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눈물과 용서가 지워낸 붉은 줄
그는 어려움 속에서도 밝은 미래를 꿈꾸며 대학원에 들어섰다.
연구실 한 켠, 차가운 바닥에 몸을 눕히고, 라면으로 허기를 달랬다.
장학금으로 학비는 해결되었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는 여전히 일을 해야 했다.
대학 시절, 오토바이 사고로 아이 하나를 사경에 빠뜨렸다.
그날 이후 그는 알았다. 더는 위험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야간 원거리 아르바이트 때문에,
폐차 직전의 중고차를 살 수밖에 없었다.
저녁 여덟 시 무렵, 아르바이트로 향하던 길.
왕복 3차선 도로, 가로등조차 없는 공사 구간이었다.
그는 1차로를 달리고 있었고,
2차로에서는 버스가 정류장에 서기 위해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그 순간, 맞은편에서 사람들이 뛰어들었다.
“늦었다.”
거리는 불과 10미터.
브레이크가 끼익— 금속성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차는 미끄러지듯 사람들을 향해 달려갔다.
한쪽은 버스가 막고, 다른 한쪽은 사람들이 뒤엉켰다.
‘쾅!’
앞유리가 흔들리며 헤드라이트 불빛이 갈라져 흩어졌다.
순간, 사람들의 눈동자가 공포에 굳어 숨마저 멎은 듯했다.
차는 간신히 멈췄다.
그러나 이미 아주머니 한 분이 범퍼에 부딪혀 쓰러졌고,
뒤따르던 두 분은 충격에 얼어붙었다.
그는 세 사람을 차에 태워 곧장 병원으로 달렸다.
눈물에 시야가 번졌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자꾸 닥치는 거야…’
그의 속은 절규로 무너져 내렸다.
병원비와 치료비, 합의금은 산처럼 눈앞을 가로막았다.
대학원과 미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듯했다.
분노도 억울함도 아니었다.
하늘이 꺼져버린 듯한 막막함뿐이었다.
진단 결과는 참담했다.
다리와 허리, 머리까지 모두 다쳐 있었다.
머리는 수 주간 지켜봐야만 결과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학교는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며칠이고 병원에서 피해자의 회복만 기다렸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의 차는 ‘책임보험’뿐이었다.
피해 보상을 대신해 줄 ‘종합보험’은 없었다.
무지의 대가는 잔혹했다.
보상은커녕, 형사처벌로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피해자 가족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말 한마디 없이 돌아서는 뒷모습이,
그에게 ‘가해자’라는 낙인을 새겨 넣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감옥의 그림자는 짙어졌다.
그는 한 달 가까이 병원에 매달려,
수도 없는 냉대와 멸시를 견뎠다.
그를 버티게 한 것은 오직 피해자의 회복에 대한 바람뿐이었다.
마침내, 아주머니의 머리에 이상이 없다는 최종 진단이 나왔다.
천만다행이었다.
그러나 합의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며칠이고 사정했지만, 피해자 가족은 고개를 저었다.
숨이 막히는 절망 속에서 시간은 흘렀다.
사고 한 달이 지나,
뒤늦게 소식을 들은 그의 노모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섰다.
굽은 어깨와 마른 손,
금방이라도 꺾여버릴 듯 가느다란 몸짓이었다.
어머니는 피해자 가족 앞에 서서 허리를 깊이 숙였다.
떨리는 목소리가 병실을 울렸다.
“우리 자식,
공부하겠다고, 혼자 벌어가며 버텨왔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평생 사라지지 않을 큰 죄를 지었지만…
제발 앞날만은 꺾지 말아주십시오.
평생 죄인으로 살아도 좋으니,
단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그 말은 눈물 섞인 기도가 되어 병실의 공기에 잔잔히 스며들었다.
순간 병실 안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해졌다.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다 가족 중 가장 어르신이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됐습니다. 아주머니를 뵈니, 더는 뭐라 하기가 어렵네요.”
긴장이 풀리자, 가족들 사이에 조용한 안도의 숨이 새어 나왔다.
요구된 합의금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감당하기 벅찬 무게였다.
그는 친척들에게 사정하며 빚을 얻어 어렵게 마련했다.
그리고 마침내, 법적 책임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날, 어머니의 눈물과
피해자 가족의 조용한 용서는
그의 인생에 새겨지던 붉은 줄을
눈물 속에 서서히 지워냈다.
마지막에 남은 것은
따뜻한 마음이 지펴 올린 작은 불씨였다.
그 불씨가, 꺼져가던 그의 삶에 다시 불을 붙였다.
사람의 빚은 돈으로 다 갚을 수 없다.
그러나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은,
무너져가던 생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불씨가 된다.