 절대 비켜주지 않는 귀한 자리인데 봄이라 임자가 없어 참 다행이다.

평상에 대자로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는 게 나는 가장 좋다. 파란 하늘을 보며 ‘하늘색이 이래서 이름이 하늘색이구나’, ‘구름이 뭉게뭉게 해서 뭉게구름이구나’, ‘여기 있던 구름이 벌써 저기까지 흘러갔네’, 그렇게 하늘 감상을 한참 하다 보면 등이 평상에서 살짝 떠올라 나도 하늘에 둥둥 떠다닌다.

딩동댕, 평화를 깨는 종소리에 등이 다시 평상에 붙는다.

순식간에 온 동네가 시끌시끌, 하교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아침보다 우렁차다. 운동장을 한참 내려다보며 아이들이 거의 학교를 다 빠져나갔다 싶을 때쯤 길고양이 마냥 살금살금 아파트를 빠져나온다. 그리곤 슈퍼마켓 주인아저씨의 눈을 피해 가방을 챙기고 집으로 돌아가며 비밀스러운 비행을 마친다.

몇 번의 결석 후 담임선생님이 집으로 전화를 하시는 바람에 나의 일탈은 아쉽게도 끝이 났다. 하교 후에도 종종 아지트에 가곤 했지만 땡땡이친 하늘과는 묘하게 다른 하늘이라 감흥이 덜했다.

아직도 날씨가 유달리 맑고 좋은 날에는 하늘을 자주 올려다본다.

그럴 때면 리모컨으로 채널을 탁 돌리듯 한순간에 떠오르는 아홉 살의 기억.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순식간에 그날의 하늘과 그때의 소음 속으로 들어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참이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