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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운명이라면 #4

본성과 양육(28살 구직 생활 이야기)

by 길바람

내 구직에 중요한 두 가지 결정 요인


비록 2025년 들어 챗 지피티나 블랙핑크의 미국 시장 진출 등 새로운 변수들이 떠올랐지만, 그런 기술과 트렌드가 내 구직 활동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미 사춘기 시절에 결정이 된 것 같다. 중학생 때 일어난 일을 기억하자면,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내신 영어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고, 도서관에 가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과 개미 시리즈를 읽었다. 그래서 성인이 된 내가 영어로 직업을 구하고, 독서 모임 활동과 글쓰기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에 따르면, '(아동 발달에 대한 연구 대부분이) 어린 시절의 자극과 활동이 지능 발달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어린 시절의 자극이 줄어들면 돌이킬 수 없는 지적 능력 발달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역설한다.(36P)' 나는 내가 언어로 된 자극에 유독 민감하고 일상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읽거나 문제집을 풀며 보내는 까닭이 여기에 있지는 않은가 추측했다. 다르게 말하면, 나는 좋아하는 일을 바탕으로 직업을 구하는데, 그 좋아하는 일이란 양육 과정에서 결정이 돼버린 것 같다.

두 번째로 이십 대 중후반부터 만들어 온 일관성 있는 이력서가 주요 결정 요인이었다. 나는 내 또래들과 다르게, 웬만하면 영어 강사 일에만 지원했다. 이는, 영어 강사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나의 자아정체성과도 연결된 중요한 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3월의 마지막 주에 18곳에 서류를 넣었고, 그중 연락 온 5곳에서 1차 면접을 수목금 3일 연속으로 돌았다. 학원을 부동산처럼 투어 하듯 돌아다녔던 까닭은 무슨 기발한 묘수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개학하는 달이 아니어서 어느 학원에서도 불러 주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고 일단 연락이 왔을 땐 무조건 빠른 날짜로 면접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약속을 했으면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그곳에 그냥 갔다.

이미 많은 것이 이력서에 적혀 있었다. 자존심을 떠나 심플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부르면 가고, 맡겨주면 최선을 다한다. 이미 많이 노력해 왔기 때문에 그동안 쌓은 경험과 능력을 믿으면 된다. 이미 선하고 바르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상한 학원을 만나면 촉이 발동할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건, 자신감 그리고 글쓰기


초등영어 어학원에서 만난 상사 분이 했던 말 중 지금도 기억나는 말이 있다. '학원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이미 완성되어 있어야 한다'라는 말이다. 어떤 맥락에서 한 말이냐면, 주로 그분이 요구하는 강의 방식을 내가 잘 해내지 못했을 때 했다. 나는 강사가 되기 전에는 어학원을 한 번도 다녀본 적 없었다. 보통 선생님들은 학생 시절 제일 많이 본 선생님을 모방해 그 직업을 가지는데, 나는 그런 경험이 없어서 샘플 수업을 보면서도 '이게 정말 애들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단 말이야?'라는 불필요한 질문을 많이 했다. 그런 교육으로 아이들의 성적이 향상되는 것을 눈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찾아 보면 방법이 꼭 있다고, 나는 그 어학원이 여행에서 쉬고 돌아온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강 수업 영상을 모방하는 방식으로 수업 준비를 했다. 끝내는 결국 해내었으나 회사가 원하는 만큼 빠르게 일을 배우지 못한 것이 큰 문제였는지, 회사의 결정으로 퇴직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다음 학원에 들어가기 전에 완성되겠다는 마음으로 한동안 일을 쉬었다. 하지만 나는 설명하긴 어렵지만, 내가 토플 만점을 받아도 일자리를 못 구할 것 같은 느낌을 계속 받았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전 직장에선 함께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이 나를 '말 안 통하는 사람. 자기만의 생각에 갇힌 사람'처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날이 있었다. 그 기간은 이주 정도로 금방 끝났다. 나는 나에게 영어 능력보다 사회생활 능력에 결함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쉬는 날에 총 균쇠를 읽으면서도 인간이 가축으로 데리고 살게 된 동물들과 나를 비교하기도 했다. 나는 왜 학원들이 관리하기 힘든 직원일까. 양과 소처럼 가축화된 대형동물들은 무리를 지어 살았고, 무리 구성원 사이에는 인간이 최종 보스인 정교한 위계질서가 있으며, 각 무리에는 배타적 세력권이 있다. 학원들은 집단으로 협력을 하며 일을 하고, 원장이 리더이고 그 아래에 부원장과 팀장 팀원 선생님이 있으며, 각 선생님들 사이에는 배타적 세력권이 있다. 배타적 세력권이란 말은, 부원장이 두 명이거나 팀장이 두 명인 것처럼 권력이 분산되지 않고 반드시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한 줄로 나열할 수 있다는 말이다.

(부원장-팀장-선배 팀원-신입 팀원) 이런 식으로 말이다.

비유하자면 나는 환경이 그런 학원에서 부원장과 팀장에게서 신뢰를 얻지 못했고, 이를 못해 인생이 고달파졌던 것 같다. 인간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고양이 같은 직원은 고양이 집사 같은 원장님을 찾으면 된다지만, 1차 면접만 보고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최종 면접까지 본다고 또 알 수 있을까. 그러다 합격을 하게 되면 고양이여도 개인 척 일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나는 프로니까 말이다.

정리하자면, 구직과 관련해선 내 마음을 따라갈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공부를 하고, 일이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 과정에서 결과를 챙겨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정말 이 일을 떠나야 할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글로 정리하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감을 최대한 끌어 올리는 것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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