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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바람 Mar 16. 2024

영어 유치원 출신은 아니지만 너희를 가르치러 왔어!

저는 홍대 대형학원에서 근무하는 영어 강사입니다.

 우리 세대 선생님들은 한자를 써가며 가르쳤다. '선생님'이란 단어를 가르칠 때 그들은 먼저 선, 날 생을 칠판에 적은 후 먼저 태어난 사람이자 먼저 인생을 경험한 사람이라고 풀어준다. 겸손하게 이런 말을 덧붙인다. 나는 겨우 너희보다 먼저 태어났을 뿐이라고, 그 작은 차이가 아주 먼 세계에 있는 느낌을 주는 거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신학기 만난 아이들은 여태 가르쳤던 아이들과 달랐다. 영어 유치원을 나온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얘네보다 먼저 살긴 했는데 먼저 경험한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교실에 들어가면 그 아이들은 하이에나처럼 달려와 영어로 질문했다.


 고작 열 살 열한 살 되는 아이들 앞에서 긴장을 하고 서 있는데, 보는 눈이 하나 걸어 들어와 교실 구석에 가서 앉는다. 그 눈은 소리 없이 의자에 앉았고 긴치마 자락이 발목 앞에서 흔들린다. 그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

 ‘네게 가르칠 자격이 있니?’ 하고...

그는 내 상상 속의 감시자였다. 감시자의 질문은 수많은 강사를 기죽게 만든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1. 강사될 자격은 양질의 수업에서 옵니다.


 한국에서는 보통 강사 될 자격을 시험이 가져다준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사범대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 수능 고득점자가 입시 영어를 가르치고, 토익 고득점자가 토익 과외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어학원과 영어 유치원 문을 두드린 학생들을 가르칠 자격은 누구에게 주어질까?


 어쨌거나 나는 교실로 갔다. 여섯 명에서 열 명 되는 아이들의 출석을 부르고 나면 프로그램된 로봇처럼 정해진 일들을 수행했다. 단어시험은 오 분, 본문 녹음 재생은 삼 분, 활동 A는 칠 분. 이때는 아이들 속으로 걸어가 글씨가 제대로 써지는지를 확인하고, 또 이때는 보드 마카로 판서하며 설명을 한다. 그 많은 일들을 첫날에는 하나씩 꼼꼼하게 처리하지만, 일주일만 지나면 몸에 일이 붙는다. 그러면 새로운 위기가 찾아올 때까지 편안한 상태로 명상에 잠겨 있을 수 있게 된다. 상상 속의 감시자가 바람에 커튼이 흔들리는 일처럼 아이들 책상 사이를 걸어 내게 다가온다. 감시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대답한다.

‘쉽게 이룬 게 아니야. 그러니까 쉽게 내려가지 않을 거야.’

 마지막 수업의 종이 울리면 나도 여느 직장인들처럼 칼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난다. 아이가 교실에 놓고 간 책과 필통을 학원 인포 데스크에 맡기고 학부모에게 문자를 보내는가 하면, 수업 때문에 걸지 못했던 담임 인사 상담 전화를 걸고, 좋지 않은 결과를 낸 수업 계획들을 수정하고 나야 안심하고 퇴근할 수 있었다. 마우스를 달칵 거리며 컴퓨터를 끄고 교무실 입구에 앉은 관리자 선생님께 인사를 한 후 출결 카드를 찍었다. 건물을 빠져나오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면서 엄마에게 문자를 보낸다.


‘오늘 수업도 완벽했어!’

 그게 다였다. 별 거 없었다. 가르칠 자격에 관한 질문은 너무 비장했다. 비장한 질문에 비장하게 대답하려고 하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생각때문에 수업에 소홀하기 쉬웠다. 강사 될 자격이란 양질의 수업을 만들어 가는 것 말고는 피해 갈 방법이 없었다.

 

2. 누가 외계인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비장하게 살았던 날이 내게도 있었다. 사교육업계에서 우리들이 만나는 대부분의 강사들은 이력서가 있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전공이 무엇인지. 몇 년을 가르쳤는지, 학생 몇 명을 이름난 대학에 보냈는지. 고작 이력서에 한 줄 적기 위해 일 년 넘게 노력해야 했다. 

 별로 가진 게 없던 시절 가르침을 주었던 팀장 선생님과 동네 뒷산을 올랐던 어느 날이었다.

“저 이번에 꼭 토익 만점을 받으려고요.”

끌리는 목표가 생기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습관은 이때부터 생겼다. 말을 하면 그 말을 지키기 위해 더 노력하게 된다고 믿었다. 팀장 선생님이 물었다.


“왜 꼭 만점이어야 해?”

 

한국의 어느 대기업도 사원에게 토익 만점을 요구하지 않는다. 토익 만점을 받았을 때 누가 어떤 보상을 준다는 말인가? 보상이 없는데 만점을 받을 동기가 어떻게 생긴다는 말인가. 팀장 선생님은 궁금해했고, 그땐 나도 그게 궁금했다.

 내가 말했다.


“모르겠어요. 그냥 끝까지 가보고 싶어요.”
 


