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굽히지 않던 꼿꼿한 삶이 대수냐! 굽힐줄 알면 더 행복해질지도...
젊은 시절, 누구에게 무릎 한 번 굽혀 본적 없이 꼿꼿이 살았었다. 성품이 그러해서인 줄만 알았다. 지금은 몸의 이곳저곳이 삐걱거리며 나이 든 티를 낸다. 그러다 보니 성품까지 굽힐 일이 많아졌다. 몸의 건강함이… 젊음이… 마음 씀씀이에 영향을 미칠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앞으로는 아픈 몸에도 성품이 풍요로운 이들을 존경하기로 한다.
최근엔 왼쪽 무릎이 빠각! 비명을 지르더니 주저앉아 버렸다. 대략 난감에 총체적 난국이었다.
근 13년을 주말마다 야구를 했어도 그 흔한 근육통 한번 없었던데다, 부상도 없었던 나에게 무릎 부상은 꽤 치명적이었다. 나는 우투우타라 던지거나 타격할 때, 왼쪽 무릎의 안정성과 지탱하는 힘이 더욱 중요하고, 왼쪽 다리의 근력을 더 많이 쓰기에 그렇다. 평지는 전력은 아니어도 질주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나에 대한, 내 무릎에 대한 과신이다. 팀의 몰수를 막기 위해 출전한 경기에서 과부하가 걸리고, 결국 절뚝이며 경기장을 나왔다. 걷지 못할 줄 알았지만 다음 날 걸을 수 있어 또 과신했다. 큰 대회를 앞두고 야간 훈련을 하다가 빗물에 슬라이딩 당하며 다친 무릎이 접힌 후로도 곧 괜찮아 질 줄 알았을 정도로 내 몸에 대해, 내 무릎에 대해 오만하게도 막대했다. 많은 것들을 후회했다. 전날 왜 잠을 조금 밖에 안 잤을까? 준비운동을 왜 충분히 하지 않았을까? 왜 딴생각을 했을까? 야간 훈련에 안 갔었더라면 달라졌을까? 곧바로 수술했더라면 지금쯤 완쾌했을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 맞는 말이다. 나이 들어 겁은 많아져 수술은 피해 보고 싶었을 테고, 주사치료도 하고 재활치료도 하고 있으니 낙관하고 있었을 테고, 내가 그리 한데는 나름의 역사성이 있겠지만…. 결국 수술은 불가피해졌다. 계단도 오르내리지 못하게 되었고, 일상적으로 기지개를 시원하게 켤 수도 없고, 양치나 설거지처럼 무릎과 상관없을 것 같은 동작들도 전처럼 수월하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반달이어야 할 반월상연골이 보름달이 되어있다는 MRI 결과를 눈으로 보고서야 수술 결심이 섰다. 불편함 없이 생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력 질주 할 수 있고, 힘껏 타격할 수 있어 팀에 필요한 뛸 수 있는 선수가 되기 위한 결심이었다.
내가 야구를 안 하는 대신 주말을 함께 보낼 수 있다고 생각 한 이는 조심스레 묻는다.
“그러고도 야구가 하고 싶어?”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내가 야구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게 된 게 싫은 거고, 야구를 다시 할 수 있을 정도로 내 몸을 만든 다음 할지 말지는 정하겠지만 지금이라도 주말엔 야구 하러 갈 거야. 주루코치를 하든, 덕아웃에 있든 내가 야구를 안 할 때는 오지 않아!”
나는 무릎이 망가지기 전의 야구 하던 나를 사랑한다. 경기장에서의 희비와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기쁨과 희열을, 개인이 아니라 팀이었기에 가능한 승리의 장엄함과 뿌듯함을 만끽하게 해 준 팀원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야구 할 수 있는 주말을 만들기 위해 다른 이들보다 주중을 더 열심히 달렸고, 야구 인생을 함께하고 있는 팀원들을 만나러 주말을 헌납하는 게 당분간의 나의 정해진 삶이다.
나는 무릎이 망가진 후 재활의 방편으로 탱고를 시작한 나를 사랑한다. 모든 것이 젊었던 시절 해변가에서 추는 탱고 실루엣 사진을 보고서 나도 언젠가는 그리 해 볼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배워 볼 생각도 못 해보고 몸이 망가진 후, 이제야 탱고를 다시 떠올리다니… 그러고 보니 로망이긴 했어도 간절함도 없었을 테고, 아마도 더 나이 들어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탱고는 걷는 춤이다. 무릎을 사용하긴 해도 뛰는 동작이 없어 지금의 나에게 딱인 춤이다. 무게 중심을 잡는 방법, 정중동(停中動), 멈추어 있으나 움직이고 있는 상태라는 표현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두 개의 심장이 하나가 되어 추는 춤이라는 게 매혹적이다. 나에게 탱고 추는 시간은 하이힐을 신고 종아리 뒷 근육과 햄스트링을 단련하고, 걸으며 무게 중심을 이동해 골반 운동도 하고, 히로와 오초를 하며 무릎의 유연성을 높이고, 스텝을 밟으며 두 발과 다리의 무게 중심이 자유로이 이동하도록 단련하는 시간이다. 매혹적인 팔로워가 되기 위해, 하루빨리 야구선수로 복기할 수 있기 위해 목요일 7시 홍대로 탱고 추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