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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바람 Jul 18. 2024

나의 사이코 (2)

창작된 심리 스릴러

 저의 업무는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에 필요한 부품 목록을 정리하고 적절한 가격대로 구매할 수 있게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승진과 관련한 중요한 평가를 오늘 넘겼습니다.


 오늘만큼은 마음 놓고 행복해도 되지 않을까요? 앞 치마를 메고 상추와 떡 사리를 닭갈비와 섞으며 붉어진 남자 친구의 얼굴을 바라 보았습니다. 


 남자 친구를 볼 때면 편두통일지 모를 두통이 지워졌습니다. 참 행복하다. 사랑해. 같은 말들이 들이 마신 숨과 함께 흉곽을 가득 채웠습니다. 한 번만 더 만나자. 한 번만 더. 하다 보니 돌아가야 할 가족처럼 느껴졌습니다.


 남자 친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그가 봐 달라는 풍경에 시선을 던졌습니다. 짙은 검정 나무들 사이로 호박색 가로등이 보이는 평화로운 풍경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나란히 앉아 서로가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던 중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습니다. ‘02’도 아니었고 인터넷 전화도 아니었습니다. 트라우마가 없는 사람이었다면 스쳐간 인연이나 대학 동창들이 돌아왔다고 생각했을텐데, 저의 직감은 이번에도 아닐 거라고 말했습니다. 여태껏 살아 오면서 모르는 번호로 온 연락을 받았을 땐 고통스러운 일만 있었습니다. 


“왜?” 남자친구가 물었습니다. 그에게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습니다. 수신 버튼을 누르고 고개를 돌려 입을 가렸습니다. 


“홍나무 씨 되십니까?”

“그런데요?”

“여기 @@ 지구대 최필용 경관인데요. 혹시 홍자유 씨를 아십니까?”

“자유가 거기 있나요?” 

“홍자유 씨와는 가족 관계 입니까?”


 저는 남자친구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고개를 돌려 남자친구의 눈을 보려던 것이 남자친구가 제 두려움을 표정으로 알아 차리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이유를 물었고 저는 목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모르는 이야기가 아직 있었습니다. 그는 제가 취업 못한 동생에게 생활비를 붙이고 있다는 이야기까지만 알고 있었습니다.


 “네. 지금 제가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 지구대라고 하셨죠?”


 당장 간다는 말에 놀란 남자 친구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전화를 끊은 후 집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순순히 저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 입맞춤이 깊었습니다. 그대로 잠겨버리고 싶었습니다.


 핸드폰으로 택시를 잡았고 서울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지르는 고가도로에 올랐습니다. 택시 안에서 핸드폰으로 그동안 자유와 주고 받은 연락들을 살폈습니다. 이틀 전에 한 시간 가깝게 전화를 했던 기록이 보였습니다. 홍자유가 횡설수설 했던 날이었습니다. 기도가 열리도록 고개를 들고 숨을 내쉬었습니다. 저는 매번 이런 식으로 불행이 찾아오는 징후를 놓치고 살았습니다.


 @@ 지구대의 문을 열자 모두의 시선을 잡아 끄는 연극 배우 같은 여자가 보였습니다 나와 똑같은 얼굴에 마른 체형을 지닌 자유는 파리 떼처럼 그녀 곁에 붙는 사람들을 따돌리며 이쪽에서 저쪽으로 지구대를 누비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예뻤습니다. 허리 곡선을 강조하고 순결한 처녀처럼 보이게 하는 흰 꽃 무늬 치마에 생리혈이 묻은 것이 보였습니다. 마음은 급했지만 순서는 지켜야 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편의점은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되었습니다. 마침내 자유를 화장실에 가두고 생리대를 내밀었습니다.

 

 “얼른 팬티 빨리 갈아 입어.”

 그나마 일 년 전 홍자유와 비교하면 오늘의 홍자유는 순하고 부드러웠습니다. 

 “언니. 사랑하는 우리 언니.”


 자유가 제 어깨에 팔을 감으며 몸을 기댔습니다. 이제껏 자유는 저에게 무수한 거짓말을 했지만 자유가 저를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나 진실처럼 들렸습니다. 119를 불러 응급차 침대에 자유를 눕혔습니다. 지구대를 떠나기 전에 저는 그곳의 풍경을 한 번 둘러 보았습니다. 믹스 커피처럼 보이는 종이 컵을 문 유니폼의 경찰들이 있다면 수첩을 들고 손톱을 씹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모 신문 취재 기자 모 라고 합니다. 괜찮으시면 동생 분과 관련하여 추가 취재 가능할까요?” 

 “아니요.”

 “아. 많이 바쁘신 걸까요?”


 저는 신입으로 보이는 어린 기자를 쳐다 보았습니다. 이 복잡한 마음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 지 몰랐습니다.

 “너무 자세히 보려고 하지 마세요.”

 “네?”

 “오늘 밤의 일은 모두가 기분 나쁜 꿈을 꾼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 거예요. 제 동생한테도 그렇고요. 기자 님 한테도 그럴 겁니다.”


 그러자 기자는 마치 최면술사를 대할 때처럼 몽롱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네. 그럴게요.”


 저는 경찰이 알려준 경기도 정신건강 병원으로 홍자유와 함께 이동했습니다. 그곳은 이제껏 홍자유를 입원시켰던 이전의 병원들과 달랐습니다. 경찰은 전공의들의 대학 병원 파업으로 대학 병원에서 입원할 병동을 찾기가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저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사회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홍자유는 한 번 들어가면 언제 나올지 모를 병동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이별하기 직전에 홍자유가 저에게 한 발짝 다가왔습니다. 두 발짝. 그리고 마침내 와락 껴안았습니다.


 “사회에서 보자 언니.” 

 저도 너무나 마른 그녀의 허리를 안았습니다.

 “그래. 치료 잘 받고 돌아 와.”

 그렇게 그날 밤 저는 엘리베이터 속으로, 홍자유는 폐쇄병동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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