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그 길 어딘가에서, 삶의 희망을 되돌릴 수 있기를
유유상종이라 했던가.
꿈을 잃은 청춘들은, 서로 닮은 상처를 안고 모여들었다.
고등학교 내내 품어 온 유일한 꿈이 무너진 뒤,
그는 한동안 방향을 잃고 헤맸다.
곁의 친구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대학에 발이라도 걸치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방황의 골목길에서
내일이 없는 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몇몇은 이미, 조직의 그늘로 스며들고 있었다.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공고를 마치고 취업한 친구가 복귀하는 배웅길에
그와 함께 기차역까지 걷고 있었다.
북적이는 거리를 지나던 중, 문득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그는 발걸음을 되짚어 건물 모퉁이로 돌아갔다.
그곳엔 친구가 어색한 자세로 서 있었고,
그 앞에는 낯선 남자 몇 명이 둘러싸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했다.
소위 ‘모사’라 불리는 당시 유행이었던 거리 갈취였다.
상황이 어렴풋이 파악되자마자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는 곧장 주먹과 발이 날아들었다.
그 순간, 싸움은 이미 전쟁이었다.
잠시의 격투 끝에
몇몇이 쓰러지고 흩어지며
상황이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폭풍 전의 고요였을 뿐이었다.
그는 친구를 얼른 역으로 데려다 주려 했지만,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들은 조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더 큰 무리가 몰려와
두 번째 난타전이 터져 나왔다.
혼전의 와중,
날아든 콜라병이 그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순간, 세상이 하얗게 번쩍였다.
소리도, 통증도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들은 건 누군가의 비명뿐이었다.
기차역 광장 한복판,
의식을 잃은 채 피투성이가 되어
몇십 분 동안 차갑게 내버려졌다가,
마침내 병원으로 옮겨졌다.
기적처럼 숨은 붙었지만,
몸은 금이 간 도자기처럼,
언제 산산이 부서질지 모른 채 버텨야 했다.
무엇보다 그를 괴롭힌 건 육체의 고통이 아니라,
단 한순간에 삶이 끝날 수도 있었다는 냉혹한 깨달음,
그리고 사랑하는 어머니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는 죄책감이었다.
며칠 뒤, 누군가 그에게 당시 상황을 전해주었다.
참혹한 광경 앞에서
사람들은 웅성거리기만 했고,
선뜻 손 내미는 이는 끝내 없었다.
그때, 한 택시 기사님이 조용히 다가와
선혈과 어혈로 범벅이 된 몸을 들춰 안고 차량에 실었다.
시트는 금세 젖어들었고, 차 안에는 눅눅한 쇳내가 가득 차, 숨조차 막혔다.
기사님은 말없이 핸들을 틀어 병원으로 달렸다.
그 생명의 은인은 이름도 남기지 않은 채,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남겨진 그 짧은 흔적은
그의 마음속에 평생 따뜻한 은혜의 불씨로 살아남았다.
그날, 그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한 손길로부터
또 하나의 삶을 선물 받아,
죽음의 문턱에서 되살아 나올 수 있었다.
그는 오늘도
새로운 삶의 은혜를 가슴에 안은 채
묵묵히 길을 걸어간다.
그 길 어딘가에서,
혹여 누군가가 방황과 절망의 자리에 선다면,
기꺼이 손을 내밀어 삶의 희망을 되돌릴 수 있기를 조용히 다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