토익 만점을 받아 냈단 사람은 유튜브에 많았다. 그들은 왜 만점 받기 위해 노력했을까. 그들이 어떤 세상으로 갔는 진 만점을 받아보지 않고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긴 시행착오 끝에 토익 성적을 만점에 가깝게 올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너지고 말았다. 광안리로 당일치기 여행을 갔다. 사랑할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세상 모든 것이 지겨웠다. 인간이 특히 지겨웠다. 인류애를 회복하고 싶어서 광안리에 왔다는 말에 와인 바에 있던 다른 손님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광안리 여행이 끝나자마자 서울로 도망갔다. 나를 이상하게 여긴 엄마가 서울로 쫓아왔고 그대로 광진구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부처님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내가 기를 쓰며 말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잖아요. 이제 좀 보상 좀 주세요.’
 


 나는 억울했다. 첫 직장으로 다니던 학원에서 구두 해고를 당했고 주휴수당 없는 최저시급을 받으며 식당에서 일했다. 일하고 남는 시간에 토익 공부를 했다. 돈이 없어 서럽고, 밥 사주던 언니 오빠들 동정심에 더 서러웠다. 만점만 받으면 설움이 전부 끝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성적이 오를수록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커졌다. 창원 학원들은 내가 만점을 받아도 나를 채용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외계인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암담해져서 서울 가겠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나보고 미쳤다고 말했다.


 창원 사회는 내가 감당 못할 만큼 보수적이었다. 도시는 40대 50대의 경제력으로 굴러갔다. 모두가 전근대적인 형태의 기업 시스템 속에 있었다. 시스템은 소수의 관리자와 대체 가능한 다수로 굴러갔다. 사장님들은 직원들에게 골프 치고 여행을 다닌다는 소문만을 남기고 존재를 감추었다. 이십대가 아무리 능력 있어도 4050대 관리자를 거슬러 생각을 표현할 수 없었다. 토익 만점을 받아도 4050대 관리자들은 최저 시급에 가까운 돈으로 급여를 제시할 것이고, 성과급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며, 아무리 회사를 개선해도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해고될 수 있다. 내가 그들의 나라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은 창원의 학원가도 비슷했다.


3. 당신의 학생들은 아무나 가 아닙니다.


 병원을 퇴원하자마자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일 년 삼 개월이 지났다. 거울을 볼 때마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구나 한다. 내가 경험한 고통과 분노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처럼 거울에 남아 있었다. 이런 얼굴로 초등부 어학원을 출근한다면 바로 해고되겠지. 19금이니까. 교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바로크 클래식을 들었다. 늑대를 재우고 양이 되자고 속으로 생각했다. 조심해야 했다. 같은 표정을 지어도 아이들이 어른보다 10배 더 겁먹는다.


 수업 첫날에 만난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 누구예요?’ 나는 오랜 기간 훈련된 미소를 유지하면서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래, 너도 어쩔 수 없겠지. 나랑 만나기 위해 너도 자격을 갖추고 왔을 테니까. 부모님의 우월한 유전자와 능력도 덕분도 있겠지만, 규칙을 잘 지키고 친구들을 배려하며 성실하게 공부해서 여기 왔을 테니까. 아무나 그들을 가르칠 수 없도록 보호할 의무가 이 사회와 나에게 있었다.


나는 아무나 가 아니란다.

라고 나는 아이에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말은 너무 쉬워서, 아무런 설득력이 없었다. 존경 받을 행동을 통하지 않고 내가 특별한 선생님임을 증명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교실에서 영어만 사용하고, 칭찬해야 할 상황이 오면 격려와 칭찬 스티커를 주는 방식으로 부드럽게 알려주어야 한다. 옷은 무채색계열로 무난하면서 우아하게 입는다. 화이트, 베이지, 블랙으로 톤을 일정하게 맞춘다. 비속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들이 교실 바깥에서 가져오는 단어가 입에 붙지 않도록 조심한다. ‘어쩔티비, 갓생, 열받쥬 등’. 강사로서 편안함을 주는 것과 대등한 친구 관계가 되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누구는 이 글을 여기까지 읽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애 하나 가르치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나도 가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돈과 인정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기  회의감이 더 드는 걸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난 이런 노력들이 나를 더 성장하게 만든다는 믿음을 떠올린다. 학생이 외계인이면 외계인일수록 강사는 더 이해심 있고 배려심 있는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나와 학생들은 외계인이라서 복잡하다. 선생님이 되어 교실에 서기까지의 배경 이야기가 나에게 있듯 아이들도 저마다 다른 가정환경과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런 우리가 한 교실에 존재할 수 있는 건 보이지 않는 질서와 규칙의 힘 덕분이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강사와 학생이라는 역할이 쉽고 이 역할 놀이가 즐겁기 때문이다. 강사는 강사답게 행동하고, 학생은 학생답게 행동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잘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네게 가르칠 자격이 있니?’라는 질문에 떨고 있을 강사가 있을 것이다. 그들이 명심했으면 좋겠다.

가르칠 자격이란 강사가 강사답게 행동할 때 저절로 따라오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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